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누리며 사는 길
본문말씀 : 시편 4편 1-8절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 평안을 누리며 사는 길 >
1. 기도하라
다윗은 과거에 곤란 중에 너그럽게 대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했다(1절). 기도할 때 바른 기도 제목을 가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아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로우신 문제 해결을 믿었기에 곤란 중에도 평안할 수 있었다.
예전에 서울대 전체 수석 졸업자가 수석 졸업 비결을 말했다.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 오늘도 제 공부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니까 공부가 잘 되었습니다.” 일의 시작 전에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라. 사업할 때도 매일 아침 말씀을 본 후 “하나님! 오늘도 제 사업을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시작하라. 믿음의 기도가 있을 때 좋은 결과도 있다.
2. 경건하라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택하시고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2-3절). 경건하게 살려면 2가지를 잘하라. 첫째, 경건한 언어를 쓰라. 입술이 무절제한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경건이다(약 1:26). 믿음과 인격의 수준을 잘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략 파악된다. 입술이 경건하면 경건한 삶의 기본은 갖춘 셈이다.
둘째, 겸손한 약자를 돌보라(약 1:27). 연약한 형제와 이웃을 돌보는 긍휼한 마음을 잘 배양하라. 기적 집회나 은사 집회에 열심히 찾아다니는 사람보다 어려운 곳을 찾아 돕는 손길을 베푸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고 영성이 높은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더 쓰임도 받고 더 기적과 은사도 체험하고 더 기도 응답의 주인공도 된다.
3. 예배하라
분노를 자제하며 심중에 말하고 좀 더 침묵할 줄 알라(4절). 곤란 중에 혀를 제어하고 잠잠하게 자리에 눕고 심중에 말하면 사탄에게 당할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답답한 심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영혼이 터질 것 같을 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면 영혼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예배하는 삶이 중요하다.
다윗은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했다(5절). 의의 제사란 형식적인 예배의 반대말로서 ‘힘든 중에도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진실한 예배’를 뜻한다. 곤란 중에 침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배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힘들고 어려우면 예배를 앞세우라. 예배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최상의 행동 언어다.
4. 기뻐하라
당시 다윗을 따르던 일부 무리들은 너무 상황이 힘드니까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가 누굽니까?”라고 하며 믿음에 회의를 가지고 탄식했다(6절).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은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얻는 기쁨과 평안이다. 그런 기쁨이 생겼기에 다윗은 평안히 눕고 잘 수 있었다(8절).
곤란한 지경에 처할 때도 성도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기쁨과 평안의 원천은 외부보다 오히려 내부에 있다.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순종이 있으면 된다. 잘 믿어도 불편할 수는 있지만 깊은 불안은 없다. 반대로 안 믿어도 편안하게 살 수는 있지만 깊은 평안은 없다. 믿음은 기쁨과 평안의 원천이다. 믿음의 크기가 커지면 소망의 크기도 커지고 인내의 크기도 커진다. 현재 상황은 절망적일지라도 성도의 미래는 희망적임을 잊지 말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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