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을 힘써 지키라
본문말씀 : 느헤미야 13장 15-21절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주일성수는 복의 기초다 >
진실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평균 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만큼 거짓말을 많이 한다. 알고도 짓는 죄가 있고 모르고도 짓는 죄가 있듯이 알고 하는 거짓말도 있지만 모르고 하는 거짓말도 많다. 그 실상을 깨닫고 남의 허물에 대한 비난을 극히 주의하라. 중요한 것은 내 진실이다.
어떻게 진실을 향해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가? 진실한 삶을 위해 성도가 지켜야 할 핵심적인 삶의 원천이 주일성수다.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 기록된 장이다. 느헤미야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가장 먼저 십일조 생활을 강력히 권면했다. 그 다음으로 강력히 권면한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삶이었다.
페르시아에서 귀환한 후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민정을 살피러 나갔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 단을 운반하고 여러 짐을 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15절). 두로 상인들도 예루살렘에 와서 안식일에 물고기와 각종 물건을 팔았다(16절). 그처럼 안식일을 범하는 모습을 보고 느헤미야는 먼저 귀인들부터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라고 심하게 꾸짖었다(17-18절).
결국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문을 닫고 성문마다 자신의 심복들을 2-3명씩 배치해서 성 안으로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성 밖에서 진을 치고 잠자는 장사꾼들에게 다시는 성 밑에서 잠자지 못하게 했다(19-21절). 왜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지키도록 혼신의 힘을 다했는가? 안식일을 지키는 삶이 축복의 기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 주일을 힘써 지키라 >
주일을 지키는 삶은 복의 탑을 높게 쌓는데 가장 중요한 기본 의무로서 주일성수란 단순히 일을 하지 말라는 뜻보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라는 더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뜻을 오해하면 주일에 가게나 식당에 간 것을 주일을 범한 삶으로 정죄하고 비난하게 된다. 주일에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 그 주인들이 주일을 범하게 하는 죄를 짓는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지나치면 자기 의를 과시하는 바리새인처럼 된다.
자기가 생각하는 의만 중시하는 편협적인 바리새인의 마인드를 가지면 사실상 주일에는 식물인간처럼 집에서 누워만 있어야 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안 된다. 그것도 운전자를 일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멀리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토요일 저녁에 도시락 두 개 싸들고 교회로 걸어가야 한다. 결국 주일에 식당에 가지 않고 버스를 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일의 더 깊은 의미를 망각하게 만든다.
주일을 지키라는 명령에는 세상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님 안에서 정비하라는 뜻도 있고, 돈과 성공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뜻도 있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혼을 성숙시키고 결국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도 있다. 단순히 무엇을 하지 말라는 차원으로만 주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을 흐트러진 영혼을 주 안에서 새롭게 가다듬고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회복시키는 날로 삼으라.
얇은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 때문이다. 주일성수는 영혼의 마디와도 같다. 그 마디가 있어야 영적 거인이 된다. 결국 주일을 지키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주일은 이 땅에서 천국 삶을 연습하는 날이다. 또한 주일을 지키는 삶 자체에는 이런 신앙고백이 들어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늘 순종하겠습니다.” 그런 신앙고백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주일성수다. 힘써 주일을 지킬 때 하나님은 참된 안식과 평화를 내려주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