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 라디슬라프 자보르스키 Ladislav Záborský ]
본문말씀 : 스바냐 2장 1-3절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 미리 힘써 대비하라 >
스바냐는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에게 선포했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2절).” 이 구절에 여러 번 나오는 ‘전에’라는 표현은 때와 시간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때와 시간의 가치를 높이려면 땀 흘려 준비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과 세월을 아끼는 것이 지혜다. 특히 시대가 악하게 느껴지고 불안감이 클수록 시간을 아끼라.
누구에게나 여러 번 오는 축복 기회를 누가 붙잡는가? 소리 없이 준비하는 사람이다. 준비가 없어서 찾아온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매우 아쉽게 된다. 더 늙기 전에,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부족한 현실 중에도 새롭게 출발하라. 내 나머지 삶에서 가장 빠른 시간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을 낭비하면 결정적인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바닷가로 낚시하러 갔다. 아들을 바위에 앉혀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낚시하는데 고기가 잘 잡혔다. 너무 신나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정신없이 낚시하는데 물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때서야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나서 급히 아들을 앉혀 놓은 바위로 달려와 보자 바위는 물에 잠긴 상태였다. 그때 아들은 애타게 아빠를 불렀을 것이다.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한다면 인생 낭비가 된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 더 늙기 전에 해야 할 일, 그리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축복 전이나 심판 전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잠깐의 시간 차이가 생사의 차이로 연결될 수 있다. 암도 일찍 발견해서 치료하면 대부분 완치시킬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만약 해야 할 일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현실 속에서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할 때 기회를 붙잡을 수 있고 마주친 현실을 잘 극복할 수 있다.
<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
스바냐는 계속 선포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3절).”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면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왜 시련이 생기는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짐으로 더욱 큰 축복을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서다. 성도에게도 시련은 예외 없이 생긴다. 더 나아가 시련에서 제외되지 않는 삶을 예상하고 살라.
시련은 다가올 불행의 예고도 아니고 현재의 불행의 증거도 아니다. 시련은 ‘축복이 변장한 것’이거나 ‘축복으로 가는 과정에서 주어진 것’이다. 사람은 시련 중에 겸손해지고 진지해지고 내가 최고라는 치명적인 생각을 버린다. 그 자체가 큰 축복이다. 성도에게도 시련은 꼭 필요하다. 시련이 없으면 믿음과 삶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성도가 시련에 처하면 하나님도 다시 생각해 보고 자신의 신앙도 점검해 보면서 때로는 질문한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의 땀과 눈물과 정성은 헛된 것입니까?” 믿음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이 있기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진지한 진국 대화가 오가는 과정을 거쳐 점차 진국 성도가 되어 간다.
고독과 시련 중에 진지해지고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면 늘 감사와 감동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시련을 허용하고 그 시련을 통해 성도를 빚어 가신다. 사람은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진지해지고 겸손해진다. 그것이 시련과 고독의 계절이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련 중에도 겸손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앞세워 살면 조금 더 성숙해지고 성공과 성취의 때도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스바냐는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에게 선포했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2절).” 이 구절에 여러 번 나오는 ‘전에’라는 표현은 때와 시간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때와 시간의 가치를 높이려면 땀 흘려 준비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과 세월을 아끼는 것이 지혜다. 특히 시대가 악하게 느껴지고 불안감이 클수록 시간을 아끼라.
누구에게나 여러 번 오는 축복 기회를 누가 붙잡는가? 소리 없이 준비하는 사람이다. 준비가 없어서 찾아온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매우 아쉽게 된다. 더 늙기 전에,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부족한 현실 중에도 새롭게 출발하라. 내 나머지 삶에서 가장 빠른 시간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을 낭비하면 결정적인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바닷가로 낚시하러 갔다. 아들을 바위에 앉혀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낚시하는데 고기가 잘 잡혔다. 너무 신나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정신없이 낚시하는데 물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때서야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나서 급히 아들을 앉혀 놓은 바위로 달려와 보자 바위는 물에 잠긴 상태였다. 그때 아들은 애타게 아빠를 불렀을 것이다.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한다면 인생 낭비가 된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 더 늙기 전에 해야 할 일, 그리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축복 전이나 심판 전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잠깐의 시간 차이가 생사의 차이로 연결될 수 있다. 암도 일찍 발견해서 치료하면 대부분 완치시킬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만약 해야 할 일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현실 속에서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할 때 기회를 붙잡을 수 있고 마주친 현실을 잘 극복할 수 있다.
<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
스바냐는 계속 선포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3절).”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면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왜 시련이 생기는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짐으로 더욱 큰 축복을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서다. 성도에게도 시련은 예외 없이 생긴다. 더 나아가 시련에서 제외되지 않는 삶을 예상하고 살라.
시련은 다가올 불행의 예고도 아니고 현재의 불행의 증거도 아니다. 시련은 ‘축복이 변장한 것’이거나 ‘축복으로 가는 과정에서 주어진 것’이다. 사람은 시련 중에 겸손해지고 진지해지고 내가 최고라는 치명적인 생각을 버린다. 그 자체가 큰 축복이다. 성도에게도 시련은 꼭 필요하다. 시련이 없으면 믿음과 삶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성도가 시련에 처하면 하나님도 다시 생각해 보고 자신의 신앙도 점검해 보면서 때로는 질문한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의 땀과 눈물과 정성은 헛된 것입니까?” 믿음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이 있기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진지한 진국 대화가 오가는 과정을 거쳐 점차 진국 성도가 되어 간다.
고독과 시련 중에 진지해지고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면 늘 감사와 감동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시련을 허용하고 그 시련을 통해 성도를 빚어 가신다. 사람은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진지해지고 겸손해진다. 그것이 시련과 고독의 계절이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련 중에도 겸손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앞세워 살면 조금 더 성숙해지고 성공과 성취의 때도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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