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버려야 할 4가지

[ 루벤스 : 최후의 만찬 ]



본문말씀 : 마가복음 14장 10-21절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삶에서 버려야 할 4가지 >

 살다 보면 좋은 사람과도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필요하면 상처를 잘 주는 사람과 잠시 전략적으로 떨어져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받은 상처를 잘 극복하는 것이다.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는가? 상처를 잘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의 삶을 반면교사로 삼아 그의 불행한 길을 따르지 말라. 그의 삶이 주는 교훈으로서 삶에서 버려야 할 4가지는 무엇인가?

1. 시기심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 똑똑해서 예수님 공동체의 돈궤를 맡을 정도로 예수님의 신임을 받았다(요 13:29). 출신도 다른 11제자들은 북쪽 갈릴리 출신인데 가룟 유다만은 남쪽 유다의 가룟 출신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가룟은 교육과 문화가 발달된 지역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가룟 유다는 분당 같은 신도시 출신으로서 학력이 좋았지만 예수님의 나머지 제자들은 두만강 인근의 시골 출신으로서 학력이 없었다.

 학력과 실력은 다르다. 학력은 과거의 것이고 실력은 현재의 것이다. 학력이 있었어도 계속 배우거나 계속 깨닫지 않으면 뒤처진다. 계속 배우고 깨닫고 실행해야 진짜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과거의 출신과 학력을 내세워 교만에 빠져 은근히 자기 뜻과 생각과 판단을 최고로 여겼다. 그래서 예수님 일행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옥합을 깨뜨려 삼백 데나리온 가치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에 대해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정죄했다. “왜 그런 엄청난 돈을 낭비하느냐?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가만 두라. 왜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 그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자기를 하찮은 여자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 같아 시기심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곧 예수님을 팔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갔다. 그 장면을 보면 상처를 잘 받는 것, 수치심이 심한 것, 자기감정만 생각하는 것, 자기만 옳은 줄 아는 것, 시기하는 것 등이 다 한 통속임을 깨닫는다. 가룟 유다의 불행을 피하려면 “상처를 잘 극복하자.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존재가 무슨 상처인가.”라는 마음을 가지고 시기심을 버리며 남이 잘한 일은 기꺼이 칭찬해 주라.

2. 명예욕

 왜 가룟 유다가 주님을 따랐는가? 정치적인 야심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런 야심이 있었지만 그의 야심은 특히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야심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에 대해 실망했을 것이다. 당시 예수님은 강한 능력으로 대중을 모으지 않고 소수의 제자들만 데리고 다녀서 그때까지 예수님 공동체는 개척교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귀족이 아닌 천민들, 즉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 같은 사람들과 식사하는 것을 보면서 꿈이 컸던 가룟 유다로서는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다. 그는 야심을 비전으로 착각했다.

 비전과 야심의 차이는 무엇인가? 비전은 외형에 흔들리지 않지만 야심은 외형에 흔들린다. 비전이 있으면 고난이 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기도 응답이 없어도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야심이 있으면 고난이 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기도 응답이 없으면 금방 은혜를 저버린다. 결국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 대해 실망해서 배반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향유 사건으로 상처를 입고 예수님 공동체를 뛰쳐나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름을 떨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명예욕과 야심이 어느 정도는 있다. 그것을 온전히 버리기는 힘들다. 그래도 명예욕과 야심을 잘 극복해서 거룩한 비전으로 승화시키고 묵묵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라. 그러면 때가 되어 하나님이 찬란한 비전을 이뤄 주시고 좋은 날을 보게 하실 것이다.

3. 소유욕

 가룟 유다에게 있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은 심한 소유욕이었다. 그가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줄 것이지.”라고 한 것은 선교와 구제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돈에 대한 탐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탐욕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은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았던 점이다. 결국 그의 삶은 소유욕에 사로잡혀 믿음과 사랑과 우정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현재의 소유와 물질로 은혜를 예단하지 말라. 자녀의 건강을 비롯해서 물질 이상의 은혜가 무수히 많다. 은혜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가지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를 깨달아야 은혜가 지속된다. 소유보다 은혜를 앞세우라. 소유로 남을 평가하지도 말라. 나보다 작은 존재를 제거 대상이 아닌 돌봄 대상으로 여기라. 물질을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말고 드리고 나누고 베풀려고 추구하라. 그때 참된 행복을 얻는다.

 욕심의 풍랑이 인생의 풍랑을 낳는다. 가끔 하늘과 산과 바다를 바라보면 욕심의 풍랑이 잦아든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욕심의 풍랑은 더 잦아든다. 물질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나눔의 기회나 헌신의 기회가 많지 않다. 물질을 선용해서 이름을 남기고 의미를 찾고 영생을 얻으라. 내가 정당하게 얻은 것을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만큼 진리는 분명해지고 진실은 가까워지고 행복은 커진다.

 언젠가 찬란한 선교 비전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영어판>이 발행되고 더 나아가 여러 <월새기 외국어판>도 순차적으로 발행될 것이다. 그렇게 거룩한 비전을 위해 헌신할 때는 자기 이름을 떨치려고 헌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을 억지로 남기려고 하면 오히려 좋은 이름이 남겨지지 않는다.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드리고 나누고 베풀어야 이름이 더 기억되고 만약 그 이름이 사람 앞에서 기억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4. 자존심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가 가장 자존심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한 것이 때로는 성공을 가져다주는 동력이 되지만 자존심이 너무 지나치면 회개 기회를 놓친다. 예수님이 향유 사건으로 가룟 유다를 질책했을 때 그는 배우는 제자로서 그런 질책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 질책을 들을 때가 첫 번째 회개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을 꺾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을 팔러 대제사장에게 갔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간 것을 알고 다음날 저녁에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다. 그때 말씀하셨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18절).” 다른 제자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몰랐지만 전날 대제사장에게 가서 돈을 약속받고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찾던 가룟 유다만은 그 말씀이 자신에 대한 말씀임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때가 두 번째 회개 기회였다. 그때 회개하지 않고 “저 말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구나.”라고 하며 자존심이 더 상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가지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질문했다. 그때도 가룟 유다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태연하게 모른 척 하자 예수님은 그에게 세 번째 회개 기회를 주시려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20절).”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다(21절).”

 그 말씀을 듣고 가룟 유다는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니! 사랑의 목자라면서 어떻게 대놓고 이렇게 저주를 퍼붓나?” 그러나 예수님의 직설적인 말씀은 충격 요법을 써서라도 그를 회개시키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 회개 기회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더 자존심이 상해서 그 자리를 뛰쳐나가 예수님을 팔았다. 그 장면을 보면 회개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 회개는 회복의 기회다 >

 회개가 무엇인가? 자존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가룟 유다가 자존심을 버리고 몇 번의 회개 기회 중 한번이라도 잡았다면 그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배반자라는 딱지를 떼었을 것이다. 때로는 자존심을 버릴 줄도 알라.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주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나는 이미 죽은 존재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자존심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서면 그때부터 복된 역사가 시작된다.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 그도 사도라 칭함을 받았고 예수님 공동체의 재정 책임자까지 되었다. 그가 회개했다면 그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배반해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버림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래서 회개가 중요하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도 가룟 유다와 비슷한 죄를 지었지만 진심으로 회개해서 다시 크게 쓰임 받았다.

 “어떤 죄를 지었는가?”보다 “진심으로 회개했는가?”가 중요하다. 때로 후회스러운 일을 하고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를 범하지만 진심으로 회개하면 얼마든지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가끔 멈춰 서서 나의 가는 길을 살피고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라. 회개는 좋은 것을 회복시키는 원동력이다. 회개하면 영혼 무력증을 딛고 일어설 수 있고 삶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각하면서 활력도 얻고 내 삶의 위대성도 깨달을 수 있다. 늘 회개를 앞세우고 특히 시기심, 명예욕, 소유욕, 자존심을 잘 버림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성도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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