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누리는 행복

[ 지거 쾨더 : 미리암의 찬양 ]



본문말씀 : 출애굽기 26장 15-17절


15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16 각 판의 길이는 열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반으로 하고 17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 널판의 역할과 의의 >
 
 성막 널판은 2가지 큰 역할을 한다. 첫째, 성소 전체의 틀을 이룬다. 둘째, 광야의 비바람과 모래바람을 막아 성소 내부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그래서 성막 널판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다. 만약 그 하나라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성소는 무너진다. 성막을 오늘날의 교회로 보면 성막 널판은 한 명의 교인과 같다. 그처럼 교인 한 명 한 명이 몸의 한 부분과 같다고 해서 ‘지체’란 표현을 쓴다. 지체의식이 탁월할 때 신앙생활도 견고해진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을 보면 성막 널판을 상징한 듯한 말씀이 나온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은 그의 체험에서 나온 고백이다.

 바울이 위대한 종이었지만 혼자 복음화하지 않고 늘 동역자가 있어서 큰일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신약 성경에는 바울을 감동시킨 인물이 많았다. 예를 들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따뜻한 사랑을 항상 잊지 못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인은 바울의 옥중수발을 위해 에바브로디도 집사를 파송했고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을 들고 자원해 그 먼 길을 달려왔다. 그들은 바울만큼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 나오는 아리스다고는 설교한 기록도 없고 기도나 전도를 많이 한 기록도 없다. 그런데 바울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고난의 현장에 같이 있어주었다. 그런 조력자들로 인해 바울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처럼 드러나지 않은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한 존재다.

< 함께 누리는 행복 >

 행복은 더불어 누려야 참 행복이다. 남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원리를 터득하라. 그 원리를 모르면 헛된 세월만 보내게 된다. 바로 여기에 현대인의 불행이 있다.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심으로 인해 남을 불행하게 해도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자신의 불행이 지속되는 것이다.

 중매할 때 보면 남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내가 그 사람을 통해 어떻게 복을 얻을까?” 하는 것만 열심히 계산한다. 자기만 행복하고 자기만 즐기겠다는 사고방식은 결국 자신을 무서운 함정에 빠뜨려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불행으로 몰게 된다. 반면에 이기적인 계산 없이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면 행복과 축복은 결코 그를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기 행복만을 찾는다. 심지어는 자기 행복을 위해 어디에 소속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정신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은 이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팔 걷어붙이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려고 작정해야 남도 행복해지고 나도 행복해진다. 수고해야 할 일을 남에게 떠맡기고 내 행복만을 추구하면 얻는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계산이 밝을수록 오히려 불행하게 살 때가 많다.

 함께 누리는 행복의 원리에 정통한 성도가 되라.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나도 행복해지고 남을 축복해주어야 나도 축복 받는다. 내가 축복한 사람이 축복 받을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빌어준 복이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결국 남을 축복해 주는 장사는 밑지는 일이 없는 최고의 거룩한 장사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 축복을 줌으로 더 많은 축복을 되돌려 받는 거룩한 장사꾼들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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