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라
본문말씀 : 출애굽기 26장 31-33절
31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32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33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라 >
성소의 휘장은 크게 바깥 휘장(36절)과 안 휘장(31-33절)으로 나눌 수 있다. 바깥 휘장은 뜰에서 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통과하는 커튼이고 안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분리하는 커튼이다. 바깥 휘장은 그룹 천사들이 수놓아지지 않았는데 안 휘장에는 그룹 천사들이 정교하게 수가 놓아졌다(31절). 안 휘장에 그룹 천사가 수놓아져 있고 그 휘장 안의 지성소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신약 성도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히브리서 10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성소의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라고 했다. 또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실제로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찢을 수 없는 휘장이 찢어진 기적적인 일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즉 예수님 때문에 지성소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인간적인 방법을 찾고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너무 다니지 말라. 복된 인맥과 연줄은 유력한 사람을 찾아다닐 때 얻어지지 않고 진실과 성실로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얻어진다. 약점과 한을 사람에게 찾아가서 털어놓으면 더 어려워질 때가 많다. 그런 일을 몇 번 경험하면 “사람을 찾으면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만큼 경험했으면 더 이상 그런 경험을 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 와서 자기의 사정을 털어놓으라. 그렇게 해결하라고 하나님이 교회를 주시고 예배할 마음도 주시고 기도할 마음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 털어놓으면 영혼에 평안이 넘치게 되면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 일이 가능하도록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휘장을 열어주셨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자리는 어느 자리보다 복된 자리다.
<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라 >
왜 하나님은 휘장에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천사들인 그룹 천사들을 수놓게 했는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함부로 훼손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대제사장도 아무 때나 들어가거나 피 없이 들어가면 즉시 죽어 넘어졌다. 오직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온몸에 속죄의 피를 뿌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은 성도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 수소를 잡아 속죄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제단에 핀 숯을 향로에 가득 담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 향 가루를 숯에 뿌려 향 타는 연기가 법궤의 덮개를 가리게 했다. 그리고 수소의 피를 덮개 주위에 뿌렸고 백성들이 바친 숫염소의 피도 덮개 앞뒤에 뿌렸다. 그런 대제사장의 진중한 속죄의식은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고 거룩한 삶을 도전했다.
권위와 형식은 방종을 경계하는 장치로서 필요한 것이다. 성경에는 거룩함을 도전하고 방종을 경계한 말씀이 많다.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불로 향을 피웠다가 죽었다(레 10:1-2). 법궤를 실은 수레를 몰던 웃사는 법궤에 손을 댔다가 죽었다(삼하 6:6-7). 웃시야 왕은 제사장을 대신해 분향하려다가 나환자가 되었다(대하 26:19). 바울은 성찬식을 오용해 죽은 자가 있다고 했다(고전 11:27-30).
권위주의는 배격하되 권위는 존중하라. 형식주의는 배격하되 형식과 질서는 존중하라. 전통주의와 의식주의는 배격하되 전통과 의례가 주는 교훈은 깊이 되새기라. 자유와 평안이 무질서와 무책임을 조장하는 방종이 되면 안 된다. 신약성도는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지성소의 의미에 더 경외감을 가지고 지성소의 신비에 더 감동해야 한다. 사랑은 ‘경외하는 마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방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최대한 힘써서 높이는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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