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말씀으로 물들이라
본문말씀 : 미가 4장 1-2절
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힘을 키우고 선용하라 >
1991년에 C&MA(기독교선교연맹) 비전을 가지고 귀국할 때 한국에 동역자가 없어 많이 외로웠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C&MA 평생 동역자 한 명이 생겼다. 그 후 두 딸을 낳고 키우면서 가끔 두 딸에게 C&MA 비전을 심어주었다. 평생 동역자 한 명이라도 더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단 동역자가 꽤 많아져서 기쁘고 든든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두 딸까지 평생 동역자로 삼고 싶을 정도로 동역자가 적었다. 그렇게 두 딸에게 C&MA 비전을 수시로 심어주자 둘째가 먼저 그 비전을 가졌고 최근에는 첫째도 그 비전에 조금씩 물들고 있다.
1866년 C&MA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는 23세에 캐나다에서 2번째로 큰 예배당을 가진 녹스 장로교회에 부임했다. 거기서 300명 교회를 8년 만에 700명 교회로 부흥시켰다. 그리고 1874년에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체스트넛 스트릿(Chestnut Street)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거기서도 크게 성장해서 예배당 좌석이 650석인데 매주 2천명 이상 몰려왔다. 마침내 장로들이 미국 최대 교회의 꿈을 품고 약 2500석을 가진 초대형 교회를 건축하자고 했다.
초대형 교회 건축은 30대 담임목사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나이가 젊기에 은퇴 전에 미국 최대 교회를 이루는 꿈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심슨 목사는 화려한 교회 건축은 ‘하나님의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내세운 사람의 비전’으로 여기고 선교 마인드를 바탕으로 교회 건축과 관련해 “간소하게 짓자. 최저 비용으로 짓자. 9개월 내의 단기간에 짓자.”라는 3가지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이 거부되어 심슨 목사는 화려한 초대형 교회건축보다 문서 선교와 선교사 파송을 통한 영혼구원의 비전을 따라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1880년 심슨 목사는 뉴욕 도시 선교 비전을 품고 37세에 뉴욕의 <13가 장로교회>로 부임했다. 그리고 불신자 전도에 나서자 맨해튼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는 이탈리아 이민 노동자들이 계속 교회로 유입되었다. 그 수가 100명에 달하자 심슨은 그들을 교인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했지만 대부분 뉴욕 상류층 교인들로 구성된 교인 총회에서 입교가 거부되었다. 결국 심슨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교회를 사임하고 1882년에 예수님이 ‘구원의 주, 성결의 주, 신유의 주, 재림의 주’라는 4중복음을 내세워 선교에 힘쓰는 교회를 개척했다.
첫 개척 예배 참석자는 9명이었다. 그 후 크게 성장하면서 예배 장소를 몇 번 옮긴 끝에 1889년에 맨해튼 뉴욕 8가(8th Avenue)와 44가(44th Street) 인근의 건물에 안착했다. 그 건물 예배당에는 당시 매주 2층 자리까지 성도들로 꽉 차고 넘쳤다. 그 건물이 100년 이상 되면서 1990년대에는 폐허처럼 흉물로 변했다. 그래도 뉴욕의 기독교 유적지 건물이기에 무조건 부수고 재건축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일부 유서 깊은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조건으로 존스 피자(John's Pizzeria) 회사에 팔려 리모델링 후 지금 피자집으로 변했다.
저는 C&MA의 유서 깊은 교회가 미국에서 가장 큰 존스 피자 매장으로 변한 것이 안타까워서 가끔 “하나님! 회복의 은혜를 주세요. 어떤 방법이 없나요?”라고 기도한다. 그 마음의 소원을 후대까지 전달하고 싶어서 몇 년 전 뉴욕 총회 기간 중 저녁에 둘째 딸을 데리고 그곳을 방문했다. 그때 C&MA 비전과 DNA를 가진 딸이 하나님이 물질을 주시면 그 장소를 다시 사서 C&MA 선교센터로 삼고 싶다고 했다. 그 소원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나중에 그곳이 정말로 선교센터가 되고 <월간새벽기도 영어판> 문서 선교 기지가 될지도 모른다.
소중한 비전을 가지면 하나님이 그 비전을 이룰 힘 있는 인물로 만들어주시거나 혹은 하나님의 인물 재배치 계획에 따라 음지에서 후원할 힘 있는 인물을 만나게 하실 것이다. 힘의 추구는 나쁜 것은 아니다. 바르게 추구하고 힘이 생겨도 마음이 높아지지 말고 좋은 일에 선용하면 된다. 지금 힘이 없어도 힘이 빠지지 말라.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힘 있는 겸손한 인물 비전을 계속 가지라. 비전이 있는 것이 사실상 힘이 있는 것이고 진짜 부유한 것이다. 비전이 있으면 반전도 있고 발전도 있다.
< 말씀으로 가르침 받으라 >
거룩한 비전을 품고 계속 나아가면 골짜기에 있던 사람도 언젠가 높은 산꼭대기에 서게 되고 많은 민족이 그 영향력 안에 모여든다(1절). 많은 민족이 시온으로 몰려가는 이유는 시온 산이 장관이어서가 아니라 시온 산 성전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가르치실 것이기 때문이다(2절). 그만큼 말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펜은 약해 보여도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말씀의 힘은 더욱 강하다. 또한 말씀은 축복의 핵심 원천이다. 말씀을 꼭 붙잡으면 신기하게 축복도 붙잡힌다.
1987년 퇴직금 100만원을 들고 나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1991년 얼라이언스 신대원을 졸업한 후 한국에서 C&MA 선교를 일으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약 100불을 들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때 결혼 연령이 되었지만 저축한 돈이 전혀 없어서 결혼할 길이 막막했다. 그런데 신학교 때부터 말씀을 붙잡고 틈틈이 쓴 저의 글 원고를 당시 꽤 유명한 출판사에서 채택해 첫 번째 책이 나왔다. 그 책 저자라고 아내가 좋게 봐서 돈도 없이 결혼할 수 있었다. 말씀을 붙잡은 결과로 책이 나와 결혼을 붙잡은 셈이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C&MA가 좋은 선교 공동체임을 금방 알지만 당시에는 목회자도 C&MA를 거의 몰랐다. 아내도 저를 소개받고 C&MA를 잘 몰라서 속으로 제가 이단 출신이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당시에 제가 월간 <현대종교>에 장문의 칼럼 연재를 했었는데 꽤 유명한 기독교 잡지에 제 글이 연재되는 것을 보고 아내는 제가 이단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 월간지가 나오면 카페에서 제가 쓴 월간지 글을 읽어주었는데 아내는 그때가 제가 제일 멋지게 보이고 행복했다고 했다. 말씀을 붙잡은 결과로 아내의 마음도 붙잡은 셈이다.
저는 귀국해서 C&MA를 잘 알리고 싶었지만 재정도 없고 인맥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매진해서 기록의 힘을 믿고 묵상한 말씀을 계속 기록으로 남기면서 문서 선교를 하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순수하게 말씀 전파를 위한 문서 선교에 매진하자 때가 되어 하나하나 붙여주신 음지의 동역자를 통해 가정에 필요한 재정도 극적으로 채워지는 역사를 많이 체험했다. 말씀을 붙잡은 결과로 가정의 재정적인 책임을 이행하는 축복도 붙잡은 셈이다.
제가 귀국할 때는 1992년에 휴거한다는 시한부 종말론이 극성을 부려 한국 교회의 이단에 대한 경계가 지금의 신천지에 대한 경계만큼 심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생소한 C&MA 출신 목회자라고 하면 괜히 의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단이 아님을 나타내려고 말씀 중심적인 설교에 더 신경을 썼고 설교할 때 실수가 없도록 원고를 충실히 사전에 쓰면서 말씀 준비를 했다. 그렇게 말씀을 붙잡은 결과로 말씀 기록이 축적되면서 문서 선교의 지경이 넓어지는 축복도 붙잡고 <월간새벽기도>도 나올 수 있었다.
말씀을 붙잡고 살면 내가 원하는 소중한 것들을 붙잡는 축복도 따라온다. 말씀을 힘써 가까이하라. 그리고 말씀을 전하려고 하기 전에는 늘 먼저 말씀을 가르침 받으려고 하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의 축복을 믿으라. 말씀을 붙잡고 살면 마음의 소원도 이뤄지지만 하나님의 마음도 얻으면서 점차 자기 이름도 높아지는 축복도 따른다. 혹시 세상에서 이름이 높아지지 않아도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구보다 높여질 것이다. 성도는 ‘오직 주님’라는 구호 아래에서 세상을 예수님의 말씀과 정신으로 물들일 선교 책무가 있다.
< 세상을 말씀으로 물들이라 >
한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매우 사랑하고 존중했다. 어느 날 한 노래를 듣고 남편에 대한 자기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 그 노래를 음미하며 행복에 젖었다. 그 노래는 가수 BMK의 <물들어>라는 노래였다. “머리에 얹은 너의 손/ 나는 잊을 수가 없어서/ 내 아픈 가슴을 너의 익숙함으로/ 다시 감싸 줘야해// 나에게 너의 손이 닿은 후/ 나는 점점 물들어/ 너의 색으로 너의 익숙함으로/ 나를 모두 버리고// 물들어. 너의 사랑 안에 나는/ 물들어. 벗어날 수 없는 너의 사랑에/ 나를 모두 버리고/ 커져만 가는 너의 사랑 안에 나는 이제....”
사랑은 내가 너에게 점점 물들고 네가 나에게 점점 물드는 것이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후 점차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 물드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물드는 것이다. 선교란 세상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물들이고 말씀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들이면 내적인 평안과 외적인 평화가 생긴다. 더 나아가 세상을 말씀으로 물들이면 세상도 점차 평화롭게 된다.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영적인 혁명가의 비전을 가지라. 왜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는가? 말씀이 비전을 끊임없이 불타게 하는 핵심 원료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결국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은 가장 큰 성공이고 말씀을 멀리하는 것은 가장 큰 실패다. 말씀에 물든 거룩한 비전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 비전이 세상으로 평화로 물들일 수 있다. 성도가 거룩한 비전을 가지기만 해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삶이고 나머지 절반의 성공도 곧 실체가 될 것이다.
거룩한 비전이 죽지 않게 하라. 거룩한 비전은 세상도 평화롭게 만들지만 나의 내면도 평화롭게 만든다. 내 속에 있는 상처의 가시와 거짓된 모습이 거룩한 비전에 의해 녹아지게 하라. 아무리 실망스런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말라. 사람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미래에 대해 실망하지 말라. 거룩한 비전을 가지면 사람이 귀하게 보이고 시간이 귀하게 보이고 자연도 귀하게 보인다. 거룩한 비전은 거룩한 시각을 낳는다.
세상의 어둠 때문에 실망하지 말라. 말씀으로 새벽을 깨우고 영혼을 깨우라. 시간과 환경과 상황에 휩쓸려 살지 말라.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자르는 칼과 찌르는 창을 보습과 낫으로 만들어 많은 생명을 수확하는 꿈을 가지라. 선교는 생명을 죽이는 칼과 창을 녹여 생명을 수확하는 보습과 낫으로 만들고 지역, 인종, 세대, 언어, 문화 차이를 극복해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선교 비전을 잃지 않으면 조만간 축복의 바람은 반드시 불어올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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