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가 수반된 사랑을 하라


 


본문말씀 : 사사기 19장 20-25절


20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 비겁한 레위인 종교리더 >

 레위인이 도망쳤던 첩을 장인의 집에서 데리고 돌아오다가 저녁에 베냐민 자손들이 살던 기브아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때 한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후하게 대접했다(20-21절). 그때 동네 불량배들이 집 문을 두들기며 노인에게 말했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22절).” 그 불량배들은 레위인을 끌어내 호모섹스를 하려고 했다.

 노인은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워낙 완악해 말로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레위인을 보호하려고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다고 했다. 그런 차선책이라도 써서 레위인을 보호하려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힘없는 여성들을 사지로 내모는 모습은 결코 복된 모습이 아니다. 좋은 목적이 나쁜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목적이 좋아도 수단이 나쁘면 최종적인 의미에서 결코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

 그 노인의 제안도 불량배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호모섹스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급박한 상황이 펼쳐지자 레위인은 먼저 자기 첩을 붙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데려왔던 첩을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자기 생명을 지키려고 불량배들에게 윤간대상자로 내준 것이다. 그 불량배들은 그 첩의 미모에 반해서 밤새도록 윤간하며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았다(25절).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나쁜 레위인 출신의 종교인은 사랑을 고백하고 데려온 자기 첩까지 바로 불량배들에게 내주었다. 이기주의와 비겁함의 극치다. 이 장면에서 평소 레위인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그 동안의 정황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 의가 수반된 사랑을 하라 >

 어느 날 꽤 풍채 좋은 유부남 레위인이 어디에 갔다가 미모의 접대부를 만났다. 계속 만나보자 그녀는 미모도 있었지만 가정도 꽤 괜찮았고 여성스럽고 마음도 따뜻했다. 그래서 사탕 발린 사랑의 고백으로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유부남과 결혼한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지만 평소에 예의와 따뜻함도 있는 편이고 꽤 높은 종교인이었던 것도 마음에 끌려서 결국 그의 첩이 되었다.

 둘의 평소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본성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 심기가 불편한 일이 있거나 포도주만 마시면 손찌검을 하거나 심한 욕을 하면서 가끔 “접대부 출신 주제에...”라고 비하하는 말까지 했다. 처음에는 참았다. 심기가 좋아지거나 술만 깨면 잘못했다고 빌면서 또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결국 그녀는 더 이상 같이 못살겠다고 아버지 집으로 도망갔다.

 레위인은 첩이 떠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더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는 손찌검과 비하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후 데려오려고 첩을 찾으러 장인에게 갔다. 결국 정 때문에’ 그녀는 다시 레위인을 받아들였지만 그녀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부부 사이에 욕하고 손찌검을 할 때는 쉽게 용서하지 말라. 아무리 술 먹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그랬어도 그런 버릇은 용납될 수 없다.

 술버릇, 말버릇, 손버릇은 고치기가 아주 어렵다. 그 버릇이 확실하게 고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마음 문을 열면 고생도 계속된다. 희생은 자초하며 살아도 고생은 자초하며 살지 말라. 남편이 나쁜 술버릇과 말버릇과 손버릇으로 큰 상처를 주고 나서 “잘못했소. 용서하오. 사랑하오.”라고 빌면 아내는 정 때문에 또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런 ‘가정 안 스토커’로 인해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마음으로는 용서했어도 멀리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멀리하라. 의가 수반된 사랑이 참된 사랑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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