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Chanson Do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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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네. 범인입니다. 보모로서 양육하던 두 아이를 죽였습니다.
그녀는.
프랑스인. 백인입니다. 중산층인 이주정착민의 '퍼펙트 내니 (The Perfect Nanny)'입니다. 나는 이 사실에서 길을 잃을뻔 했습니다.
한동안, 아니 여전히 "가~~족(좆)같은 회사"라는 텁텁한 웃음을 주는 개그(말)가 유행했고 떠다닙니다.
작가는 물론, 이 "텁텁한 웃음"이 주는 찔림과 당혹을 놓치지 않으며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가 '우리'고 '우리의 행복', 나아가 '행복'에 대한 '나, 자신'의 "무경계의 철책"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루이즈'란 사람. "그녀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싶어 했던 사람을 보게 합니다.
다시 태어 날 수도 없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닌(이것말고 표현할 줄 아는 말이 없어 괴롭습니다.), 존재하나 존재가 없는. 사람.
"몸이 기억하는 가난"이란 말처럼 내 몸이, 내 영이 기억하는, 아니 그순간, 그곳, 경험으로 각인된 것들이 그 사람 '루이즈'를 통해 스며나오고, 나는 당혹하여 그 습함을 닦고, 그 악취를 털게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이 소설은 하늘을 바라보며 꺼지지 않는 한숨을 내쉬게 합니다.
- 욕심 난 문장들
다른 여자, 그 여자도 구해야 했다. 똑같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똑같이 공정하게, 그 여자는 죽지 못했다. 죽음, 그것을 다른 이에게 주는 일만 해냈다.
이렇게 자잘한 물건들을 훔치면서 그녀는 최면과 같은 무아지경 상태에 들어갔다.
그녀는 아주 침착해 보인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고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여자의 시선이다. 얼굴은 아무도 그 깊은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고요한 바다 같다.
배수관에서 바람이 윙윙거리고 그녀의 꿈속을 맴돌았다.
때로 그녀는 유리가 다 부서지도록 깨끗이 닦아내고 싶어한다.
용서를 구하는 적처럼 조용한 아파트 전체가 그녀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이 이야기들은 ~ 그녀에게서 술술 나온다. 그런데 착한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기는 하나 결국은 죽고마는 이런 잔혹한 이야기들을 그녀는 어떤 검은 호수, 어떤 깊은 숲에 가서 낚아 온 것일까?
한 주 두 주 흘러 갈수록 루이즈는 점점 더 놀랍도록 눈에 띄지 않으면서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분명하게 뭐라고 이야기된 적도 없고 아무도 무슨 말을 하지 않지만 루이즈는 집 한 가운데에 꾸준히 조금씩 자신의 둥우리를 틀어간다.
이번 여름에 루이즈를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아? 와. 상상 좀 해봐! 이번에는 진짜 휴가가 되겠네. 루이즈도 정말 좋아할거야.
똑같은 권태와 불안 속에 일요일이 온다. ~ 루이즈는 정말이지 주말이 너무 싫다.
그녀의 웃음은 나쁜 의도가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녀는 결국 투명인간처럼 눈에 띄지 않는 능력을 키워 나갔고, 따라서 아무런 소동도 없이, 나간다는 말도 없이, 그렇게 하기로 이미 정해져 있는 듯이 조용히 사라졌다.
루이즈는 병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진한다. 못된 아이들이 다리를 부러뜨려 놓아도 갈 길을 가는 개처럼, 가축처럼.
자크는 너무 바빠서 일자리를 찾으러 다닐 새가 없었다.
고독이 거대한 구멍처럼 모습을 드러냈고, 루이즈는 그 속에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온 세상이 그녀를 잊었다.
수술 당일 루이즈는 잠에서 깨지 못했고 예약을 놓쳐 버렸다. 스테파니는 그녀 속으로 파고들며, 그녀를 늘어뜨리며, 그녀의 젊음을 갈가리 찢어 놓으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한적한 산책로의 벤치에서 세상이 더 이상 원치 않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비좁은 아파트, 음울한 거실, 무위와 권태로 움푹파인 안락의자를 피해 밖으로 나온다.
오후 4시, ~ 이제 저녁이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데도 소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미리암은 이 사진을 꼭 거실 선반 위에 놓으려고 했다. "당신은 우리 가족이에요."라고 보모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결국 그들이 포기해버리리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망상성 우울증". 루이는 그 단어가 아름답게 여겨졌는데 그러자 그녀의 슬픔 속에 문득 시적인 음영이 드리우고 일탈의 기운이 서렸다.
그리고 유리창이 더러운 아파트에서 앓아 누워 보내는, 병든 노년의 불안, 그것은 강박증이 된다.
몸속에서 증오가 솟아 오른다. 증오는 그녀에게로 와서 노예 근성과 어린아이 같은 낙관을 저지한다.
그녀는 한 번도 자기 방을 가져보지 못했다.
지금은 한 사람이 문을 열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린다. 두 사람이 같은 방에 있는 일이 점점 더 드물어지고, 서로 피하기라는 교묘한 안무를 실행한다.
그녀는 ~ 두 눈은 뚫어져라 그 손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손, 자리 잡는 손, 시작하는 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원할 손, 본색을 잘 감추고 있는 얌전한 이 손.
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그들과 함께 세상을 이루고, 자기 자리를 찾고, 그곳에 거주하는 것, 몸음 숨길 둥지 하나, 따스한 은신처 하나를 마련하는 것. 가끔 그녀는 자기 몫의 땅을 요구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가도 곧 풀이 죽고 서글픔이 차오르며 무언가를 믿었다는 것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루이즈는 이 원룸이 잠깐 쉬는 동굴, 지친 몸을 잠시 숨기러 오는 괄호 같은 곳일 뿐이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는다. 그녀가 사는 데는 다른 곳이다.
왜 루이즈를 보면 소름이 끼치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무언가가 혐오를 일으킨다.
그녀는 광신도처럼 격렬하게, 악마에 들린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그 아기를 욕망한다. ~ 자신과 욕망의 만족 사이에 가로 놓인 모든 것의 숨통을 끊고, 불태우고, 없애버릴 수도 있을만큼.
서로 연결고리도 없는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이 그녀에게 밀려 들어와서
자제력이라는 부르주아 예절을 지니고 있다는 것
밤이 오자마자 숨어있던 겨울이 다시 자기 자리를 되찾고 옷 속으로 스며든다.
그녀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싶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루이즈가 길을 걸을 때면 이 후렴구가 그녀를 따라 다닌다. 그녀가 지은 문장도 아니고 의미를 확실히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이 문장이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거의 흐릿한, 달의 세계의 루이즈, 무언가를 기다리는 루이즈, 어떤 경계의 끝에서 이제 막 그 경계를 넘으려하는 루이즈, 그 경계 뒤에서 그녀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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