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특별한 자랑거리
본문말씀 : 고린도후서 11장 28-33절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 바울의 특별한 자랑거리 >
사도 바울은 겸손했지만 고린도교회 거짓 선생들의 영성 자랑에 미혹되어 일부 교인들조차 영성을 자랑하니까 본문에서 자신에게도 특별한 자랑거리가 있음을 고백했다. 바울이 내세웠던 세상 사람들의 자랑거리와는 다른 특별한 자랑거리가 무엇이었는가?
1. 교회에 대한 애정
바울은 모든 교회를 위해 염려하면서 특히 고린도교회로부터 갈등과 분쟁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했다(28절).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교회를 위해 염려한다는 말은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이다. 바울의 특별한 자랑거리는 교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것이었다.
어느 여름 날 장맛비가 쏟아질 때 집수정 펌프 시스템 고장으로 지하 교회에 물이 넘쳤다. 교회 담임목사는 그 문제를 혼자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지만 물이 너무 많아 할 수 없이 한참 후에 근처에 사는 한 집사를 불렀다. 그는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고 교회로 달려왔다. 둘이 밤늦게까지 물을 퍼내고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까지 할 때 외롭지도 않고 서럽지도 않았다. 목사에게는 집사가 곁에 있고 집사에게는 목사가 곁에 있으면서 서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정이 넘어 새벽 1시쯤 물도 거의 퍼냈고 청소도 끝났다. 둘이 헤어지기 전에 커피 타임을 가질 때 집사가 말했다. “목사님, 왜 물이 교회로 넘쳤을 때 바로 저를 부르지 않았나요?” 목사가 대답했다. “요새 불경기로 집사님이 많이 힘들 텐데 교회 일까지 시키려니까 미안해서요.” 집사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면서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그 말을 듣고 목사는 하루의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집사가 말했다. “목사님,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다른 집사들도 좀 부르세요.” 목사가 말했다. “미안해서 못 부르겠어요. 성도들이 교회 비전 성취에 힘이 되려고 열심히 물질 정복을 위해 애쓰는데 주중에까지 교회에 나와 일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집사가 또 애정 어린 목소리로 소리 높여 말했다. “목사님, 그것은 교인들의 복과 상급을 빼앗는 일이잖아요.” 목사가 말했다. “집사님 말이 맞아요. 그래도 주중에까지 교회 일을 위해 멀리서 교회에 오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해해 주세요.”
그때 집사는 교회와 목사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거꾸로 목사는 교회와 그 집사와 다른 교인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교회와 목사와 집사와 교인들을 다 복 주실 것이다. 복 받는 삶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교회와 목사와 교우를 깊이 사랑해 보라. 목사와 교인이 서로 사랑하고 자랑하는 교회는 복이 넘치게 될 것이다.
2. 약자와의 공감 능력
바울은 약자를 보면 깔보거나 비판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의 고통과 상처를 함께 느끼면서 아파했다(29절). 그런 공감 능력이 바울의 특별한 자랑거리였다. 좋은 리더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공감 능력이다.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비겁하고 약삭빠른 눈치는 없어야 하지만 거룩하고 사려 깊은 눈치는 있어야 한다.
프랑스 혁명 때 군중들이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고 외치자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는 말했다. “저들이 왜 저렇게 소리치지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나요?” 그런 무정하고 무지한 리더 부부는 공동체를 공멸시킨다. 한때 사람들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말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그 말이 이기적인 자기만의 긍정과 자유를 낳는다면 큰 문제다. 나의 긍정과 자유가 남에게도 긍정과 자유가 되지 않는다면 “좀 더 배려하자. 좀 더 생각해 보자.”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 노년이 되면서 젊을 때 아내를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아내를 최대한 배려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 결심은 ‘하면 된다’는 결심 이상의 멋진 결심이다. 한 목사가 오랜 목회 후에 생각했다. “내가 옛날에 좀 더 세심하게 성도의 마음과 형편을 살폈으면 좋았을 것...”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다’는 생각 이상의 멋진 생각이다. 공감 능력은 기도하면서 강해진다. 소심함과 세심함은 다르다. 소심함은 버리되 기도하면서 교회와 남을 사려 깊게 살피는 세심함은 갖추라.
3. 자신이 약한 사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영성을 자랑했던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어 영성을 자랑하는 교인들의 기를 꺾으려고 전략적으로 자기 자랑을 했지만 그에게는 그런 전략적인 자랑조차 달갑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말했다. 본문 30절을 보라.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왜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했는가? 약할 때 하나님이 능력 주셔서 강해짐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서 약한 것은 사실상 강한 것이다. 강한 것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약한 것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 말라. 아스팔트 위로 솟아나는 연약한 풀잎이나 강한 바위틈에 자리 잡은 연약한 나무뿌리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생명력만 있으면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 작은 고구마나 감자가 땅속에서 지구 땅덩어리의 일부를 밀어내고 커지는 모습을 보라.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밀어낼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재질이 강하다는 다이아몬드나 거대한 대리석이나 고강도의 강철이 물을 고압으로 분사한 워터젯 물 칼에 의해 도화지처럼 가볍게 잘려진다. 그처럼 약해 보이는 물이 과학의 도움으로 최강의 물체가 되듯이 약한 영혼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최강의 영혼이 된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온유함이 어떤 난관도 이겨내는 강건함이 된다. 약하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자랑하라. 자신이 약한 존재인 줄 알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오히려 세상과 사탄을 이기는 강한 군사가 될 것이다.
4. 거짓말하지 않는 것
당시 고린도교회 일부 교인들은 바울이 자신을 높게 보이려고 고난을 과장하면서 거짓말로 영혼을 미혹한다고 비방했다. 그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변증한 후 그 사실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했다(31절). 또한 자신이 고난을 가장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려고 자신의 회심 초기에 겪었던 구체적인 고난 사례 하나를 언급했다. 즉 그는 회심 초기에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자신을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지만 자신이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난 얘기를 했다(32-33절).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아레다 왕의 고관의 손에서 벗어난 얘기는 명예로운 얘기는 아니었지만 복음 전파를 위해 그가 겪은 수많은 고난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려고 하나의 예로 든 얘기였다. 그처럼 바울은 거짓이 없이 늘 진실하게 살았기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가진 최대의 무기도 정직이었다. 그가 말했다.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있고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결국 진실이 승리한다. 이단 교주처럼 거짓말로 거대한 자기 왕국을 쌓으면 결국 망하지만 바울처럼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삶을 자랑거리로 삼으면 오래도록 자랑스러운 복된 인물이 될 수 있다.
<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이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는 강자는 오히려 쓰시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신실함과 충성심이 부족해서 자기 위주로 살고 신앙생활도 자기 편한 대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약자도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해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약자와 함께해 주려는 사람은 더욱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복 받을 것이다.
한 사업가 성도는 비행기를 탈 때 늘 비즈니스 석을 탔다. 어느 날 그가 해외 선교 대회에 참석하는 담임목사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목사님, 이번에는 비즈니스 석을 타세요.” 자신은 늘 비즈니스 석을 타는데 담임목사가 일반석을 타는 모습에 죄송함을 느끼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것도 물질적인 약자와 함께하려는 태도다. 그 봉투를 받은 목사는 고맙다고 한 후 해외여행을 잘 못하는 어려운 성도들을 떠올리며 그 봉투를 조용히 교회에 드리고 일반석을 탔다. 그것도 물질적인 약자와 함께하려는 태도다.
어느 교회에 목사 차량을 교체할 때가 되자 고급차를 타는 재정부장이 미안해서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이번에 목사님 차량은 고급차를 뽑을게요.” 그때 담임목사가 어렵게 사는 성도를 떠올리며 말했다. “집사님, 고마워요. 그러나 어려운 성도들도 있어서 미안하니까 그냥 평범한 차를 탈게요.” 그 재정집사나 목사가 모두 물질적인 약자와 함께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그처럼 서로를 생각하면서 좀 더 마음의 평준화를 이루려고 하면 삶은 감동이 되고 그 감동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며 은혜와 복을 가져다준다.
현재의 약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결코 낙심하지 말라. 약하고 부족해도 꾸준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감동적으로 헌신해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복된 인물이 되라. 무엇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꼭 붙잡고 나가면 어느 누구보다 많이 가진 것이다. 늘 하나님을 온전히 붙잡고 의지해서 약함 중에 강함을 체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인물의 꿈을 이뤄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