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 김옥순 수녀님 성화: 나를 따르라 ]




본문말씀 : 학개 2장 10-14절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 학개가 전하는 2가지 질문 >

 <학개>는 학개로부터 전해진 네 번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뤄진 책이다. 첫째 말씀은 다리오 왕 2년 6월 1일에 전해진 ‘성전 건축을 촉구한 말씀’이다(1:1-11). 둘째 말씀은 다리오 왕 2년 7월 21일에 전해진 ‘성전 건축에 나섰다가 낙심한 심령을 격려하는 말씀’이다(2:1-9). 셋째 말씀은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전해진 ‘성전 건축에 나선 사람들의 성결을 강조한 말씀’이다(2:10-19). 넷째 말씀은 셋째 말씀이 전해진 날에 또 전해진 ‘성전 건축을 주도한 스룹 바벨 총독을 축복한 말씀’이다(2:20-23).

 본문은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임해 전해진 셋째 말씀의 일부다(10절).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성전 건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는가? 다리오 왕 2년 6월 24일이었다(1:15). 그렇다면 학개가 전한 3번째 말씀은 성전 건축에 나선지 꼭 3개월 만에 주어진 말씀이었다. 셋째 말씀에서는 성전 건축과 더불어 사람들의 내면의 성전 건축도 중요함을 역설하려고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제사장에게 율법에 관한 의미심장한 2가지 질문을 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의식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고기는 거룩한 것이기에 그 고기를 싼 옷자락도 거룩하게 된다(레 6:27). 그런데 그 거룩한 옷자락이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다른 음식물에 닿으면 그 음식물이 거룩하게 되겠느냐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제사장들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12절). 즉 아무리 거룩한 옷자락이 음식물에 닿아도 그 닿은 음식물이 무조건 성물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이스라엘 의식 율법에 의하면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하게 된다. 그처럼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사람이 어떤 음식을 만지면 그 음식이 부정하겠느냐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해 제사장들은 부정하다고 대답했다(13절). 이 두 가지 질문을 비교하면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거룩한 것은 접촉만으로 거룩함이 전달되지 않지만 부정한 것은 접촉만으로도 부정이 전달된다는 뜻이다.

 2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받고 학개는 선포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14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러운 손으로 제사를 드리기에 그들이 드리는 제사도 부정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부정한 것은 정결한 것보다 더 쉽게 전파된다. 정결함이 있기를 힘쓰는 더 부정함이 없기를 힘쓰라. 의식적인 정결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의 정결은 더욱 중요하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

 본문에 나오는 두 가지 질문이 내포한 뜻은 무엇인가? 제사 및 예배는 거룩한 것이지만 제사 및 예배를 드렸다고 그 참여자가 무조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반대로 부정한 사람이 드리는 제사 및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삶을 기뻐하시기에 거룩한 삶이 없으면 하나님의 축복도 없다. 반면에 거룩한 삶을 살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이 하나님만 향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거룩함은 도덕적인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기면 아무도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성경적인 거룩함이란 나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하나님보다 더 복을 향해 있으면 참된 복은 임하지 않고 반대로 복보다 더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참된 복이 임한다. 봉사와 헌신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해야 그 봉사와 헌신이 거룩한 것이 되고 그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성전 건축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해서 몸과 마음과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바쳐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시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성전 건축을 통해 축복 받았다는 간증을 듣고 축복 받기 위해서 성전 건축에 참여하는 것은 헌신에 오물이 묻은 것이다. 그런 오물이 묻는 것이 오늘날 많은 축복 간증집회의 폐해다. 축복 간증집회가 사람들의 열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은 되지만 때로 기복주의의 오물을 묻히는 단점도 있다. 하나님은 오물이 묻지 않은 순수한 헌신을 기뻐하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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