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드리라
본문말씀 : 느헤미야 2장 4-8절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 자신을 드리라 >
느헤미야의 수심에 가득 찬 말을 듣고 왕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잠깐 기도한 후 소원을 말했다. “왕이여! 괜찮으시면 저를 유다 땅 조상들의 묘실로 보내주시어 성을 건축하게 하소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예루살렘의 중건을 위해 자신을 드리려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라. 그 모습이 이방 왕에게도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언제인가? 자신을 드릴 때다.
느헤미야가 그 말을 할 때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다(6절). 그 기록은 왕후도 느헤미야의 모습에 감동했을 것이라는 암시다. 그때 왕후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훌륭한 신하네요. 저런 신하의 소원은 들어주세요.” 결국 왕이 물었다.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그 질문은 왕이 느헤미야를 신임하고 곁에 두고 싶어 했음을 알려준다. 이 장면은 느헤미야와 같은 헌신적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개혁은 능력과 신분이 있는 사람만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능력과 신분이 개혁에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헌신’이다. 한 사람의 헌신으로 인한 작은 바람이 나비효과를 통해 엄청난 바람을 일으킨다. 모든 개혁과 변화는 자신의 기도와 헌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목회자를 최대한 존중하되 교회개혁 문제는 목회자에게만 미루지 말라. 목회자는 제도권 안도 살펴야 하기에 교회개혁에는 평신도 리더의 헌신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에이즈나 암이나 핵폭탄’이 아니라 ‘마음속의 이기심’이다. 헌신이 없으면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소망이 없지만 헌신하면 희망이 보이고 축복의 문이 열린다. 사람들은 나를 드리면 손해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나를 드릴 때 내 영혼을 얻고 남의 마음도 얻고 환경의 도움도 얻는다. 어느 공동체든지 얻을 생각보다는 드릴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을 통해 그 공동체는 부흥하고 발전한다.
< 계획하고 준비하라 >
왕이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고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스스로 기한을 정했다(6절). 왕이 그에게 스스로 기한을 정하게 한 것을 보면 왕도 그때 크게 감동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느헤미야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계획했던 것을 담대하게 왕 앞에 아뢰었다. “왕이여! 괜찮으시면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는 조서를 주사 저희로 저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해 들보로 쓸 재목을 주게 하소서(7-8절).”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왕이여! 저를 보내주는 것만도 감사한데 무엇을 구합니까?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담대하게 구체적인 필요를 구했다. 왜 그렇게 담대하고 떳떳하게 구했는가? 자신을 위해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구원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제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너무 소극적인 기도다. 하나님의 일을 잘하려고 필요를 구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어떤 선교사는 급한 필요가 있어도 잘 알리지 않는다. 물질적인 필요를 알리면 마치 구걸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를 만나면 필요를 먼저 물으라. “선교사님! 필요한 것 없으세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이 반드시 나온다. 물질적인 필요를 먼저 언급해서 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욕심이 아닌 거룩한 비전을 위해서라면 담대하게 필요한 것을 언급하면서 믿음의 동지들과 기도 제목을 나누라.
느헤미야가 자신의 필요를 상세하게 즉시 아뢸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면서 이미 마음과 생각으로 구체적인 재건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기도하면서 구체적으로 계획도 세우고 준비하라. 왜 많은 꿈과 비전들이 성취되지 않는가? 계획과 준비가 없기 때문이다. 땀이 없는 축복을 믿지 말라. 행운도 노력하는 사람을 찾아온다. 우연한 행운을 믿지 말라. 우연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상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이뤄진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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