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에 매달리지 말라

[ 틴토레토 : 금송아지 숭배 ]



본문말씀 : 출애굽기 32장 1-4절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 아론의 종교를 주의하라 >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길어지니까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신을 만들자고 할 때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영합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바른 신앙을 저버리고 두려움과 불안이란 틀을 통해 만든 금송아지 종교, 오늘날로 말하면 돈과 기복주의가 섞인 아론의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가끔 “지금 교회가 아론의 종교에 물들어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 앞에 춤추고 있지는 않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론의 종교에는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뭔가에 취해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기에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항상 뭔가 일을 만든다. 그리고 신앙은 일상적인 삶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려하고 기적적인 것만 찾는다. 광야에서는 만나의 기적이 내렸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만나의 기적이 내리지 않았다. 외적인 기적이 있지 않아도 삶 전체를 기적으로 보는 믿음이 더욱 복된 믿음이다.

 둘째,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아론의 종교는 보이는 것을 중시해서 교인 수와 재정 규모를 가지고 자랑하고 크고 화려한 교회를 짓고 싶어 하지만 보이는 것이 메이저가 아니다. 표면보다 훨씬 더 큰 진리가 이면에 숨어 있다.

 셋째,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싫어한다. 말은 많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흘려야 할 피와 땀과 눈물은 싫어한다. 또한 현실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그 현실을 바꾸려고 일어서지는 않는다. 그래서 욕심을 채우는 것이 믿음인 줄 안다. 그러나 채우려고 할 때보다 비우려고 할 때 더욱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행복과 보람의 크기도 커진다. 욕심이 커지면 죄를 낳고 죄가 커지면 반드시 사망을 낳는다.

< 표적에 매달리지 말라 >

 지금은 황금송아지를 숭배하고 표적을 구하는 아론의 종교가 득세하는 세상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다(마 12:39). 기적을 구하는 것이 왜 악하고 음란한 것인가? 기적을 요구하는 동기가 자기 유익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성도라면 하나님만 바라고 살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되는데 겉으로는 믿는 것 같지만 마음에 순결함이 없으면 안 된다. 환경이 불안해지고 경제가 나빠지면 그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는가? 출애굽을 했지만 광야에서 미래가 암담했고 너무 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더니 40일 동안이나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믿음을 충족시키려고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기적만 준다면 금송아지도 좋다고 하면서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긴 것이었다.

 기적만 준다면 거짓 종교도 좋고, 무당도 좋고, 이단도 좋다는 것이다. 병만 낫게 해 주고 부자로 만들어 주고 미래만 보장해주면 다 좋게 생각한다. 그런 곳으로 대중들이 몰려가지만 실제로 그렇게 몰려가서 자기가 원하는 기적을 얻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예수님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기적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외면한 기적 신앙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다.

 교회가 성장하면 하나님의 일을 힘 있게 할 수 있고 영혼의 격려가 되고 비전이 더 구체화될 수 있는 등 많은 유익이 있다. 그러나 교회 성장을 원하는 깊은 이유가 자기 사명의 수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 자기유익 및 자기명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보이는 것에 의해 미혹되기 쉽다. 믿음이란 눈으로 보는 작업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작업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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