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눈물을 회복하라
본문말씀 : 마태복음 5장 4절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진정한 친구를 얻으라 >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가? 애통할 때 참된 친구를 얻기 때문이다. 애통한 순간에 누구는 내 곁을 떠나지만 친구는 내 곁을 지켜준다. 결국 애통은 진짜 친구를 얻게 하는 시금석이다. 교회가 애통한 순간을 만나면 그때 진짜 목자와 진짜 교인을 얻는다. 애통한 순간에 내 곁에 함께 있어주고 마음을 함께 해주는 진짜 친구를 얻는다면 애통한 순간을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다.
기도하다 지쳐 잠든 후 내일은 오늘과 다를 줄 기대했는데 아침이 되니까 어제의 문제가 여전히 오늘의 문제로 다가올 때 영혼은 깊은 수렁에 빠진다. 바로 그때 누군가 찾아와 축 처진 어깨를 감싸며 “많이 힘들지?”라고 하면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새 힘이 생긴다. 그때는 그가 왜 그렇게 힘이 되는지 모른다. 좋아진 것도 없고 해결된 것도 없는데 그 위로가 꿀맛 같이 느껴진다.
내 곁에 같이 있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기뻐하고 감사하고 행복해하라. 사람은 배고파 죽는 것이 아니고 외로워 죽는 것이다. 또한 병들고 힘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해서 죽는 것이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다. 힘들어도 더불어 힘들면 괜찮고 죽어도 더불어 죽으면 괜찮다. 태산 같은 문제가 있어도 더불어 산을 넘으면 태산길이 흥미진진해지고 한 겨울 칼바람에도 누군가 함께 있으면 한여름처럼 따뜻해진다.
사람은 사소한 것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또한 사소한 것으로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을 잃기도 한다. 어떤 때는 어른도 유치원생처럼 유치하다. 주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하다가도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무너진다.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억울한 누명에 정신을 잃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고 하나님을 버선발로 달려오시게 할 애통이 필요한 것이다.
< 사랑과 눈물을 회복하라 >
서로 위로해주라. 서로 위로의 문자 메시지도 보내주라. 한번 위로를 받으면 두 번 위로를 주고 한번 위로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두 번 위로의 문자메시지를 주라. 물질 문제처럼 위로 문제에서도 받기보다 주기를 힘쓰라. 내 격려의 말 한 마디가 누군가를 살린다. 심지어는 자신도 살린다. 내가 위로해주었는데 오히려 내 영혼이 사는 축복이 바로 하나님이 감춰두신 역설적이고 신비한 축복이다.
부부끼리도 서로 위로해주라. “여보!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내가 조금 더 잘해야 했는데...” 그 말이 마음의 천 냥 빚을 갚는다. 부자간에도 서로 위로해주라. “얘들아! 힘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엄마아빠! 힘들게 해서 죄송해요.” 얼마나 행복한 가정인가? 교회에서도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 “집사님! 목사님! 별로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요.”라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면 그때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그곳에 지상천국이 펼쳐진다.
사랑의 눈물을 회복하라. 애통의 눈물을 사랑의 눈물로 승화시키라. 전설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말년에 에베소 교회의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설교하자 제자들이 질문했다. “요한 사도님! 왜 매번 사랑만 설교하세요?” 그때 사도 요한이 말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배운 것이나 다름없네.” 그 사도 요한의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은 첫 사랑의 눈물이 회복되길 원한다. 눈물은 육체와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최고의 강장제이고 병든 영혼과 육신까지 치료하는 최선의 치료제다.
가끔 답답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진정되고 시원해진다. 그런 눈물도 귀하지만 그 눈물보다 더 귀한 눈물이 회개의 눈물이다. 회개의 눈물은 잃었던 첫 사랑도 찾게 하고 병도 극적으로 치유시켜준다. 눈물을 회복해 잠도 잘 자고 피도 맑아지고 뼈도 튼튼해지고 관계도 회복되는 축복을 받으라. 그처럼 첫 사랑의 눈물을 회복하면 모든 얽혔던 문제도 신기하게 풀릴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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