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앞세우라

 

[ 모네 : 정원에서 ]



본문말씀 : 느헤미야 1장 1-4절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공동체를 생각하라 >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으로 수산 궁에 있을 때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로부터 왔다(2절). 느헤미야의 친동생인 하나니는 바사 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다. 귀환해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예루살렘이 더욱 폐허가 되어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견딜 수 없어서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높은 관직에 있던 형의 힘을 빌리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수산 궁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때 느헤미야는 하나니에게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다. 느헤미야는 몸은 수산 궁에 있었지만 마음은 예루살렘에 가 있었다. 그는 자기 백성과 민족을 생각했다. 좋은 신앙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생각하는 공동체적인 신앙이다. 혼자만 잘사는 것은 가장 못사는 것이다. 남을 생각하며 살아야 나도 행복해진다.

 남편을 잃은 아내들은 음식 만들어먹는 재미도 없고 맛도 없다고 한다. 맛있게 먹어줄 남편이 없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혼자 있으면 대충 식사한다. 아무리 즐거운 일도 자기만 위해 하면 즐길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살림살이의 요체는 ‘남을 살려주는 것’이다. 남을 살려줄 때 나도 살고, 남을 행복하게 할 때 나도 행복해진다.

 나만 생각하면 소유는 있어도 행복은 없고 성공은 있어도 보람은 없고 삶의 재미는 있어도 삶의 의미는 없다. 말 한 마디도 남을 배려하며 하라. 어떤 사람은 남을 잘 알아듣게 하려고 자신에게 편한 사투리를 절제한다. 그것도 일종의 성숙함이다. 왜 정치가들의 수많은 개혁 시도가 좌절되는가?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 방식으로 개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참된 개혁은 좌측은 우측을 생각하고 우측은 좌측을 생각할 때 온전해진다.

< 기도를 앞세우라 >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황폐한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기도였다. 결국 예루살렘 재건의 대역사는 느헤미야 한 사람의 기도에서 시작되었다. ‘한 사람의 기도’가 대역사의 출발점이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다가 안 되면 친구나 지인을 찾는다. 그래도 안 되면 막다른 길에서 하나님을 찾아 기도한다. 형식적인 교인은 기도를 ‘최후의 수단’으로 삼지만 신실한 성도는 기도를 ‘최초의 수단’으로 삼는다.

 참된 개혁과 부흥은 기도에서 출발한다. 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한다고 하는데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는가? 혼자서 개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개혁은 함께해야 성공한다. 영적인 개혁도 그렇다. 혼자 하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개혁만이 성공한다.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개혁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다. 결국 기도는 개혁과 부흥을 위한 최초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를 보면 의분이 치솟지만 그때 성도는 비판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더 앞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8대 2의 비율로 칭찬보다 비판을 많이 하지만 리더의 축복을 원하면 그 비율을 2대 8로 돌려 비판보다 칭찬을 더 많이 하라. 그리고 비판하는 입술을 기도하는 입술로 바꾸라. 영혼의 기도가 살아나야 영적인 기운도 살아난다. 이제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새벽을 깨우는 영혼이 되게 하소서.”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낸다. 기도는 기대를 키우기도 하지만 기다림의 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기도하면 마음도 변하고 생각과 말도 변하고 가능성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결국 승리를 만들어낸다. 기도는 부정적인 삶을 긍정적인 삶으로 바꾼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도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안 된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기도는 “안 된다!”는 믿음을 “된다!”는 믿음으로 바꿔준다. 신실한 기도는 최대한의 역사를 선도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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