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

 




본문말씀 : 마가복음 2장 5-12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 >

 본문에는 상에 들려서 예수님께 왔던 중풍병자가 오히려 상을 들고 나가는 기적을 통해 그 장면을 본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주는 교훈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불굴의 믿음을 가지라

 본문 앞에는 중풍병자를 멘 네 사람이 수많은 무리로 인해 예수님께 갈 수 없게 되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늘 사람의 생각을 초월해 펼쳐진다. 당시에 중풍병자는 치유를 위해 왔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일시적인 건강보다 영속적인 치유의 원천인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셨다. 사람들은 화려하게 보이는 치유의 기적을 더 원하지만 하나님의 진짜 은혜는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의 은혜다. 예수님이 믿음을 보고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주셨듯이 하나님은 내가 가진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의 믿음을 보신다.

 어느 날 한 성도의 자녀가 심한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그 병으로 인해 부부도 울고 가까운 교우도 울었다. 며칠 후 그 성도가 믿음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녀와 좋은 나날을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극심한 시련이 현실로 닥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것이 불굴의 믿음이다. 또한 담임목사는 기도하면서 최상의 기쁨을 교회와 목사에게 주었던 그에게 닥친 시련은 선한 결말을 낳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결국 그 자녀는 극적인 회복의 은혜를 입었다.

 가끔 길이 막히고 시련이 닥치면 그 위기를 계기로 더 준비하고 더 믿음을 키우라. 하나님과 교회에 기쁨을 선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선한 결말이 반드시 준비될 것이다. 병과 시련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살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중병에 들면 자신에게 독백으로 권고하라. “이제 너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축하한다.” 병과 시련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며 자축하는 불굴의 믿음을 가지면 기적적인 회복의 은혜를 입을 것이다.

2. 사죄의 은혜를 입으라

 예수님이 중풍병자 일행의 믿음을 보고 내리신 조치는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씀뿐이었다. 놀라운 깜짝 기적을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에 실망했을 것이다. “겨우 죄 사함뿐이냐?” 사람들은 죄 사함이 얼마나 크신 은총인지 잘 깨닫지 못하고 그런 은총보다는 신기한 체험을 더 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환상적인 체험보다 죄 사함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셨는가? 사람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의 뿌리는 죄라는 뜻이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 이면을 보는 눈을 기르라. 사람들은 불행의 원인을 돈이 없는 문제나 다른 어떤 문제 때문이라고 여기지만 사람에게 생기는 모든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다. 물론 내게 생기는 어떤 문제가 어떤 특정한 죄 때문은 아닐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내면에 감춰진 죄를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이번 문제를 통해 무엇을 회개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회개를 구하는 겸손한 기도를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 또한 회개할 때는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모양만 취하지 말고 죄를 뿌리 뽑는 참된 회개를 하라. 죄의 뿌리는 그대로 두고 드러나 죄의 가지만 잘라내는 회개는 또 다시 새로운 죄를 짓게 만든다. 진심으로 회개해야 지속가능한 은혜의 문이 열린다.

3. 드리고 나누고 베풀라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 사함을 선포하자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7절).’ 당시 예수님의 율법적인 잘못을 사찰하려고 무리들 틈에 섞인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포하시자 하나님 한 분만 죄를 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공격할 호재를 잡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특히 고귀한 율법 선생인 서기관들에게 비천한 목수 출신인 예수님의 사죄 선포는 신성모독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예수님은 치유를 통해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알리시려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11절).” 그러자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12절).”

 예수님은 죄 사함과 더불어 질병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 더 나아가 가난 문제를 비롯한 다른 모든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문제 해결사이신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한 작은 해결사가 되려고 해야 한다. 특히 본문은 이웃 사랑을 도전한다. 중풍병자를 멘 네 사람처럼 영혼 구원은 물론 이웃 사랑에도 앞서라. 그리고 그 사랑이 말로 끝나지 않고 소리 없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하라.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사람을 알면 될수록 나의 개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개가 배반하지 않고 죽도록 주인을 따라서 좋다는 뜻이다. 그처럼 하나님을 죽도록 따르고 믿음과 사랑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한 삶을 살라. 불신자를 하나님께 이끌려면 나의 삶이 나의 말을 뒷받침하게 해서 위로는 드리고 옆으로는 나누고 아래로는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살라. 힘써 드리고 나누고 베풀면 점차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진실한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4. 믿음에 사랑을 더하라

 중풍병자의 기적은 중풍병자 및 그를 멘 네 사람의 믿음과 예수님의 사랑의 합작품이었다. 그처럼 믿음과 사랑은 문제를 해결하고 기적을 가져다주는 2대 핵심 원천이다. 긍정적인 믿음은 있는데 공감하는 사랑이 없다면 그 믿음이 때로는 남과 전체에게 해악이 되기도 한다. 결국 믿음에 사랑이 더해져야 그 믿음이 온전해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이 된다.

 사랑이 더해진 믿음에는 문제 해결과 치유의 능력이 있다. 그처럼 사랑이 더해진 믿음은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성화시키기에 어떤 의사는 말한다. “사랑 받는 세포는 신기할 정도로 암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처럼 사랑이 더해진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맛보도록 믿음도 키우고 사랑도 키우라.

 어떤 교인은 섭섭함을 표출한다. “목사님이 나를 만나 주지 않고 다른 사람들만 만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너무 섭섭해 할 것이 없다. 공동체에서 믿음직한 사람은 오히려 더 안 만날 수도 있다. 즉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덜 만나고 성숙한 믿음을 도전하고 양육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더 만날 수도 있다. 결국 눈에 보이는 만남 횟수로 관계의 깊이를 평가할 수만은 없다. 믿음에 사랑이 더해진 리더나 팔로워가 되라. 그런 사람은 따로 만나지 않고 사람들 틈에서 그저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된다.

 믿음에 더한 사랑을 키워 누군가의 위로와 의지가 되는 행복을 맛보고 누리라. 그런 사랑을 키우는 실질적인 훈련으로써 아주 좋은 훈련이 있다. 바로 시간을 지키는 훈련이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생각 이상으로 그 의미와 여파가 크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시간 약속을 잘 지키면 사랑하는 능력이 커진다.

< 사랑의 힘을 키워가라 >

 사랑은 공감 능력과 비례하고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는 타인 감수성과 비례한다. 그래서 사랑의 속성에는 넉넉함과 느긋함이 내재되어 있다. 사랑한다면 기다리게 하지 말고 기다려 주라. 어떤 과업을 수행할 때 사전 계획이 없이 막상 일에 닥쳐서 조급한 마음으로 하면 자신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게 만들어서 관련된 사람들이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조급함이 덜어지도록 시간 약속보다 먼저 나가 기다리고 할 일을 자꾸 미루지 말아야 건강에도 좋고 인간관계에도 좋고 가정에도 좋고 내일의 복을 위해서도 좋다.

 살면서 시간 약속 문제나 과업 이행 문제로 마음이 초조해지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새롭게 결심하라. “앞으로 시간 약속을 힘써 지키자.” 특히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예배 시간을 지키는 문제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 시간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내 시간을 10여 분 버린다는 마음을 가지고 약속 시간보다 늘 먼저 나가 있으라. 그러면 작은 시간을 버리면서 오히려 더 많은 신뢰와 사랑을 얻고 인생 전체로도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사소한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삶을 통해서도 공감 능력과 타인 감수성을 키우고 사랑의 힘을 키워가라. 믿음에 사랑이 더해지면 잃어버린 많은 것을 다시 되찾을 것이다. 20세기를 휩쓴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적극적인 믿음 강조가 좋은 열매도 낳았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낳았던 것은 믿음에 사랑을 더하는 모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최대 속성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함으로 최선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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