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능력이 중요하다

[ 데이비드 호크니 : 울드게이트 숲, 봄 ]

 


본문말씀 : 여호수아 10장 1-8절


1 그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3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4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5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6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7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 협력 정신을 앞세우라 >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 성을 진멸한 소식을 듣고 두려워 떨던 가나안 부족들에게 기브온의 항복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과 네 왕은 기브온 족속을 배반자로 여기고 연합군을 형성해 기브온을 공격했다(4절). 그때 기브온 족속이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하자 여호수아는 기브온에 대한 공격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기브온을 도우러 갔다(6-7절).

 사탄은 어떤 사람을 공격할 때 자녀나 배우자와 같은 주변의 약한 사람부터 공격할 때가 많다.  “사이를 갈라놓고 공격하라!”는 공격방법은 사탄이 가장 잘 쓰는 공격방법이다. 그 전략을 생각하고 늘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려고 해야 한다. 이기주의는 기독교의 최대 적이다. 혼자만 잘살려고 하면 어느새 사탄에게 당한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힘써 돕고 자신이 어려움에 빠졌으면 담대히 도움을 요청하는 관계를 만들라.

 서로 높은 벽을 쌓고 싸우면 사탄만 좋아한다. 결국 하나씩 사탄의 밥이 된다.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고 협력하라. 언제 협력정신이 꽃피는가? 예수님의 2대 성품인 겸손과 온유가 있어야 한다. ‘온유’란 말은 헬라어로 ‘프라우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극단(極端)에 서지 않는 것’을 뜻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따뜻하고 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온유한 것이고 그런 온유한 성품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된다.

 이단들은 그들 식으로 은혜 받으면 더 편협해지고 더 성질이 사나워진다. 멀쩡한 사람도 사탄이라고 하고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공동체에 갈등을 일으킨다. 그렇게 갈등을 일으키다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을 십자가라고 한다. 십자가란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안 된다. 십자가는 남의 죄를 대신하고 의로움을 창출하는 거룩한 희생이지 자기 잘못으로 당하는 어려움이 아니다. 이단들의 편협한 십자가 논리에 치우치지 말고 온유한 협력자가 되라.

< 믿음의 능력이 중요하다 >

 여호수아서를 보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대장군이었던 여호수아도 수시로 두려움에 싸였다는 암시다. 사실 본문에 나오는 5왕의 연합군은 이스라엘을 두렵게 할 만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에 광야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을 보냈을 때 10명의 정탐꾼이 거인족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두려워하면 그 두려워하는 것의 지배를 받는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나가면 어떤 문제와 시련과 사탄도 성도를 이길 수 없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되듯이 사탄이 공격해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사탄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해서 성도를 위협만 할뿐이지 삼킬 수는 없다. 성도 뒤에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다(민 14:11).

 하나님을 멸시하는 마음이 진정 없다면 담대한 믿음을 가지라.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만사형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면 상황이 더 나빠질 때도 있다. 본문에 나오는 다섯 왕의 동맹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보고 누군가 불평했을지도 모른다. “왜 하나님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실까? 한 족속도 상대하기 힘든데 다섯 왕의 연합군을 어떻게 상대하나?”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것은 그들을 한꺼번에 정복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였다.

 연합군의 숫자는 많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숫자와 상관이 없다. 많은 돌보다 하나의 보석이 더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가치 기준은 양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고 질적인 것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양적인 세계가 아니고 질적인 세계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군인이 아무리 많아도 역사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패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실력보다 신력(信力), 즉 믿음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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