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을 이겨내는 길
본문말씀 : 사무엘상 17장 1-26절
... 2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 침묵 소리에 귀 기울이라 >
오래 전에 첫 딸 은혜가 유치원을 다닐 때 저녁 6시쯤 저희 부부가 유치원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기다리는 아내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집에 은혜가 최고로 좋아하는 오뎅을 요리해 놓고 은혜가 그것을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행복했을 것이다. 저도 맛있게 오뎅을 먹는 은혜의 귀여운 입술을 상상하며 마음이 흐뭇했다.
마침내 유치원 버스가 도착했다. 은혜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슈퍼에 들르자고 졸라댔다. 그때는 그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집에 은혜가 가장 좋아하는 오뎅을 준비해 놓았는데 과자로 입맛을 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 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은혜가 서럽게 울었다. “껌 사줘요. 과자 사줘요. 엉엉엉엉!” 저희는 부드러운 말로 은혜를 달랬다. “은혜야! 집에 가면 맛있는 오뎅이 있어. 조금만 참아.” 그래도 은혜는 눈앞에 슈퍼를 놔두고 군것질을 못한 것이 못내 억울한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서럽게 울었다.
그때부터 저희 부부는 그냥 침묵했다. 곧 은혜의 울음은 환희로 바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곧 집에 도착해서 아내가 재빨리 서럽게 우는 은혜에게 냄비에서 오뎅 꼬치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때 갑자기 은혜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다. 조금 후 행복하게 오뎅 꼬치를 먹는 은혜에게 아내가 물었다. “은혜야, 맛있어?” 은혜가 대답했다. “네. 엄마, 고맙습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쓴다. “하나님! 이 문제와 억울함을 빨리 풀어 주소서.” 그때 하나님은 그를 부드럽게 달래신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래도 그가 계속 떼를 쓰면 그때는 그냥 침묵하신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원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안겨 주신다.
힘들 때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가 없다고 쉽게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침묵은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는 영양가 없는 껌과 과자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종합적인 영양을 고려해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잠시 침묵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에는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한 음성이 들어있다. 그 침묵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탄 마귀와 문제와 시련을 극복하고 최종 승리를 이뤄내라.
< 블레셋을 이겨내는 길 >
지금도 사탄 세력을 상징하는 블레셋은 끊임없이 영혼과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한다. 블레셋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두려움에 빠지지 말라
믹마스 전투 이후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엘라 골짜기에서 다시 맞붙었다. 그때 블레셋 군대는 싸우려고 유다에 속한 소고까지 밀고 들어와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쳤다(1절). 사울 군대도 엘라 골짜기 근처에 진 쳐서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두 진영은 양쪽 산에 섰다(2-3절). 믹마스 전투에서 비참하게 패배했던 블레셋이 그때는 자신만만했다. 골리앗 때문이었다. 골리앗은 블레셋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선봉장으로 블레셋 5대 도시 중 하나인 가드 사람이고 키가 여섯 규빗 한 뼘(대략 290센티)이었다(4절).
골리앗은 머리에 놋 투구를 썼고 몸에 오천 세겔 무게의 놋 조각을 비늘처럼 붙인 비늘 갑옷을 입었다(5절). 한 세겔은 약 11.5g이기에 놋 오천 세겔은 약 57.5kg이다. 또한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는데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약 7kg)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했다(6-7절).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소리쳤다.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해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고 내가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 섬기라. 내가 너희를 모욕했으니 나와 싸울 사람을 보내라(8-10절)” 골리앗은 블레셋 대표인 자신과 사울의 신복 중 한 사람이 일대일로 붙어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놀라 크게 두려워했다(11절).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은 전의를 잃게 만들어 자신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키고 결국 실패하게 만든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공포에 대한 공포를 가지는 공포 공포증이다. 한 연구가는 두려워하는 것의 약 85%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나는 15%의 일도 대개 극복과 통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두려움은 사치라는 암시다.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는가? 최상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정말로 두려워하며 예배하면 세상 두려움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2.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으라
블레셋과의 전쟁에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의 여덟 아들 중 20세 이상의 세 아들인 장남 엘리압, 둘째 아비나답, 셋째 삼마가 참전했다(12-13절).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명칭으로 선지자 미가가 메시야의 탄생 장소로 예언한 곳이다(미 5:2). 이새의 아들 8명 중 막내가 다윗이었다(14절). 역대상 2장을 보면 이새의 아들은 7명이고 다윗이 그 중 막내로 언급된다. 아마 원래는 8명인데 한 명이 일찍 죽어서 역대상에는 7명으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다윗이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부친의 양을 치고 있었다(15절). 왜 다윗이 사울에게로 왕래했는가? 사울이 악령에 사로잡힐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악령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다윗은 당시에 왕 앞에서 수금 타는 일과 부친의 양 치는 일을 병행하던 성실하고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10대 중후반의 청소년이었다.
그때 골리앗이 조석으로 전장에 나와 이스라엘을 조롱해 이스라엘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을 때 이새가 다윗에게 형들을 위한 먹을 것 심부름을 시켰다(17-18절). 그래서 다윗이 진영으로 가서 형들을 문안할 때 마침 골리앗이 앞으로 나와 이스라엘을 조롱했다(23절). 그때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심히 두려워하며 골리앗 앞에서 도망쳤다. 그때 다윗은 말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26절).”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이 모욕당하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했고 동시에 하나님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으면 부정적인 현실을 창조적인 현실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랜드 캐니언을 보면서 목사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로 인해 감탄할 때 옆에 있던 목동이 “여기서 소를 놓치면 어떻게 찾지?”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똑같은 현실 앞에서 부정적인 목동의 관점이 아닌 창조적인 목사의 관점을 가질 때 승리 가능성은 커진다.
3 문제에 당당하게 맞서라
블레셋이 영적으로 사탄의 세력을 상징한다면 골리앗은 큰 문제를 상징한다. 큰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워하며 떨지 말고 다윗처럼 당당하게 맞서라. 당시 다윗과 골리앗은 둘 다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그 둘의 ‘자신만만’에는 차이가 있다. 골리앗은 자신의 덩치를 믿고 자신만만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자신만만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믿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라. 먼저 사탄과 문제의 기를 죽여야 진짜 사탄과 문제를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은 내게 그런 믿음을 기대하신다.
밤에 어린아이한테 혼자 으슥한 길을 가라고 하면 대부분의 어린아이는 무섭다고 울지만 아빠가 함께 가면 어린아이가 으슥한 밤길에서도 즐겁게 콧노래를 부른다. 아빠의 힘 있는 손에 붙들리니까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셔도 늘 형통한 일만 생기지는 않고 종종 어려운 밤길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도 하나님이 내 손을 붙들어 주시면 평안하고 담대하게 그 밤길을 갈 수 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탄 배도 풍랑을 만났다.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일이 형통하고 남편이 출세하고 자녀가 시험에 척척 붙는다는 말을 믿지 말라. 그런 말은 성경에 없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자도 환난을 당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가끔 실패하고 패배해도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문제와 실패는 나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보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 문제 속에서 나의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보여드리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있다. 요셉은 어려워도 늠름하게 살았고 감옥에서도 싱싱하게 살았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는가?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아서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있든지 굳건한 믿음으로 살면 결국 승리한다.
사람은 혼자서 사탄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주시면 얼마든지 사탄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기를 위해 기도하라. 동시에 내가 하나님 편이 되기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실천하라. 하나님을 나의 편의대로 이용하지 말라. 다급한 문제와 기도 제목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지 말고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헌신해서 내가 하나님 편임을 인정받으라.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다. 문제가 없는 인생을 원하지 말고 문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 문제가 생기면 낙담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문제를 뛰어넘으라. 지금의 문제와 시련은 지금 무엇인가를 성취해 나가는 증표다. 그러므로 문제가 계속되면 “나는 지금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 과정 속에 있다.”라고 여기고 더 하나님 편에 서서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그 문제를 통해 더욱 복된 역사를 허락하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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