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의 다섯번째 소설집입니다.
그는 책 말미의 [작가의 말]을 통해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라며 다섯편의 단편을 전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큰 교훈 없는 상실",
"가장 많이, 가장 힘들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의 연속인 삶 속에서 가끔은 쓴물처럼 올라오는 그때, 그순간, 나는 무엇을 듣고자 했던가,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가. 잠시 돌아봅니다.
아니. 애써 "잠시"로 멈추었습니다.
깨달음이 주는 양면의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안녕"이든 "I'm Young"이든 그때 그 말로, 그때 그 마음으로 놔두고 싶습니다.
거울을 보며 그때 그 흔적에게 "알겠어"라는 미소를 보내고 싶습니다.
#바브라스트라이샌드의 #people 이 떠올랐습니다.
- 욕심 난 문장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작가의 말 중)
보브 단발
○ 홈파티
이연은 오대표의 느긋하고 위엄있는 목소리가 단정한 외모와 묘하게 어긋난다 느꼈다.
○ 팬데믹
누군가와 숨을 섞고 대화를 나누는게 어느새 모험이자 사치가된 까닭이었다. 모임을 위해서는 서로 믿을만한 상대를 택해야 했다.
사회에 일찌감치 자리잡은 중년부부의 단단한 안정감이 느껴지는 곳
개성 뿐 아니라 '서사적 윤기'라 부를만한 것이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그건 나이들며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적당히 낮춘, 까다로운듯 무심한 관심이었다.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새 역을 입고 새 말을 쏟아내고픈 충동에 사로 잡혔다.
○ 숲속 작은집
쓰레기통이 또 비뚤어져 있었다. 어제보다 좀 더 과감한 각도로 누군가의 불만스러운 입술처럼 비죽 어긋나 있었다.
더도 덜도 없이 딱 그자리에 있어 풍경을 미적으로 만드는 수목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 어떤 공간을 우아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낡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시간이 거기 그냥 고이도록 놔둔 집주인의 자신감과 여유가 부러웠다.
지호에게게는 뭐랄까,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었다. 남으면 버리고, 없으면 사고, 늦으면 택시 타는 식으로 오래 살아 온 사람이 가진 무심한 순진함이. ~ 내가 예산을 맞추려 전전긍긍할 때도 "~ 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엄마여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게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뿌듯하기보다 복잡한 감정이 이는지 알 수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휑한지 모르겠다고.
○ 좋은 이웃
주류로 오래 살아 온 인상?
'우리도 이제 미니멀리스트로 살자' 했다. 나는 그 말이 '선택'이 아니라 '포기'처럼 느껴져 불편했지만,
과시적이지도 방어적이지도 않은 공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 이물감
별로 알고 싶지 않지만 왠지 궁금해해야 할 것 같은 표정으로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적절함'의 거리를 둘이 힘을 합쳐 구겨 버렸다.
노년의 남루와 공포가 줄기라도 할 것처럼
어느 정도 한국의 정교한 계급 필터를 거친 이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계급성은 지우고 나이라는 약자성만 내 세운 채 신문에서 읽은 말로 앞 세대에게 자주 적의를 보이는 것 같았다.
기태가 진정 후회하는 건 그 순간 자신이 굳이 '진심'을 말했다는 거였다.
자기야, 근데 나이드니 마음이 넓어지는 대신 얇아져서 쉽게 찢어지더라.
남의 삶을 자꾸 넋 놓고 바라봤다.
훌륭한 어른은 못돼도 산뜻한 중년은 되는 거
생각의 과정이 고스란히 노출돼 쉽게 탁해지곤 하던 눈빛이
세련을 절제하는 세련이랄까.
'내장의 관상'
조리중인 차대표의 얼굴은 대체로 덤덤했는데, 노련함에 권태가 살짝 섞인 프로의 표정이었다.
기태는 바로 그런 접대 자리에서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 하지 않은 말을 통해 원하는 걸 얻는 이들을 자주 목격해 왔다.
마음이 늙는 일과 몸이 늙는 일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 또 가까운지도.
○ 레몬 케이크
동시에 기진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 본인 기준에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병원에 온다는걸. ~ 자기 눈에 엄마의 입성이 꽤 자주 초라해 보였다는 점도.
전부터 경수의 현재에서 늘 자신의 미래를 봤으니까.
환갑 무렵에는 문장을 끈기있게 읽고 이해하는 근육이 거의 퇴화해 버렸다.
자신에게 무척 가깝고 생생한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과거처럼 아득하고 낯선 일임을 실감했다.
자기만 혼자 허둥대고 도태되는 느낌
내 고통에 무심한 자연 앞에서 이상하게 안도한다.
선주는 자신이 딸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도 가끔은 딸에게 의존하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방법'이 없으니까.
여느해처럼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 안녕이라 그랬어
외국어로 대화할 때는 늘 그러듯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그런 로즈에게 깊은 계급적 친밀감을 느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노동 앞에서 어떤 격식과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서
나는 몇 년간 그런 존중에 좀 목말라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배역을 떠 넘기는 데 능숙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거였다.
큰 교훈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사회적 감각의 스위치를 꺼두고만 싶었는데. ~ 그 많은 언어가 그리워졌다. ~ 사회적 몸짓이.
○ 빗방울처럼
거주지에 따라 '급'이 아니라 '종' 자체가 나뉘는.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가장 많이 한 일은 무언가를 '기다리는'거 였다. 더불어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무언가를 기약없이 기다리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뒤 지수는 주머니 속에 '그래, 그래도 돼'라는 말을 공깃돌 마냥 넣고 다녔다. 그러곤 그 말을 자주 만지작거렸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반대로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비는 한 집 위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다."
부디 살라고 얘기하는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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