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있는 삶을 살라
본문말씀 : 출애굽기 26장 14절
14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 중심이 있는 삶을 살라 >
성막 지붕은 네 겹의 덮개로 되었는데 네 겹의 덮개가 필요한 이유는 광야의 악조건에서 성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덮개는 화려하게 수놓인 세마포 덮개였고, 두 번째 덮개는 흰색으로 된 염소 털 덮개였고, 세 번째 덮개는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였고, 네 번째 덮개는 검은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였다.
해달의 가죽은 홍해 바다에서 서식하는 바다 물개(물소) 가죽을 뜻한다. 성막을 겉에서 보면 검은색 해달 가죽으로 덮여 있어서 화려한 모양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세마포에 화려하게 수놓인 그룹 천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처럼 교회는 겉모습보다 속모습이 더 좋아야 하고 교인도 겉마음보다 속마음이 더 좋아야 한다. 그처럼 중심이 있는 성도가 되고 중심을 볼 줄 아는 성도가 되라.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인생은 현저히 달라진다. 어떤 시야를 가졌느냐에 따라 삶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게 된다. 왜 말씀과 기도가 필요한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면을 보는 영적인 시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보고 본능을 따라 판단하면 축복을 받기도 힘들고 축복을 오래 간직하기도 힘들지만 내면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판단하면 축복받고 축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
하드웨어도 없는 사람보다 하드웨어를 가진 사람은 복된 사람이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가진 사람은 더 복된 사람이고, 소프트웨어보다 콘텐츠를 가진 사람은 더욱 복된 사람이다. 하드웨어보다 콘텐츠의 중요성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중심이 있는 삶을 살면 언젠가 반드시 쓰임 받는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중심을 가지고 늘 성실하고 진실하고 충성된 모습으로 살라. 하나님은 남이 못하는 것을 해낼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중심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 헌신이 흔들리지 말라 >
당시 신발을 만드는 데 쓰였던 해달 가죽은 사막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그런 귀한 물건을 하나님은 거룩한 성막을 든든하게 만들도록 드리라고 하셨다. 그 말은 백성들에게 신발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마치 모세가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을 때 “네 신을 벗으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요구와 같다. 인간적으로 보면 무리한 요구인 것 같다. 어떤 백성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에게도 신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광야 속에서 왜 무리한 요구를 하십니까? 이제 곧 신발이 닳습니다. 이 가죽을 바치면 우리는 맨발이 됩니다.”
하나님이 해달 가죽을 바친 그들을 맨발로 만드셨는가? 신명기 29장 5절을 보면 모세는 고별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헌신하는 자의 정성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지켜주신다.
가끔 물질적인 헌신의 감동이 생길 때가 있다. 그때 가슴을 펴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 것을 사용하소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환원하겠습니다. 오늘까지 은혜를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렇게 결단하면 사탄이 와서 속삭인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살려고 해?” 그 속삭임이 거룩한 충정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일을 부도내려고 한다. 그 속삭임에 넘어가 헌신을 포기한다면 거룩한 자존심도 포기하는 셈이 된다.
성도의 헌신은 당연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사람의 힘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라고 하며 헌신을 주저한다면 행복도 주저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힘이 없으면 일을 못하는 분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헌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받고 복을 내리시는 분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예수님의 뜻과 관계없이 행동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주님의 길을 택했다면 주님의 뜻도 택함으로 주님의 복을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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