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사명을 이행하는 길
본문말씀 : 마태복음 28장 16-20절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낮은 자리는 복된 자리다 >
필자는 미국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할 때 큰 기대감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하나님이 폼 나는 좋은 자리를 예비하셨겠지.” 그러나 하나님은 폼 나는 좋은 자리가 아닌 맨땅에서 개척하는 자리로 이끄셨다. 당시에는 능력도 부족했지만 후원자나 동역자도 거의 없었기에 교회 개척은 무모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인천에서 분당으로 목회지를 옮길 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이력도 꽤 붙었으니 하나님이 좀 더 폼 나는 자리를 주시겠지.” 그런데 하나님은 또 다시 맨 땅에서 개척하게 하셔서 폼 나는 자리에 대한 환상은 곧 사라졌다. 그처럼 하나님은 내일의 더 큰 복을 주시려고 계속 낮은 자리로 이끄실 수 있다. 그때 하나님이 선하신 뜻을 믿고 감사하며 용기를 내라.
지금 다시 그때처럼 맨 땅에서 교회를 개척하라면 도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당시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믿음과 젊음과 패기는 있었다. 그 후 지금까지 달란트에 맞게 힘써 달려서 여러 방면에서 꿈도 이뤄지고 사역 지경이 꽤 넓혀졌다. 지금은 80여명의 사역자가 소속된 C&MA 한국 총회도 결성할 수 있었고 총회 신학원 과정도 생겨 잘 운영되고 있고 <월새기(월간새벽기도)>도 발행할 수 있었다.
<성경전권강해>도 85% 정도 완성했다. 2030년쯤에는 100% 완성될 것이다. 앞으로 때가 되면 <월새기 영어판>도 발행되면서 사역 지경이 한 차원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런 열매를 생각하면 목회 초기에 하나님이 낮은 자리에 있게 하신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가 나온다. 가끔 낮은 자리에 처하면 말씀 묵상이 오히려 더 잘 된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낮은 자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예고된 자리다. 그처럼 은혜 받는 자리는 대개 낮은 자리이기에 지금 낮은 자리에 있으면 더 큰 은혜를 기대하며 힘을 내라.
아직 기억력이 있고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가끔 새롭게 다짐하라. “하나님! 낮은 자리에 처해도 좋습니다. 저의 사명을 늘 잊지 않게 하시고 남은 삶을 통해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와 세계 선교를 멋지게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물과 후대 사역을 잘 준비한 후 하나님께 가게 하소서.”
< 대 사명을 이행하는 길 >
사명에 붙들려 사는 것은 복된 일이다. 그 복을 위해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남기셨다. 이 명령은 너무 중요해서 대 사명 혹은 지상 명령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열정을 품고 마지막 때의 대 사명을 잘 이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선교 현장으로 가라
예수님의 마지막 선교 명령이 주어진 곳은 갈릴리였다. 거기서 예수님은 절대 권세에 대한 확신을 주신 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고 명령하셨다. 그 말씀은 복 받은 후에는 적극적으로 선교 현장으로 가라는 뜻이다. 선교하지 않으면 소유와 성공이 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은 성령 충만해야 선교할 수 있는 줄 알고 성령 충만을 기다리지만 성령 충만은 실내보다는 현장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실내에서 성령 충만만 구하지 말고 선교 현장에서 주는 삶을 살라.
성령 충만을 원하면 많이 사랑 받기보다 많이 사랑하기를 힘쓰라. 그래야 많이 사랑도 받고 복도 받는다. 복 받는 것만 추구하지 말라. 복 받고 복 주기를 힘쓰라. 복은 나눠 줄 때 참된 복이 된다.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하면서 말한다. “배워서 남 주냐?” 나 자신을 위해 배운다는 뜻이다. 그러나 배움은 남을 위해서도 하는 것이다. 많이 차지하려고 배우기보다 많이 도와주려고 배우라.
성도가 돈을 버는 목적은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사용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의 큰 불행 중 하나는 잘 쓰는 의로운 부자가 적은 것이다. 의로운 부자들은 돈을 벌면 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재산을 공익을 위해 쓰다가 죽을 때는 재단이나 교회나 선교 단체 등에 기부한다. 그처럼 나의 부를 남을 위해 쓸 줄 아는 것이 진짜 성공이고 나눌 줄 아는 복이 참된 복이다. 복을 많이 받고 복을 많이 나눠 주라.
가끔 선교 사역자의 힘든 소식을 들으면 무심하게 지나치지 말라. 나의 가정과 교회만큼 나의 관심과 영역 안에 있는 선교 사역도 소중히 여기라. 선교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으로서 나도 마땅히 해야 하지만 여건상 풀타임으로 선교할 수 없는 나 대신 누군가가 선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선교 사역에 대해 늘 관심을 기울이라. 선교 사역자의 수고를 기억하고 그의 기도 제목에 동참할 때 참된 복이 주어진다.
2. 주님의 제자를 삼으라
예수님은 가라고 한 다음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말씀하셨다. 이 주님의 명령에 피가 끓는 마음을 가진 12명 정도만 있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 사실이 희망이다. 어떤 교주는 수많은 추종자를 끌고 다니지만 대부분의 목사나 선교사나 평신도 리더들은 소수의 인원과 씨름하면서 그들을 제자로 만들려고 애쓴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적어도 실망하지 말라. 세상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사람은 소수의 제자를 인물로 만드는 사람이다. 결국 선교는 인생과 교회 재정의 낭비가 아니라 복과 능력이 흘러 들어오게 하는 통로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별명을 얻고 가장 번성할 때는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냈던 빅토리아 여왕 때였다. 미국은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선교를 많이 할 때 가장 번성했다. 지금은 한국 교회가 많이 위축된 상태이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파고가 밀려오는 때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가 선교와 나눔에 힘쓴다면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고 지구촌의 복의 근원 국가로 삼아 주실 것이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내가 먼저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나를 포기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가족도 포기했고 직장도 포기했다는데 제자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 왜 그런가? 다른 것은 포기했지만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된 승리를 가장 방해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많은 것을 드리는 것보다 자신을 먼저 드리는 것이 우선이다.
내 인간적인 야망이 죽어야 하나님이 거룩한 비전이 살아난다. 왜 문제가 풀리지 않는가? 시간이나 소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는 나를 드리는 참된 제자의 결핍 때문이다. 십자가를 가슴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교인이 아닌 십자가를 등과 어깨로 지는 제자가 되라. 그처럼 십자가를 지고 거룩한 관심을 확대시킬 때 선교 지경도 확대되고 축복 지경도 확대될 것이다.
3.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단순히 가르치기보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이론적인 가르침으로만 끝나지 말고 행동하는 믿음으로 실천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고백적인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한 대형 교회 목사의 글이다. 어느 겨울 날 눈 때문에 교회 앞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교인 행렬이 길었다. 줄의 맨 앞에는 한 젊은 여자 집사가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오들오들 떨며 교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 밀려서 셔틀버스가 행렬 중간쯤 서자 갑자기 뒤에 있던 교인들이 마구 버스로 올라탔다. 그날은 성찬식 날이었는데 교회 앞마당에서 교인끼리 새치기하는 모습을 본 목사가 목양실에서 통곡했다.
그런 모습들은 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런 유사한 일들로 인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멀리한 사람이 많다. 나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시험 들지 않도록 주의하라. 어떤 사람은 교회 안내위원이 좌석의 안 자리로 들어가 달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 믿음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가 예배 중에 열심히 말씀을 받아 적고 있었다. 말씀에 은혜 받으면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열정과 지혜를 겸비하라.
지금 <월새기>를 가장 많이 구독해 받는 사람은 카톨릭 신자다. 그는 <월새기> 말씀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면서 매월 150권을 신청해 거주지 근처 교회 앞에서 나눠 준다. 몇몇 교회에서 그 문제로 항의 전화가 왔다. <월새기> 사역팀이 그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월새기 말씀으로 은혜 받고 귀하게 여기고 자발적으로 배포하는 것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남의 교회 앞에서 뿌리지 말고 다른 적절한 곳에 뿌려 주세요.”
열정과 지혜를 겸비한 믿음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하고 좋은 역사를 일으킨다. 왜 믿는가? 구원받기 위해서지만 구원받은 사실은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출발선에서 출발한 것이다. 구원받은 후 남은 인생은 성도다운 삶으로 채워가라. 말씀에 은혜 받는 것으로 끝나지 말라. 주일에 예배와 말씀을 통해 은혜 받았는지는 주중에 성도답게 사는지에 따라 판명된다. 말씀의 은혜를 교회 앞마당에서 흘리고 교회를 떠나는 삶이 없게 하라.
성도가 지상 명령을 이행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복이다. 사람들이 왜 무속인을 찾는가? 귀신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과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일회성 복과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은 후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평안과 기쁨과 축복을 누리는 종교다. 늘 굳건한 믿음과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 현장으로 가서 제자를 삼고 인물 성도를 예비함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복을 누리며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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