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든 말든 나는 본질을 본다 失敗という人生はない
#책
#알아주든말든 #失敗という人生はない #실패라는인생은없다
#소노아야코 #曾野綾子
"인생의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납득과 단념"이라고 생각한다.
'납득과 단념'. 꼭 인생 최후의 순간에만 필요할까?
삶의 모든 꼭지들은 다 '납득과 단념'이 채우고 있지 않을까?
"인간은 단념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평범한 힘으로도 본질로 되돌아올 수 있게된다. 단념은 향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에게 '斷念'은 긍부정을 넘어 담담히 바라보고 명확히 판단하고 겸허히 수용함이다. 마지막이 아닌 연속의 선택이다.
'삶', '인생'을 연속된 시간으로 본다면.
우리의 시간은 '선택'으로 채워진 것 아닐까?
그렇다면, 결과는?
나의 채워진 것들의 '수용'이다.
소노 아야코 선생은 이 번 책에서는 삶에서 "일어 난 사실과 일어 날 사실"을 납득하고 수용하는 법을 보여주고 싶으셨나보다. ^^
"다만 나는 일그러지고, 비참하고, 추하고, 가련한 부분이 있는 내 인생을 그대로 깊이 납득하고, 모쪼록 이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십사 신께 기원했다."
- 욕심 난 문장들
지금까지 나는 어느 정도의 성실함과 그와 엇비슷한 불성실한 자세로 사람들을 만나왔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와 동시에 존경할 만한 점이 없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영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서 귀엽고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호감
눈물을 보이면 (상대보다) 밑이 되고, 화를내면 대등하고, 웃으면 위가 된다.
마음이 충만할 때 인간은 아무리 가난해도 사는 목표를 찾을 수 있다.
인간 관계란 원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나도 성실하고 완전하길 바라고 있지는 않나? ~ 높은 기대감은 버린다.
당연한 인간 관계란 없다.
관계를 맺으면 자연히 상대의 실체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속내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
혜택만 받고 피해는 전혀 없는 사회라는 건 아예 있을 수 없다.
생색내지 않고 준다.
그 사람이 남들로부터 오해받기 쉬운 점에 대한 정확한 의도까지 헤아리고 있어야 비로소 우정에서 우러난 지지를 보낼 수 있다.
책임은 타인이 내게 느끼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 같은 사랑이 꺼졌을 때 그것을 대신해 가늘고 긴 생명을 갖는 것이 용서이다. 그러한 용서를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 사람의 생애를 걸고 선택한 '한 사람'에 대한 자신의 행동만큼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돈의 씀씀이만큼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주는 것도 없으므로,
부부라는 것은 애초에 그 출발점부터 '타인이 타인이 아니도록'하는 불합리한 관계이므로
인간이란 존재는, 존경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맹목적이 될 수 있지만, 경멸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관대해질 수도 있다.
무심(無心)과 방심은 다르다.
스포츠의 최대 산물은 ~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도 재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늘 자기 앞에 강자가 있어 자신에게 모래 먼지를 흩뿌리며 등 돌리는 것에도 견디며, 그런 상황하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진리에 도달하기에 앞서, 진실을 인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남에게 보이지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애써 꾸미는 사람은 일생 동안 정신의 자유를 맛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계산해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사실적이지 않다."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허울 좋은 이야기 따위는, 대부분의 경우 이 세상에서 거의 힘을 갖지 못한다.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행동만큼은 용서한 것처럼 하라."
인간은 환자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남에게 뭔가를 베푸는 입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충만할 수 있다. 노인의 불행은 상대가 날 위해 '해주지 않는다' 또는 상대가 해 주는 것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노인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불행의 대부분은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싹튼 것이다.
겸허함이라는 것은 건강과 원만한 환경이 주어졌을 때에는 좀처럼 몸에 배기 어려운 '향기'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괴로운 법이다. 신이 주신 이 고통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슬픔 속에서 본질을 만난다. ~ 인간은 슬픔 속에서야 말로 본성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인간다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다. ~ 가난 속에서는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에 배려와 인내와 겸허가 자란다. 물론 난폭함이나 막무가내 행동, 도덕적 감각의 결여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받는게 아니라 주는 마음을, 득을 보는게 아니라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강인함을 키워야 한다.
인간의 마음 ~ 비겁한 면과 위대한 면을 함께 갖고 있다.
'그 정도쯤이야'하는 생각은 거대한 성을 둘러 싼 돌담의 돌 하나를 뽑는 것과 같다.
운보다도 천천히 조금씩 쌓아 나가는 편이 그 사람에게 분명 크게 작용한다.
단념은 패배가 아니다.
노년기는 정신의 완성기
인생의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납득과 단념이라고 생각한다.
사막은 아무 것도 없는 까닭에 완벽했다.
홀로 살고 있는 인간에게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찾아 올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었다. 결코 내가 사막에서 자주 기도를 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일그러지고, 비참하고, 추하고, 가련한 부분이 있는 내 인생을 그대로 깊이 납득하고, 모쪼록 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십사 신께 기원했다.
길모퉁이를 왼쪽으로 돈 자가 살고 오른쪽으로 돈 자는 죽었다.
인간은 단념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평범한 힘으로도 본질로 되돌아 올 수 있게 된다. 단념은 향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비록 그때까지 아무리 오욕 속에 있었다 하더라도 죽기 직전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그 순간에, 비록 말은 하지 못해도 자기가 걸어 온 생을 뒤돌아보고 명료한 결론을 낼 수 있다면, 그 '생'은 누가 알아주든 말든 성공한 것이다. <p158 누가 알아주든 말든 성공한 거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반드시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나는 신앙 덕분에 더 멀리 방황하면서 그와 동시에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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