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예비하는 마음
본문말씀 : 누가복음 1장 38절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힘을 과시하지 말라 >
예전에 바보 목사로 불린 북한 출신의 한 목사가 있었다. 그는 웅변도 몰랐고 쇼맨십도 없었다. 대형 교회 목사지만 소매가 닳은 옷을 입었고 고급차도 타지 않았다. 교회 세습을 꿈꾸지 못하도록 외아들을 외국으로 보내버렸고 후배 목사들이 통일운동을 한다고 북한을 제집처럼 드나들 때도 고향에 못간 많은 실향민을 두고 자기만 갈 수 없다면서 바보처럼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천국 본향으로 가셨다.
한국 교회는 힘이 있어도 힘을 감추고 버리는 바보 같은 목사를 그리워하고 있다. 사랑이란 힘이 있어도 힘을 감추거나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힘 앞에 남들이 벌벌 떨면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학벌과 연줄에 목을 매고 힘이 있는 곳으로 몰린다. 그러나 힘의 논리로 살면 어둠의 세력은 커지고 영혼은 길을 잃는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강한 힘을 가진 문제 해결사로 오시지 않고 연약한 모습을 하신 희망 메이커로 오셨다. 그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만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이 넘친다. 너무 화려한 것만 좇지 말라. 힘을 숭상하거나 과시하지도 말라. 겸손하게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구유를 준비하면 삶에서 비틀거림은 사라지고 영혼에 깊은 평화가 깃들 것이다.
< 은혜를 예비하는 마음 >
본문에 언급된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교훈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예비하려면 어떤 마음이 필요한가?
1. 겸손한 마음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26-27절). 지금도 가브리엘 천사가 수시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신비한 기적만 좋아하지 말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욱 복된 삶은 서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좋은 일을 바라는 것’보다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을 더 원하신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갈릴리 나사렛의 평범한 시골 처녀 마리아를 택하셨다. 메시야는 예루살렘 출신이나 가나안의 중심 성읍 출신이어야 할 것 같은데 가장 소외된 지역 중 하나였던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공생애 이전에는 대부분의 생애를 나사렛에서 사셨다. 그 사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뜻과 다름을 깨닫는다.
힘과 다수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 물론 힘을 버리라는 말이 힘을 갖추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실력과 능력을 힘써 갖추라. 재물도 바르게 추구하라. 예루살렘 교회가 든든히 선 데는 재력을 갖춘 바나바의 역할이 컸다. 최초의 이방인 신자였던 고넬료도 재력과 권력이 있었고 최초의 유럽 신자로서 사도 바울의 선교를 힘써 도왔던 루디아도 상당한 재력가였다. 그들은 능력과 재력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겸손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큰일을 하는 단순히 능력과 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히 섬길 줄 아는 사람이다. 능력과 재력과 권세가 있으면서도 겸손히 섬기는 사람은 더욱 큰일을 할 수 있다. 능력 문제에서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자세로 살고 태도 문제에서는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자세로 살라. 높다고 자처하면 낮아지고 낮다고 자처하면 높아진다.
2. 용서하는 마음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다(27절). 당시 유대인들은 결혼 1년 전 쯤 약혼했는데 약혼하면 법적으로 결혼한 것과 같아서 약혼녀가 부정을 저지르면 돌을 던져 죽이기도 했다. 또한 약혼 기간에 신랑이 죽으면 신부는 과부로 간주되었다. 그런 시대에 요셉이 약혼한 마리아의 신비한 처녀 잉태를 용서했기에 예수님의 탄생이 있게 되었다. 요셉의 용서하는 믿음이 큰 은혜를 예비한 셈이다.
용서와 용납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하면서 용서를 계속 훈련하고 용서의 폭을 넓히라. 참된 용서는 쉽지 않다.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일을 벌여 내게 큰 상처를 남긴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게 가한 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여기는 섭리의식을 가지면 그때부터 용서가 시작되면서 신기하게 몸도 회복되고 꿈도 회복되고 일도 회복된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노예로 팔렸다. 그 원한을 어떻게 잊는가? 그러나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된 후 고백했다. “하나님이 가족 전체를 구원하려고 저를 애굽으로 먼저 보내셨습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경쟁에서 패배하면 요셉처럼 고백하라. “이 일을 당하게 된 것에 하나님의 크고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불의가 승리하는 시대는 끝나고 정의가 회복될 줄 믿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요셉처럼 크게 높여주실 것이다.
3. 감사하는 마음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먼저 “은혜를 받은 자여”라고 말했다(28절). 왜 그녀가 은혜를 받은 자인가?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복과 은혜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생각을 초월한 넘치는 은혜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은혜도 주시지만 이미 주신 은밀한 은혜도 많다. 죽게 된 죄인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적은 모든 은혜의 원천이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사실상 어느 것 하나도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그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삶이 진짜 은혜 받은 삶이다. 가장 큰 은혜는 ‘은혜를 깨닫는 은혜’다. 그런 깨달음이 있으면 고난도 은혜로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 15:10).” 사도 바울은 매 맞는 것도 은혜로 알았고 감옥에 가는 것도 은혜로 알면서 극심한 고난 중에도 헌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처럼 모든 일과 사건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는 시야를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이다.
4. 꿈꾸는 마음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놀라면서 무슨 일인가 생각할 때 천사가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였는가? 처녀로서 잉태하는 것이었다(31절). 왜 처녀 잉태가 은혜인가? 하나님의 꿈이 깃든 예수님을 잉태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성령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꿈을 마음에 품으면 하나님의 은혜도 넘치게 임할 것이다.
현재 잘 먹고 잘 살지는 못해도 내일의 찬란한 꿈이 있다면 행복한 존재다. 주일은 하나님의 꿈을 새롭게 하고 뚜렷하게 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꿈은 또 다른 새로운 꿈을 낳고 선한 열매도 낳는다.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찬란하고 영롱한 꿈이 있는 사람이다. 왜 꿈이 있어야 성공하는가? 꿈이 있을 때 장점을 보는 눈과 창조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남의 장점을 보면 그 장점이 점차 내게도 생기면서 삶도 나아진다.
예전에 선구자가 되지 말라는 유머가 있었다. ‘선천적 구제불능성 자아도취증 환자’인 선구자가 되지 말라는 유머다. 내면에 자아와 자존심을 가득 채우기보다 꿈과 비전을 가득 채우라. 거룩한 꿈과 소원을 가지면서부터 삶은 가치 있게 된다. 복된 삶을 살려면 영롱한 하나님의 꿈을 꾸라. 하나님의 꿈은 절망한 자에게 희망을 주는 요체다. 그런 꿈을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마리아가 받은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5. 헌신하는 마음
천사는 마리아에게 처녀 잉태 소식을 전하면서 아들을 낳으면 ‘예수’라고 하고 그 아들이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지고 다윗의 왕위가 주어지고 그의 나라가 무궁할 것이라고 했다(32-33절). 그때 마리아가 말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그녀는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자신을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드린 그녀를 맞아죽게 하지 않고 역사상 가장 복된 존재로 만들어주셨다.
거룩하고 찬란한 꿈이 잉태되고 출산되려면 자신을 드리라. 고통 과정이 없는 성취는 없다. 헌신을 회피하면 은혜가 싸구려가 되지만 희생하고 헌신하면 은혜가 가치 있게 된다. 꿈의 성취를 원하면 마리아처럼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겸손하고 비장한 헌신 고백을 하라. 고난이 예상되어도 말씀을 따라 자기 생명과 운명을 바치면 하나님은 상상을 초월한 큰 축복으로 높여주실 것이다.
사랑은 헌신이다. 유행가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사랑하면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게 된다. 상대를 낮추고 나를 높이는 것은 사랑이란 이름을 빌어 상대를 도구화하는 것이다. 사랑의 크기는 내가 작아지는 크기와 비례하기에 사랑이 극도로 커지면 내가 극도로 작아진다. 왜 예수님은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날 정도로 작아지셨는가? 사람을 극도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1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인생의 황금기에 하나님의 뜻과 꿈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고 했다. 그녀의 헌신하는 마음을 통해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고 큰 은혜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꿈에 순종하고 헌신하려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헌신하며 사는 것만큼 복된 삶은 없다. 늘 요셉의 용서와 마리아의 헌신을 앞세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예비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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