속죄 Atonement
#책
#속죄 #Atonement
#이언매큐언 #IanMcEwan
#옮긴이_한정아 #펴낸곳_문학동네
정신없이 빠져들고 정신없이 생각(?)하느라 오래 들고만 있기도 했던....
꼽아보니 35 일을 붙들려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린 아이의 판단의 오류? 아니 어느정도는 미필적 고의?
(""로비였어." 브리오니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사실을 단정짓는 어조였다.")
("그렇지만 '보았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싶기는 했다. '보았다'는 자신의 말이 실제로 무엇을 본 것이라기 보다는 '알았다'는 쪽에 가깝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 행동의 결과를 온전히 뒤집어 쓴 피해자들의 문신같은 날들?
작가는 <속죄>를 쓴 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한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을 말할 때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다루고자 했다."
("죄책감은 자신을 고문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냈고, 시간이 가면서 떠오르는 세밀한 기억의 구슬들을 하나하나 실에 꿰어 평생 동안 돌리면서 기도해야 할 묵주를 만들어 놓았다.")
그게 60년이 걸린건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만큼의 날들로 마음이 헐어졌다고 말 할 수 있는건가?
그럼 피해자의 날들은?
("헛되이 보낼 또 하루를 기다리며 삼년 육 개월의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수감의 날뿐만 아니라 누명을 벗게되는 날까지, 아니 생을 넘어 그 이상까지 보내야
그 영혼 깊이 새겨진 문신이 지워지는걸까?
속죄를 했다니, 용서해야하는건가? 그러면 자유로울까?
속죄의 삶도 피가 말라가는 날들이었겠지.
("그러나 브리오니에게 주어진 삶은 도망 갈 문이 없는 방안에 갇혀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속죄와 용서와 망각
어떤 것이 살아감에 도움이 되는 걸까?
한국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유괴범은 회개했다고 했다. 용서 받았다고 자유롭다고 했다.
그럼 그 엄마는.....
속죄, 회개, 용서, 사랑...
그 무가치한듯 무한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 때문에
내게 35일이 필요했던 걸까?
아직도 결론이 없다.
다만, 이 텍스트를 접하는 분들은 꼭 읽어봤으면 한다.
작품 속의 화자가 되어 그 사람으로 숨쉬는 경험을,
그 사람이기에 숨이 막히는 경험을,
책을 덮고 긴 한 숨으로 하늘을 보는 자신을 만나보기 바란다.
- 욕심 난 문장들
때로는 섬뜩함을, 때로는 지극한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이 연극에서 브리오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 이성에 근거하지 않은 눈먼 사랑은 불행하게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공상들은 그 자체가 짧은 연극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했는데,
브리오니는 세상을 말끔하게 정돈하려는 열망을 가진 아이였다.
브리오니의 방은 정돈의 여신이 사는 말끔하고 성스러운 신전 같았다.
그러나 비밀 서랍과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 암호문자도 브리오니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 하나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상상력이야말로 수많은 비밀의 원천
그녀는 이전의 많은 작가들이 그랬듯이 타인의 인정이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었다.
글쓰기는 자기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짜릿함뿐만 아니라 세상을 축소하여 손 안에 넣는 즐거움까지 맛보게 해주었다.
테니스 심판처럼 의자 높이로 권위를 세워보려는
부모님. 이 복수형 단어에 들어 있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위는
소설에서는 문장을 읽는 일과 이해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사전에서 익힌 어려운 단어가 처음 나들이를 한다는 신호였다.
이런 기준은 아버지에게는 자연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지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 평생동안 감사하는 마음으로, 혹은 지독하게 후회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게 될 그 특별한 순간일까 하고 생각했다.
우스워보일 정도로 우울하고 심각한 얼굴이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식해 보이는 이런 남자와 결혼을 하면 얼마나 감미로운 자기 파괴가 될지를 생각하며 그녀는 유쾌한 허탈감을 느꼈다.
망설이며 흘려보내는 시간은 마음만 무겁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침묵과 두려움과 슬픔을 가져다 주는 선택
마음이 한껏 여유로워지고 즐거워지는
이 예배당은 한 때 화려한 사교생활을 즐기던 어머니를 잃은 고아처럼, 아무도 돌보거나 존중해 주지 않는 가운데 저 혼자 조숙해졌다가 이젠 늙어가고 있었다.
허세 부리기의 허망함
따끔거리는 하얀 상처들
감미로운 공상 뒤에는 현실 복귀라는 쓰라린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공상을 통해 피해왔던 현실을, 더 악화되어 버린 듯 느껴지는 현실을 다시 받아 들이는 그 순간, 세부 하나하나까지 그럴듯하게 보이던 공상의 순간들은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는 한 순간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 공상 속의 주인공은 분명 브리오니 자신이었지만, 이제는 세상 속으로, 그녀가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그녀를 만들어 낸 세상으로 되돌아온 그녀는 초저녁 어스름한 하늘 아래 서 있는 자신이 점점 더 작게 느껴졌다.
그는 익숙지 않은 느낌들을 헤집어 검사하고 어떤 기억 속으로 자꾸 거슬러 올라 가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시도와 과감해 보이려는 노력에는 과장되고 서투른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원했다. 그것을 가져야 했다.
이 얼마나 천박하고 설득력 없는 자기 변명인가.
대학에 들어간 후,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대다수보다 자신이 더 영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는 마음을 구속하던 열등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열등감이 없어졌으니 일부러 오만한 태도를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로 하여금 자신이 굉장히 현명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어린 여동생 같았다.
편안한 침묵 속에 앉아
시간에 대해서, 아직 쓰지 않은 미래의 그 풍요롭고 영광스러운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의 어느 날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은 알지 못하는 어떤 중요한 것을 알게될까?
문학과 종교만이 가르쳐 줄 수 있는 인간의 하찮음과 숭고함
눈에 거슬리지 않는 얌전한 분홍색이니 저녁식사 때 입기에 무난하겠지, 세 폭짜리 화장대 거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생생하면서도, 믿음이 가지 않는 인상들, 자기 의심, 의지와 관계 없이 너무나 명료하게 보이는 시각적 인상들, 익숙한 것을 낯설어 보이게 하는 섬뜩한 차이들.
비평가 같은 거울을 흘끗 쳐다보고
부모님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늘 부재중이었으며,
연기가 자욱해서 ~ 사람들의 몸통은 보이지 않고 얼굴들만 서로 다른 높이에 둥둥 떠 있었다.
활기찬 사람들이 벌이는 유쾌한 실랑이
만년필의 은 펜촉에서 검은 실이 술술 풀려나와 단어와 문장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랐다.
슬픔 그 자체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먼저 일어난 일을 흡수하거나 변형시켜버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집안에 질서를 부여했고 자유를 허락했다.
심장이 아직도 이렇게 쿵쾅거리는 데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게 놀랍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들이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 그의 가슴 속에 가득한 경륜에서 얻은 지혜라도 되는 양 떠벌리는 데만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혀짜대기 소리로 어리광을 부리고,
그들은 갈등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기에,
잊지 않고 걸어주는 전화는, 믿기 어려운 내용도 많았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것이 습관화된 위선이라 해도 나름대로 쓸모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대접받던 아이는 이제는 푸대접받는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에밀리는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얼마나 빨리 끝나 버리는가. 압도되지도 않고 허무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잔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얼굴의 반 정도는 마치 가구가 지나치게 많은 침실처럼 보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 값싼 초콜릿 원료통에서는 안락과 아무 걱정없는 세월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기억과 판단, 모호한 결심과 의문의 단편들이 조용히 에밀리의 머릿속에서 풀려나오는 동안 에밀리는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뉜 상념의 길로 나서서 생각의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일종의 비상(飛上)이 아닐까? 비상과 환상과 상상의 현실화 작업이 아닐까?
어른의 증오 대상이 되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엄숙한 의식과도 같았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올라섰다는 의미였다.
조문객들의 연민과 위로가 그녀의 눈시울을 아프게 해야 했다.
어둠은 아무 것도 아니다. 실체가 없었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빛이 없는 상태가 어둠일 뿐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장식에 불과했다.
"로비였어." 브리오니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사실을 단정짓는 어조였다.
p241~242
그러나 그녀가 의도한 뉘앙스는
그렇지만 '보았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싶기는 했다. '보았다'는 자신의 말이 실제로 무엇을 본 것이라기 보다는 '알았다'는 쪽에 가깝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었다.
죄책감은 자신을 고문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냈고, 시간이 가면서 떠오르는 세밀한 기억의 구슬들을 하나하나 실에 꿰어 평생 동안 돌리면서 기도해야 할 묵주를 만들어 놓았다.
헛되이 보낼 또 하루를 기다리며 삼년 육 개월의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기다릴게. 돌아와. 여기에는 아무리 희박하다해도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살풋이 잠에 빠지려 하다가도 선택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생각의 공격을 받고 깜짝놀라 다시 정신이 말짱해지곤 했다. 언제 어디에서도 지난 일들이 그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매일의 일과를 지루하지만 애정이 깃들인 문체로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매일밤 감옥의 얇은 담요 아래 누운 그의 마음을 빼앗는 바로 그 추억의 힘으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삶의 이유. 생활의 이유가 아니라 삶의 이유. 바로 그거였다. 그녀는 그의 삶의 이유였다. 그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였다.
가장 관능적인 기억들은 너무 자주 불러내어 이젠 그 색깔이 바래버렸다.
기억에 지탱해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억 속의 일들이 벌어지던 당시와 지금은 마치 기원전과 기원후처럼 엄청난 시간차가 느껴졌다.
결백해진다는 것은 순결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순수한 열망으로 그것을 꿈꾸었다.
p322 그러나 그가 ~ p323 그에게 힘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저 멀리 불타고 있는 기름 때문에 생긴 검은 구름이 화가 난 아버지의 얼굴처럼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를 원했고, 바로 그 때문에 아버지가 되기를 원했다.
의식이 분명해지면 괴로웠다. ~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정기적으로 무언가가 사라져 갔다. ~ 도저히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한 확신에만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했다.
남자를 둘러싼 원이 몰려드는 군인들로 점점 더 두꺼워지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개인의 책임 의식을 사라져 버리고, 무모하고 잔인한 군중심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안경을 쓰지 않은 그의 얼굴은 텅 비어 보였다.
기다림이란 너무나 힘겨운 말이었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육체의 불편함과 고단함 덕분에 브리오니의 정신적 시야는 가려져 버렸다.
마치 어둠같은 불안을 기억해냈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삶에 대한 희미한 그리움
이전에 쓴 내용을 읽어보는 일은 드물었지만 채워 넣은 페이지를 다시 넘겨보는 것은 좋았다. 바로 여기에 ~ 숨은 그녀의 진정한 자아가 비밀스럽게 자리하여 쌓여가고 있었다.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된 지금, 글쓰기만이 이전과 지금의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러나 브리오니에게 주어진 삶은 도망 갈 문이 없는 방안에 갇혀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의사와 간호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병실을 채웠고, 고통스러운 신음이나 비명 소리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총탄을 맞아 얼굴의 반이 날아가고 없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 붕대를 풀면 드러날 끔찍한 모습보다 훨씬 더 두려운 것은, 커다란 갈색 눈에 담긴 원망이었다. '당신네들,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요?'라고 묻는 듯한 그 눈초리였다.
인간의 몸이 가진 비밀들이 완전히 까발려졌다 - 이런 것들을 목격하면서 그녀는 이전에도 알고 있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통렬하게 실감했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 존재라는 것,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는 존재 .... 그녀는 간호사로서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쟁터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나 있으면서 필요할 때면 가리지 않고 일을 해냈다.
섬세한 얼굴이었다.
그의 손을 잡고, 그 차갑고 축축한 손 안에서 자신의 손이 떨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마음이 텅 비어 버렸다. 그녀는 거의 삼십 분 동안 그렇게 멍하게 앉아 있었다.
자명종이 울리고, 그녀가 잠과 의식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나른한 피곤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려 할 때면, 신나는 일이나 중요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흥분이 느껴지곤 했다.
기억은 곧 희미해지거나 다른 것과 뒤섞여버렸다.
마침내 브리오니는 누추한 길들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불독처럼 뺨이 늘어진 늙은 남자
그는 거만하게 손짓을 했다. 그에게는 길을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옆을 지나자 냉각장치에서 체온처럼 친밀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고,
사랑에 빠짐으로써, 아니 사랑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 수치의 늪에서 자신을 건져낸 롤라. 브리오니가 끝까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을 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믿을 수 없어 했을 롤라. 그 롤라가, 이제 겨우 어린애 티를 벗은 롤라가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제단 앞에 서 있는 것이다. (p454)
이 혼례미사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진실을 가둘 벽돌을 하나씩 쌓고 있는 것이다.
턱을 치켜들고 눈을 감은 채 작고 슬픈 목소리로 천상의 권능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주보이신 성 삼위일체께 기도를 드리는 순간, 마지막 벽돌이 얹혔다.
세면대에는 회색 줄이 여러 개 난 마름모꼴의 더러운 비누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만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 같았다.
브리오니는 자신이 밸엄을 향해 걷는 자신과 병원으로 돌아가는 또 다른 자신으로 나뉘면서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할 수 없는 것, 물어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아, 자매는 한동안 서로 바라만 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가면 같은 느낌도 들었고, 단아한 조각상 같은 느낌도 드는 얼굴이었다.
언니의 조소는 분노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저항하고 싶은 것이 이상했지만, 그러지 않으면 쓰러지고 말거라고 생각을 하며 힘을 냈다.
그도 브리오니와 마찬가지로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과 싸우느라 애쓰고 있는 것이다.
조용해진 방안은 아까보다 더 작아져버린 것 같았다.
아까와는 다른 하루로 발을 들여놓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선을 그어 놓고 그녀가 그 안으로 넘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듯 했다.
에스컬레이터는 그녀를 싣고 아래로, 어두운 공간에서 밀려 올라오는 인공적인 바람속으로, ~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느낌은 향수와 가까웠다. ~ 그녀가 그리워하는 것은 집이 아니라 언니였다.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지만, 내 뇌가, 내 마음이 아주 천천히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도시를 돌아다니다보면 불편할 정도로 옛 기억에 사로잡히는 일이 많다.
우리같은 노인들이 겉모습은 파충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동물이나 외계인은 아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이만큼 생각했으면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피곤의 파도가 내 몸에 부딛히며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빼앗아 가는 것을 느낀다.
- 번역가 주
<속죄>의 주제를 묻는다면, '폭력'이라고 말하겠다. <속죄>는 전쟁이라는 폭력,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자신의 눈과 판단만 믿는 오만함이라는 폭력, 뿐만아니라 상상력이 휘두르는 폭력까지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