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
본문말씀 : 누가복음 11장 1-4절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1)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기도는 기도를 위한 기도가 아닌 응답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1. 믿음의 기도
어느 날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한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자기들에게도 가르쳐달라고 했다(1절).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먼저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주신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과 기도하는 삶은 믿음의 진실성을 나타내는 증거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고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결국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신앙 고백으로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는 것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고 삶의 최대 동력원이다. 예수님의 삶은 기도하는 삶이었고 돌아가실 때도 기도하며 돌아가셨다. 기도해야 하나님과의 수직관계도 잘되고 사람과의 수평관계도 잘된다. 믿음의 기도는 산을 옮기는 능력이 있기에 기도하는 삶만큼 복된 삶은 없다. 능력을 과시하는 무대보다 은밀한 기도 방을 더 좋아하라. 기도에 실패하면 결국 실패하지만 기도에 성공하면 결국 성공한다. 기도는 인생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할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라. 그런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라. 기도하기를 쉬었던 죄를 수시로 회개하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기도의 비밀을 알아야 신앙생활에 힘이 있다. 기도해서 능력을 받아 내 안의 죄와 허물을 내보내라. 예수님도 기도하셨는데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기도를 중시해서 기도하는 법까지 가르쳐 주셨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
2. 감사의 기도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면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란 호칭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여기는 믿음을 바탕으로 기도하라는 암시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여긴다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도록 다시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는 표현을 쓰면서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2절). 왜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며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 최고의 찬양과 감사를 드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기도를 생활화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죄송할 정도로 하나님이 너무 많은 기도 응답을 주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생각보다도 하나님은 훨씬 더 많은 은혜를 은밀하게 주시고 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 내가 깨닫는 것은 만 분의 일도 안 된다. 그처럼 미처 깨닫지 못한 숨겨진 은혜가 심대함을 인식하고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는 좋은 믿음과 좋은 인성의 표시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최고의 덕을 갖춘 것이다. 가장 복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감사 기도에 기쁘게 응답하신다. 사람이 왜 좌절하는가? “지금까지 나를 도우셨다.”라는 에벤에셀의 감사를 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도우셨다고 믿고 감사하면 내일도 도우실 것이 믿어진다. 그런 믿음과 감사가 나를 일으키고 내일의 승리와 성공을 닦는 초석이 된다.
3. 겸손의 기도
본문 2절 하반부를 보라. “나라이 임하시오며.” 이 기도를 쉽게 풀어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이뤄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저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저의 온전한 주인이 되소서.”라는 기도다. 항상 내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앞세워 겸손하게 기도하라. 기도는 내 요구를 늘어놓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 원리를 알 때 기도의 참된 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주기도문은 마귀를 내쫓고 기적을 일으키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술이 아니다. 기도는 환경도 변화시키지만 무엇보다 나를 변화시킨다. 내 뜻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더욱 선한 플랜이 있기 때문이다. 씨 에스 루이스(C.S. Lewis)는 하나님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했다. 원하는 것을 다 얻으면 교만해지고 타락하기 쉽다.
두 종류의 기도가 있다. 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내 뜻과 소원을 담아 드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담아 드리는 기도다. 응답 받는 기도가 되게 하려면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앞세우라. 그런 태도와 생각을 가질 때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기도의 핵심 목적을 ‘만사형통’보다 ‘자기변화’에 두라. 기도가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할 수는 있어도 자신은 반드시 변화시킨다.
힘들 때도 내 죄와 허물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면 낙심과 불평이 사라지고 오히려 하나님의 어떤 조치에도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그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은 그 마음의 기도를 기쁘게 받아주신다.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새롭게 결심하라. 나의 소유와 건강과 재능 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각오로 기도하면 응답과 은혜도 넘치고 마음도 평안해지고 삶은 빛나게 될 것이다.
4. 일상의 기도
본문 3절을 보라.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일용할 양식이란 돈, 건강, 의식주, 일터, 안전과 같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포함된 개념이다. 결국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뜻도 있지만 기도를 생활화하라는 더 깊은 뜻이 있다. 더 나아가 남의 일상적인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 신기하게 나의 필요가 채워지는 체험을 할 때가 많다. 그 체험이 나를 헌신과 선교로 자꾸만 이끄는 길잡이다.
어느 날 한 목사가 가난한 교우 얘기를 듣고 그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이 없었다. 다음 날도 똑같이 기도했는데 역시 평안이 없어서 결국 그는 기도를 그치고 말했다. “하나님! 신경 쓰지 마세요. 이 문제는 제가 맡을게요.” 그리고 그날 그 교우 집으로 한 달 치 식량을 익명으로 배달시켜 주었다. 그때 깊은 마음의 평안이 임했다. 그렇게 사니까 그 목사에게도 수시로 익명의 선물들로 인해 자신과 가정의 필요가 채워지는 역사가 나타났다.
기도하고 그냥 끝내기보다 할 수 있다면 기도한 것을 행동과 실천으로 구체화시키라. 다만 추상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말을 오해하지는 말라. 한 자매는 배우자 기도를 하면서 욕심을 품고 구체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의 배우자는 키가 181센티가 넘게 하소서.” 그런 구체적인 배우자 기도제목을 10개나 가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기도 제목에 인간적인 욕심이 담겼음을 깨닫고 기도 제목을 잘 설정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구체적인 기도란 욕심을 품고 요구조건을 나열하는 기도가 아니라 사소한 일상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기도다. 하나님의 뜻과 성경 원리 안에서 기도하고 행동과 실천에 나서면 하나님은 가장 선하게 그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구체적인 믿음의 기도를 무책임한 삶을 낳는 기도로 오해하지 말라. “믿습니다.”라고 외치며 기도했으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그 다음 결과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라.
5. 평화의 기도
본문 4절을 보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죄 사함의 기도를 드릴 때 늘 전제로 있어야 할 것이 용서다. 용서하며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기도 응답의 가능성도 커진다. 반면에 용서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면 내적인 평안도 없고 외적인 평화도 이뤄지지 않는다. 기도의 최종 목적지가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되도록 용서하고 이해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구하라.
예전에 A 목사가 교회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기도할 때 갑자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회개 기도가 나왔다. 그때 버려진 공간이 하나씩 꾸며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지만 재정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매일 간절히 하나님의 공급을 위해 기도했는데 갑자기 그 얼마 전에 친밀한 동료 B 목사의 필요에 무심했던 일이 생각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필요를 구하는 간구 기도 대신 용서를 구하는 회개 기도가 나온 것이었다.
당시 A 목사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얼마 전에 B 목사가 힘든 사역지에서 교회 공사를 하는 소식을 들었지만 무심하게도 전혀 도움의 손길을 펴지 못했다. 만약 그 동료 목사가 다급히 도움을 구했다면 어떻게든지 도울 방법을 찾아보았겠지만 조용히 있어서 공사가 잘 진행되는 줄 알고 도울 생각을 못했다. 그때 B 목사가 얼마나 속이 탔을까 하고 생각하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회개 기도 후 A 목사가 B 목사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이전에 교회 공사를 할 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 B 목사가 말했다. “목사님! 요새 힘든가 봐요.” A 목사가 말했다. “아니요. 별로 힘든 거 없어요. 힘들어서 전화한 것이 아니라 정말 미안해서 전화했어요.” 그리고 전화를 끊고 앞으로는 하나님의 일에 조금 더 세세한 관심을 기울이고 감동되는 대로 선제적으로 헌신하자고 다짐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A 목사 사역의 필요를 선제적인 헌신의 손길을 통해 수시로 채워주셨다.
어떤 상황을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그 상황에 대한 이해력과 이해심이 깊어지기 힘들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남의 마음과 형편을 좀 더 헤아리고 이해하려는 심도 있는 기도 훈련이다. 나의 기도에 이해와 용서가 넘친다면 신기하게 나의 처지와 형편을 헤아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넘칠 것이다. 요즘 세상인심이 많이 각박해졌다. 교회인심도 많이 약해졌다. 이런 때일수록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평안 가운데 필요를 구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에 기쁘게 반응하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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