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쫓아내야 할 것
본문말씀 : 느헤미야 13장 1-9절
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 그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안지라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
< 교회에서 쫓아내야 할 것 >
느헤미야 13장에 나오는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장면은 교회 개혁을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은 하나같이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았다.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쫓아내야 할 것을 쫓아내지 못하면 새로운 역사는 펼쳐지지 않는다. 특히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3가지를 반드시 쫓아내라.
1. 암몬과 모압
성벽 봉헌식 후 백성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행한 것은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이방인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그때 느헤미야는 암몬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모세오경 말씀을 읽어주었다(1절). 왜 그런 말씀이 있게 되었는가?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않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했기 때문이다(2절).
그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했다(3절). 이 구절에서 ‘섞인 무리’는 ‘신앙을 해치는 이방인 무리들’을 뜻하는데 그들을 강제로 쫓아낸 것이다. 이 구절에서 암몬과 모압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 침투한 온갖 세속주의 사상을 뜻한다. 그런 세속주의를 철저히 버리라.
2. 도비야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갔다 오느라 약 1년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있었을 때 제사장 엘리아십이 성벽재건을 방해했던 암몬 족속 도비야와 내통하며 도비야에게 성전의 큰 방을 내주는 특혜를 주었다(4절). 느헤미야라는 감독자가 사라지자 리더와 백성들이 금방 방종에 빠진 것이다. 그 사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가 알고 성전 안에 똬리를 튼 도비야를 통해 문화 및 종교적인 침투가 이뤄질 것을 염려해서 도비야의 세간을 방 밖으로 내어던지고 예수님처럼 성전 청소를 감행했다(8절).
지금 한국교회의 침체는 교회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성장시키려는 각종 세미나와 프로그램이 제일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떤 세미나는 노골적으로 교묘한 탈법 및 편법을 가르치면서 그린벨트를 자연녹지로 만드는 방법, 불법 건축물로 건축비 보상받는 방법, 전도할 때 아파트 경비 속이는 방법 등을 가르친다. 그런 방법들이 바로 도비야다. 그래서 교회가 살려면 세미나부터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처럼 물질에 욕심을 품고 교회로 침투하는 기복주의의 도비야를 철저히 쫓아내라.
3. 엘리아십
왜 엘리아십이 도비야에게 성전의 큰 방을 내어주었는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둘 사이가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였기 때문이다. 둘째, 도비야의 달변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셋째, 가장 큰 이유는 도비야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기 입지를 넓히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면 리더의 야욕과 타락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깨닫는다. 사실 도비야보다 엘리아십이 더 위험한 존재다. 도비야가 아무리 달변이고 수완이 있어도 엘리아십의 협조가 없었다면 성전에서 큰 방을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공동체든지 내부의 대적이 외부의 대적보다 더 무섭다. 사실상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야욕을 비전으로 포장한 교회 리더의 타락이다. 물론 엘리아십도 한때는 순수한 신앙열정을 가지고 성벽재건에 열심히 참여했다(느 3:1). 그러나 점차 엘리아십은 사명을 잃고 직업의식에 빠져 세속화되고 결국 도비야와 내통하게 된 것이다. 왜 은혜를 지속시키지 못하는가? 죄와 욕심이 수시로 찾아와 은혜를 막기 때문이다. 그런 은혜를 막는 장애물들을 과감하게 잘라 내버리라. 가장 큰 문제는 남의 죄가 아니라 내 안의 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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