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위로하며 살라

[ 람베르트 롬바르드 : 빵과 물고기의 기적 ]



본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2)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 너무 슬퍼하지 말라 >

 2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에서 죽은 미국 청년들은 20여만 명이었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서 전쟁터에 그 청년들을 보내놓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염려로 죽은 사람은 100만 명이 넘었다.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문제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확고한 답을 가지고 있으면 해결되고 그때 삶은 생동감과 자신감이 넘치게 된다. 본문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을 주고 있다.

 당시 순교자를 많이 배출한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많이 궁금해 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영혼이 완전히 소멸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죽으면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에 간다. 영혼은 소멸되지 않는다. 죽을 때 영혼까지 다 소멸된다면 악인들에게는 얼마나 수지맞는 일인가? 악하게 살고 지옥도 가지 않는다면 수지맞는 일이겠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다.

 구원받는 성도는 천국에 가서 세상의 온갖 상처와 나쁜 기억들은 다 잊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행복하게 영원히 살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좋았던 기억들은 다 잊고 나쁜 기억과 부끄러운 기억만 가진 상태로 극심한 수치와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산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잠에 빠져 있거나 무의식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도 성경적인 주장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성도는 죽으면 그 영혼이 즉시 천국에 간다. 주님은 회개한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다. 그러면 왜 잠잔다고 표현했는가? 그것은 죽은 사람과 대화하거나 교제할 수 없기에 그렇게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보면 잠자는 것 같지만 영혼이 잠자는 것은 아니기에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13절)

< 서로 위로하며 살라 >

 주님이 언젠가 재림하실 때 혼자 오지 않고 죽어서 주님 곁에 먼저 가 있던 영혼들을 함께 데리고 오신다(14절). 그때 호령,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있고 그때 성도의 몸이 부활한다(16절). 이것은 영혼이 잠자다가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온 영혼을 보고 몸이 다시 영혼과 결합되는 것을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때 성도의 몸의 부활이 있게 된다.

 사람들은 성도가 믿으면 영혼만 천국에서 영혼 상태로 영원히 살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진리가 아니다. 영혼만 천국에 가서 사는 것은 잠시 동안만 그렇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 영혼이 다시 몸의 상태로 부활한다. ‘몸의 부활’은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진리다. 즉 성도는 영혼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부활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신 사건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토대가 된 것이다.

 왜 예수님의 부활이 놀라운가?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역사상 부활한 분은 지금까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었다. 가끔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결국 다 죽었다. 그런데 주님 재림하실 때 성도도 그런 부활체가 되어 다시는 죽지 않는 완벽한 몸과 병들지 않고 늙지 않는 몸을 받는다.

 지금은 썩을 몸을 입고 있지만 앞으로는 변화된 완벽한 새 몸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 부활소망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며 살라고 했다(18절). 그렇게 서로 위로하며 살라고 하나님이 성도의 만남도 허락해주셨다. 어둡고 한적한 길을 혼자 가면 두렵지만 같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것이 서로 위로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누군가 고난과 상처로 좌절해 있으면 부활의 진리와 소망으로 위로하고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천국 순례자의 길을 끝까지 잘 달려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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