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라
본문말씀 : 느헤미야 1장 1절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 교회는 갱신되어야 한다 >
중세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권력화 및 타락으로 일어났다. 당시 교황과 사제들은 돈과 권력의 맛에 심취했고 교회 권력의 원천은 교회의 크기인 줄 알고 화려한 대성당 건축에 열을 올렸다. 능력과 필요 이상의 건축물은 불행한 일의 전조라는 ‘바벨탑의 교훈’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주 잊히고 있다. 결국 엄청난 대성당 건축비를 충당하려고 돈으로 천국 가게 해주는 면죄부 교리를 만들었다가 결국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현대 교회도 중세시대의 교회와 닮은 점이 많다. 첫째, 교회의 대형화 유행이 닮았다. 교회가 큰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큰 교회가 힘을 남용하지 않고 성장 과정과 교리가 바르고 선교와 구제에 힘쓰고 분립 교회 개척에 힘쓰면 교회 크기로 비난하면 안 된다. 다만 교회의 대형화를 지상명제로 삼는 것은 좋지 않다. 교회의 지나친 대형화는 약육강식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흐름을 따라 교회 타락의 온상이 될 수 있다.
둘째, 성직자들의 세속화가 닮았다. 교단 총회장 선거에서 타락선거가 펼쳐지고 심지어 그런 잘못을 지적하면 “너만 의롭냐? 왜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 전도를 막느냐?”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왜 세상 매스컴은 이렇게 떠듭니까?”라고 하는 고압적인 자세가 전도를 더 막고 오히려 “저희 교회들이 잘못했습니다. 회개합니다.”라고 하는 겸손한 자세가 전도의 문을 더 연다.
한때 기획부동산이 부동산 시장을 휩쓸었듯이 일시적으로 교회성장 세미나를 앞세운 기획교회들이 목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방에서 그 부작용으로 인한 신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고 있다. 물론 교회에도 기획은 필요하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서는 ‘기획’이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기회’는 줄어든다. 교회에 생겨나는 많은 폐단은 세상적인 성공 원리를 따를 때 생긴다. 교회갱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며 얻는 축배는 점차 교회의 영향력을 잃게 하는 독배가 된다.
<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라 >
교회갱신의 제 1목표가 무엇인가?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물줄기를 돌려 세상이 교회를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교회 리더는 절망적인 환경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느헤미야 같은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느헤미야의 얘기는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월에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있을 때 시작된다(1절). 당시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왕의 술 관원으로 있었다.
고대에 왕의 술 관원은 엄청난 권력자였다. 독살이 흔했던 고대 왕국에서 술 관원은 왕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겼다. 권력은 왕과의 거리에 따라 비례한다. 결국 느헤미야도 일종의 권력자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재건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권력과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작은 힘도 중요하다. 작은 힘을 가졌어도 자기를 온전히 드리면 엄청난 힘이 나온다. 그러나 같은 헌신 상태라면 큰 힘과 배경이 있을 때 더욱 큰일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보다 영향력을 키우라. 사랑과 겸손과 헌신으로 인맥을 쌓고 순수하게 윗사람과 선배를 잘 섬겨서 배경도 많이 구축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지혜와 능력을 키우고, 사업도 지혜롭게 성공시켜야 더욱 쓸모 있는 재목이 될 수 있다.
‘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은 글자 순서만 바뀌었지 둘 다 똑같이 ‘집을 나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개념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의미와 목적이 있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집을 떠나면 출가가 되고 목적도 없이 현실을 피하려고 집을 나가면 가출이 된다. 뚜렷한 목적이 그만큼 중요하다. 이제 좀 더 쓸모 있게 헌신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힘써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해서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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