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쟁에서 이기는 길

[ 데이비드 호크니 작 ]



본문말씀 : 열왕기상 20장 1-21절


... 16 그들이 정오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이 명과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17 각 지방의 고관의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정탐꾼을 보냈더니 그들이 보고하여 이르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18 그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19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서 나가서 20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니라 21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



< 인생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 >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아람의 벤하닷 왕 사이에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나온다. 본문이 주는 교훈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

 아람 왕 벤하닷 2세가 32명의 아람 소국 왕들과 함께 연합군을 형성해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포위 공격했다(1절). 그는 사자들을 아합에게 보내 거만하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3절).” 국내적으로는 폭압 정치를 하면서도 외교적으로는 비겁한 졸장부처럼 아합은 벤하닷 앞에서 신하처럼 말했다.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4절).”

 아합이 비굴하게 나오자 벤하닷의 사신들이 둘째로 와서 아합과 신하들의 집까지 수색해서 좋은 것을 가져가겠다고 했다(5-6절). 그런 치욕적인 요구에 아합이 나라 각 성의 원로급 장로들을 다 모아서 그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모든 장로들과 백성들이 그 요구를 거절하라고 했다(7-8절). 가만히 앉아 치욕을 당하지 말고 함께 싸우다 죽자는 뜻이었다. 왕은 비굴했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는 백성들로 인해 대 아람 전쟁을 이길 수 있었다. 그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십자가의 헌신을 하면 인생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한 성도가 병에 걸렸다. 나중에 목사가 다른 성도를 통해 그 병 사실을 알고 물었다. “권사님, 왜 그 병 얘기를 하지 않았나요?” 그가 대답했다. “목사님이 말씀 사역과 선교 사역에 더 신경 쓰고 남을 위해 더 기도하시도록 그냥 조용히 있었어요.” 그러자 목사가 더 감동 받아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물질적인 헌신과 몸으로 봉사하는 헌신도 헌신이지만 양보하고 배려하는 그 마음도 귀한 헌신입니다. 그에게 치유의 은혜를 내리소서.” 그처럼 남을 배려하면서 헌신하며 살면 하나님이 더 은혜를 주신다.

 죽기를 각오하라는 말이 탈진할 정도로 일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도 못할 수 있다. 너무 무리하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또한 너무 버겁게 일하다가 의욕을 잃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 죄책감에 빠지면 오히려 역효과다. 쉬어야 할 때는 쉬라. 또한 죽기를 각오하라는 말은 무분별하게 죽는 길로 대책 없이 가라는 말도 아니다. 지혜롭게 전략도 짜고 대책도 마련하면서 담대하게 좁은 길로 가고 헌신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면 반드시 복된 길이 열린다.

2. 승리의 확신을 가지라

 아합이 장로들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내 주 왕께 말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9절).” 아합은 벤하닷에게 ‘내 주 왕’이라고 말하면서 저자세로 비굴하게 어떻게든지 승산 없는 전쟁을 피하려고 처음의 전쟁 배상 요구는 들어 주겠지만 둘째로 요구한 이스라엘에 대한 수색 약탈 요구는 들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벤하닷이 32명의 소국 왕들과 장막에서 술을 마시다가 아합의 말을 듣고 신하들에게 사마리아 성읍을 향해 공격 진영을 치라고 했다(12절). 그때 한 무명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13절).” 그 선지자는 아합의 승리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처럼 승리를 확신할 때 승리 가능성도 커진다.

 큰 문제를 만날 때 부정적이 되거나 낙심하지 말고 승리를 확신하며 먼저 감사하라. 감사는 승리의 예고편과 같다. 기도할 때도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 어떤 사람은 기도를 불평하는 것이나 부정적인 상황을 보고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나님! 사업이 안 좋습니다. 그가 저를 너무 괴롭힙니다. 자녀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밥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보고하는 것이나 문제를 아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의 어려운 상황과 문제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은 믿음의 기도다. 하나님은 나의 문제에 의해 움직이시지 않고 나의 믿음에 의해 움직이신다. 그 믿음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감사하는 삶과 긍정적인 말로 나타난다. 힘들고 어렵고 문제가 있을 때 의식적으로 내 입에서 믿음의 말이 나오도록 해서 문제가 크다는 말은 더 적게 하고 하나님의 크심에 대한 말은 더 많이 하라. 그처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실 것이다.

3. 숫자에 매달리지 말라

 아합이 승리의 말씀을 전한 무명 선지자에게 말했다. “누구를 통해 승리하게 하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그 말을 듣고 아합이 계수한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은 232명이었고 그 외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은 7,000명이었다(15절). 총 7,232명이 10만 명 이상의 아람 대군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숫자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인생 전쟁의 승패도 숫자나 소유나 능력이나 외형에 달려 있지 않다. 물론 숫자에 매달리지 말라는 말이 목표 수치를 세우지 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는 것을 전제로 해서 숫자로 구체화된 장단기 목표를 세울 필요는 있다. 그런 목표까지 없으면 찬란한 비전은 허상을 쫓는 신기루가 될 수 있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면 때로는 그 목표가 나를 이끌어 준다.

 필자는 매달 <월새기(월간새벽기도)>를 집필하면서 가끔 지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107달 동안 <월새기>를 매달 어김없이 집필했다. 글이 잘 안 써지면 필자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2031년까지 200달의 1라운드 집필은 필자가 마쳐야 한다는 목표 수치를 세웠기에 지친 마음과 나태한 마음을 떨쳐낼 수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의 은밀한 후원과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사역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숫자에 매달리지 말라는 말은 목표 수치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이다.

 스가랴 4장 6-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보다 성령 충만이 문제의 큰 산을 평지로 만든다는 말씀이다. 금력과 권력과 능력과 무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특히 생명이나 행복은 그것들이 가져다주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큰 승리의 역사를 이뤄낼 수 있다.

4. 자만과 방심을 버리라

 아합의 소규모 군대가 정오에 나갈 때 벤하닷은 장막에서 자신을 돕는 왕 3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였다(16절). 그때 각 지방 고관의 청년 선봉대 232명이 사마리아 성에서 나오자 정탐꾼들이 그 사실을 벤하닷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그 나온 숫자가 너무 소수니까 벤하닷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이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18절).” 전장에서 대낮에 술에 취한 것과 232명의 청년 선봉대를 우습게 안 자만과 방심으로 아람 대군이 7,232명의 이스라엘 군에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대패했다.

 살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자만이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도 버리라. 인격적이고 책임적이고 배려적인 사람도 비교적 낫다는 것이지 그도 사실상 부족한 존재다. 그래서 내가 인격적이고 책임적이고 배려심이 많다고 자만에 빠져 생각하면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왜 저 사람이 불만을 품지?”라고 하면서 은근히 자신도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내가 꽤 괜찮은 줄로 알지 말고 여전히 부족한 줄로 알라. 실제로 나는 상대를 잘 챙기고 배려한다고 하지만 신이 아닌 사람은 상대의 바람과 허전함과 부족함을 온전히 채워 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꽤 아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해 배려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그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결혼 후부터 나와 아이들을 위해 약 2만 끼니와 5만 인 분의 식사를 차려 주었을 텐데 내가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 생각을 하니까 자신이 그 전까지 인격적이고 책임적이고 배려가 많았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술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고 회개했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고 여기고 그 부족함을 더 깨닫고 채우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깨달았으면 그 깨달음대로 힘써 실천하라. 형편이 넉넉지 않아도 소리 없이 천만 원을 힘써 모아 아내에게 선물로 주면서 말하라. “여보, 당신 친구나 형제와 함께 3주 동안 남미 패키지여행 한번 갔다 와요.” 그러면 아내가 고마워할 것이다. 왜 고마운가? 남편이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마음도 고맙지만 남편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만을 버린 태도가 그 선물에 깃든 것을 느끼고 더 고마울 것이다.

 그때 아내는 남편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 괜찮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남편이 가족과 떨어져 자유롭게 혼자 푹 쉬다 오라고 하면 마지못해 말할 것이다. “여보, 천만 원은 너무 사치인 것 같고 4백만 원만 가지고 2주 동안 유럽 패키지여행을 갔다 올게요.” 그처럼 마음이 담긴 선물과 배려가 삶의 활기를 주고 행복 지수를 높인다. 어디서든지 “내가 잘한다. 괜찮다.”라는 자만과 방심이 상황과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사람은 겸손한 마음을 주고받아야 참된 행복을 찾고 인생 전쟁을 승리로 만들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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