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삶을 누리는 길

[ 에바 알머슨 작 ]




본문말씀 : 마태복음 13장 24-30절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 천국 삶을 누리는 길 >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7대 천국 비유가 나오는 장이다. 그 7가지 비유 중 두 번째인 본문의 곡식과 가라지 비유가 주는 교훈으로서 천국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나의 가능성을 믿으라

 본문 24절을 보라.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특정한 장소만 의미하지 않는다. 천국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는 말씀은 천국이 사람 안에서 펼쳐질 수 있다는 암시다. 천국은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찬송가 438장 3절에 이런 가사가 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송도 천국은 인격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미치면 아골 골짜기도 천국이 되고 내 마음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내 마음에서도 천국이 펼쳐질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라. 그 믿음을 통해 천국 삶을 누리는 든든한 기초가 형성된다.

2. 남과 비교하지 말라

 예수님은 천국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아무리 좋은 씨를 뿌려도 남의 밭이 아닌 제 밭에 뿌려야 천국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암시다. 남의 일에 너무 간섭하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 무엇보다 외적인 것으로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라. 비교하면 늘 속상한 일이 생기고 불행감이 커진다. 성공을 추구할 때도 비교우위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성공을 추구하라.

 사람이 가진 것은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이 철저해야 소유에 목숨을 걸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쓰려는 목적만을 가지고 소유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면 남과 비교하면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게 되고 마음의 천국도 빼앗기지 않는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함을 기초로 나를 낮추면서 남을 존중하는 사람이 천국 평안을 얻고 천국의 삶을 누린다.

3.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라

 예수님은 좋은 씨가 뿌려진 밭에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하셨다(25절). 사탄은 방심하거나 작은 틈만 보여도 은밀하고 음흉하게 나쁜 가라지를 덧뿌린다. 문제는 가라지와 곡식이 겉으로는 유사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사이비란 유사하게 보이지만 다른 것을 뜻한다. 사이비 교주도 성경 말씀을 내세워 말하지만 그 말의 내심과 해석과 의도가 영혼을 미혹하고 인생과 가정을 망치고 소유와 노동력을 빼앗으려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특히 사이비 교주는 2가지를 부추겨 기생한다. 첫째, 두려움이다. 사이비 교주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기보다 확대 재생산해서 영혼을 지배하고 물질을 빼앗으려고 저주 얘기를 자주 하고 소름끼치는 언행을 보인다. 둘째, 욕망이다. 사이비 교주는 욕망을 채우는 것이 복이라고 부추기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기보다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역시 영혼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런 사탄과 교주에게 미혹되지 않으려면 더욱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라.

4.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라

 원수가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는 말씀은 사탄의 핵심적인 일이 불평의 씨를 뿌리는 일이라는 암시다. 사탄을 이기려면 불평하는 마음과 생각과 말을 힘써 멀리하라. 힘든 일에도 다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음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면 나도 천국 삶을 누리지만 내 주변 사람도 천국 삶을 누리게 한다. 결국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처럼 힘이 되고 고마운 사람은 없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목사님, 한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라고 하면 목사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설레는 마음이 되고 그 만남이 너무나 기대되면서 생각한다. “그분이 무슨 좋은 소식을 들고 올까?” 반면에 감사를 모르는 성도가 “목사님, 한번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안해지고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가 무슨 부정적인 말을 할까?”

 감사를 모르는 성도는 좋은 소식을 잘 들고 오지 않는다. 기도 제목을 가지고 올 때는 이미 문제가 목사 책임이라는 듯이 원망을 가득 품은 채로 온다. 반면에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는 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 문제가 생겨서 상황이 어려워도 믿음으로 극복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올 때도 믿음으로 이미 문제를 극복한 상태로 가져와서 목사들을 안심시킨다. 그처럼 범사에 감사함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천국 평안과 기쁨을 안겨 주는 원천이 되라.

5.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

 사탄이 덧뿌린 가라지가 처음에는 안 보이다가 싹이 나고 결실할 때 보이자 종들이 집주인에게 물었다. “주여, 우리가 가서 가라지를 뽑기 원하십니까?” 주인이 말했다.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된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말하리라.”

 어디에든지 가라지는 있다. 하나님은 가라지를 그냥 두고 보실 때가 많다. 성도의 훈련용으로 삼기 위해서다. 실제로 가라지 때문에 인내를 배우고 믿음이 성숙해진다. 가라지가 보인다고 금방 뽑겠다고 달려들면 부작용도 생긴다. 좋은 일도 너무 조급하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 너무 조급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최종 승리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조급하게 들쑤시지 말고 가만히 기도하면서 지켜보면 악은 점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제 풀에 넘어지게 되어 있다.

 악이 잠깐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승리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직업적인 탐사보도 기자가 아니라면 너무 남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다 쓰지 말라. 가라지를 뽑는 일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은 좋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이다. 묵묵히 좋은 씨를 뿌리면서 신실한 믿음과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천국 삶을 얻고 결국 승리한다. 그때까지 계속 선을 행하며 살라.

< 선의 씨앗을 뿌리라 >

 세상일이 내 뜻과 생각대로 단순하게 펼쳐지지 않는다. 나의 의가 실제로 의가 아닐 수도 있다. 가라지는 최종적으로 추수 때에 하나님이 심판하고 처리하신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면서 더욱 선의 씨앗을 뿌리는 데 힘쓰라. 어거스틴은 “악이란 선의 결핍이다.”라고 했다. 알곡이 바르게 힘을 쓰면 가라지는 힘을 잃는다. 복된 세상은 그저 바란다고 오지 않고 내가 지금의 현실과 상황에서 바르게 살 때 오고 복도 그냥 오지 않고 복된 마음을 가지고 복된 행동을 할 때 온다.

 한 집사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멀리 있어서 매일 근처 교회로 새벽 예배를 다녔다. 거의 3년을 거의 빠지지 않고 다니면서 때로는 소리 내어 애절하게 기도했고 방언 기도도 유창하게 잘했다. 그런데 비록 다른 교회지만 거의 매일 새벽마다 말씀을 은혜롭게 듣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처소로 삼으면서도 3년 동안 그 근처 교회에 작은 감사헌금조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근처 교회 목사는 그 행동이 너무 기이하고 궁금했다. “그분은 도대체 어떤 기도를 하고 어떤 복을 구하는 걸까?”

 어느 여름에는 그 교회에 유난히 모기가 많이 생겼다. 그런데 화장실과 주방 쪽에만 날아다니던 모기의 일부가 새벽에 본당에까지 들어와서 그 성도를 몇 군데 물었다. 그러자 그 집사가 새벽 설교가 끝난 후에 기도도 하지 않고 목사에게 와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세상에서 모기가 제일 싫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복된 모습이 아니다.

 어떤 성도는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교회에 1시간만 있어도 이렇게 모기가 달려드는데 매일 15시간 이상 교회에 계시는 목사님은 얼마나 모기에게 많이 시달릴까? 요새 한국에는 모기에 의한 말라리아 전염도 거의 사라졌는데 모기에게 물리는 것처럼 좋은 천연 침은 없다는 말도 있지. 모기에게 물리면 손끝을 바늘로 따는 것처럼 체한 것을 풀어 주어 소화에도 좋고 이물질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피부 면역체계와 혈액이 활성화되니까 건강에도 좋을 거야. 모기에게 물려도 참자.” 복된 생각이다.

 더 나아가 어떤 성도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목사님에게 달려들 모기들이 내 피를 더 뽑아가서 목사님께는 덜 갔으면 좋겠다.” 반대로 대부분의 목사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모기들이 성도를 물지 말고 차라리 나를 물었으면 좋겠다.” 복 받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복된 마음과 생각을 가지면 얼마든지 복 받고 천국 삶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이 어둡다고 탄식만 하지 말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감사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면서 천국 삶을 펼치고 누리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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