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3대 고백
본문말씀 : 시편 19편 12-14절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2)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복된 3대 고백 >
말은 삶과 생각이 표현된 것이다. 말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특히 복되게 살려고 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말씀대로 살려는 자세다. 본문에는 말씀대로 살려는 다윗의 기도가 나온다. 그 기도를 통해 교훈 받는 복된 3대 고백이 무엇인가?
1.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고백
다윗이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입니까?”라고 말한 것은 자기 허물을 깨닫는 삶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허물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눈빛도 흔들리고 마음이 맑아지면 눈빛도 맑아진다. 외모가 경쟁력이란 말도 있지만 진짜 경쟁력의 원천은 마음이다. 외면을 보는 눈보다 내면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 특히 자기 내면을 잘 성찰해야 한다.
자기를 볼 줄 아는 성찰의 능력을 키우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 타인과 접촉하는 시간이 많으면 자기를 살피는 능력이 떨어진다. 자기를 정직하게 살필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남의 허물을 덮어줄 줄 아는 용서의 능력과 가능성도 커진다. 더 나아가 내면의 성찰 능력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하라. 사람은 말씀과 하나님을 가까이할수록 자신의 허물을 조금이라도 더 깨닫는다. 말씀을 앞세워 비고의적인 허물을 줄일수록 그만큼 더 복된 존재가 된다.
2. 고의로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는 고백
무의식적인 죄인 허물보다 고의로 짓는 범죄가 더 큰 죄다. 고의로 죄를 지으면 그 죄에 의해 휘둘리다가 죄를 감추려고 거짓된 언행을 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고 다윗은 고의로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13절). 근원적인 ‘원죄’와는 달리 살면서 짓는 죄를 ‘자범죄’라고 한다. 자범죄 중 가장 나쁜 죄는 ‘고의로 짓는 죄’다. 무의식적이고 충동적으로 행한 죄보다 죄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범한 죄는 죄로 인한 결과는 같아도 그 죄질은 더 나쁜 것이다.
또한 고의로 짓는 죄가 나쁜 이유는 양심을 저버리는 죄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잘 몰라도 때로는 자기 양심이 죄로 인식할 때도 있다. 그때 내적인 하나님의 음성인 양심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각성시킬 때 그 양심의 소리를 거부하고 죄를 짓는 것도 고의로 범한 죄가 된다. 또한 사전에 어떤 죄에 대해 경고를 받거나 주위의 선한 충고를 받고도 그 죄를 짓는다면 그것도 고의로 죄를 범한 셈이 된다. 그래서 늘 내적인 음성인 양심의 소리와 지혜자의 충고를 겸허하게 들을 줄 알라.
3. 말과 묵상이 열납되게 해달라는 고백
다윗은 하나님 앞에 고백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반석이고 구속자란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먼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마음의 묵상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14절).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도’를 뜻한다. 성도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말과 생각을 해야 한다. 즉 기도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다 하나님께 드려질 만한 합당한 것이 되게 해야 한다. 기도와 말과 생각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생각한 것이 말과 기도로 나오는 것이다.
말과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한다는 다윗의 기도고백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도전을 준다. 바른 믿음은 바른 삶을 통해 잘 증명된다. 더 나아가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은 신언행일치(信言行一致)의 삶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성도는 언행이 일치된 진실한 모습을 통해 주님을 나타내는 ‘주님의 증거물’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말은 있지만 실천이 없는 삶은 부끄러운 삶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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