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며 살라
본문말씀 : 사무엘상 7장 12-17절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뚜렷한 비전을 가지라 >
분당 샛별교회가 소속된 얼라이언스 한국 총회의 모 교단인 미국 기독교선교연맹(C&MA,미국성결교)은 세계적인 선교 교단이다. C&MA는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아 한국에서는 잘 모르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는 한국의 장로교처럼 메인 교단이다. 그렇다면 교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드러내도 되는데 귀국 초기에 한국에서는 생소한 미국 교단 교회로 교회를 개척하면 교회 부흥이 힘들다는 말을 듣고 목회할 때 교단 색채를 감추고 정체성과 비전을 뚜렷하게 세우지 못했다.
리더에게 뚜렷한 비전이 없으면 팔로워를 감동적으로 이끌기가 쉽지 않다. 교회 비전을 제시할 때 “탁월한 선교 유산을 가진 건전한 C&MA 교회들을 많이 세우자.”라고 하면 비전이 잘 체감되지만 “이단 소리 듣지 않도록 힘쓰고 욕먹지 않는 교회를 만들자.”라고 하면 비전이 잘 체감되지 않는다. 개척자에게 물적 자산과 인적 자산이 없다면 비전 자산이라도 뚜렷해야 하는데 뚜렷한 비전 제시도 없이 그저 좋은 말씀만 전해 주려고 했기에 교회에 좋은 코어그룹과 헌신적인 일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비전이 뚜렷하면 큰 문제가 있어도 교인이 잘 흔들리지 않는데 비전이 희미하면 작은 문제에도 교인이 쉽게 흔들린다. 평소에 말씀 교육을 잘 받아도 시험에 들면 그때까지의 배움과 은혜는 잊고 감정의 지배를 받을 때가 많다. 그 감정을 무엇이 극복하게 만드는가? 거룩한 비전이다. 그런 거룩한 비전의 중요성을 목회 초창기에는 잘 인식하지 못했다. 이단 교주도 “내가 재림주다. 내게 와야 구원받는 14만 4천 명 안에 속한다.”라고 거짓 비전이라도 분명하게 제시하니까 미혹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선구자나 개척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뚜렷한 비전이다. 인물이 되는 꿈을 가진 후대에게 꼭 말해 주고 싶은 것은 뚜렷한 비전을 가지라는 말이다. 뚜렷한 비전이 없으면 인적 자산과 물적 자산을 선점한 기존 체계와 기득권층 사이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결국 나는 한국 C&MA의 개척자임을 자부하면서 교단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고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했기에 개척 초기에 비전에 헌신된 사람을 얻지 못했다.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 왜 저희 교회에 좋은 코어그룹이 생기지 않습니까?”라고 기도하니 하나님도 답답하셨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게으르게 살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축복의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살았기에 문서 선교 사역은 커졌다. <월간새벽기도> 사역은 잘 지속되고 있고 현재까지 성경 전권 강해설교도 80% 이상을 완성시켰다. <온라인새벽기도> 식구 중에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저의 비전을 위해 기도해주는 핵심 멤버도 꽤 있다. 그처럼 문서 선교 사역의 열매는 꽤 맺었지만 큰일을 하려면 교회 성장도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뚜렷한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 >
어디서든지 곁불 쬐는 인생처럼 살지 말고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자기 색채를 지혜롭고 뚜렷하게 나타내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현재의 상황과 처지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물 되는 비결이다. 감사한 사실은 지혜가 부족해서 곁불 쬐는 인생처럼 뚜렷한 비전이 없이 살았어도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셨다는 사실이다. 본문 12절에서 사무엘이 돌을 세운 후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뜻의 에벤에셀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후대가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왜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한가? 감사가 또 다른 감사거리를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에벤에셀의 감사 후에 어떤 감사거리가 따랐는가? 첫째,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은혜가 따랐다. 사무엘이 에벤에셀의 감사를 하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한 후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했고 하나님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아주셨다(13절). 하나님이 내 인생을 앞으로도 온전히 지켜주기를 원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라.
둘째, 회복과 평화의 은혜가 따랐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어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14절). 잃었던 것을 되찾고 또한 되찾은 것을 평화롭게 오래 간직하기를 원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라.
셋째, 리더십이 탁월해지는 은혜가 따랐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았던 사무엘은 사사로서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릴 정도로 리더십이 굳건해졌고 사사였지만 왕처럼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15-16절). 또한 순회 후에도 자기 고향이자 집이 있던 라마로 돌아와 거기서도 왕처럼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렸고 거기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성막이 있던 실로 대신 라마에서 제사 의식을 행함으로 영적인 권위도 죽을 때까지 잃지 않았다(17절). 탁월한 리더가 되길 원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라.
2008년 초 교회에 떼로 몰려와 등록한 사람들이 7개월 만에 떼로 몰려나갔다. 그때 교회가 큰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 후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고 숫자적인 성장은 잃었어도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러자 비전을 위해 예비된 일꾼도 하나님이 하나씩 붙여주셨다. 그런 반전의 은혜를 입은 것은 2가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어려움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교회에 등록한 한 집사가 말했다. “목사님! 오늘 설교를 듣고 그런 어려움을 겪었는지 몰랐습니다. 목사님의 얼굴이 너무 편해 보이고 기쁨이 넘쳐보여서 어려움을 겪지 않은 분 같았습니다. 만약 목사님이 편하고 기쁜 얼굴을 하지 않았다면 교회에 등록하기가 꺼려졌을 겁니다.” 하나님도 똑같은 마음이실 것이다. 시련을 당했다고 울상만 하고 지내면 하나님도 좋은 사람을 내 곁에 보내주시지 않는다.
시련을 당해도 죽도록 감사하라. 그래야 하나님이 새로운 기회도 주신다. 정말 복된 삶을 원하면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까지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감사를 잘하라. 위대한 인물은 대개 감사에 탁월한 사람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의 부자이고 최고의 성도다. 최고의 기도는 감사가 넘치는 기도이고 최고의 영성은 감사하는 영성이고 최고의 예언은 내 입에서 나오는 감사의 말이다. 그처럼 에벤에셀의 고백과 감사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라.
둘째, 어려움 중에도 선교 후원에 힘썼기 때문이다. 교회가 어려워도 선교사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면 그 필요에 힘써 반응했고 선교사에게 긴급하게 재정이 필요하면 교회가 어려워도 교회보다 선교사의 필요에 먼저 반응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교회가 선교사의 필요를 채워주기 힘들 때는 <온라인새벽기도> 독자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했다. 지금은 선교 후원 재정을 모두 교단으로 보낸다. 교단에서 잘 심사해서 후원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좋은 것 같고 교회가 자체적으로 많이 선교한다는 공로의식도 줄이기 위해서다.
< 사랑을 베풀며 살라 >
성령충만이 무엇인가? 성령을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라고 한다. 그 말은 ‘옆에서 돕는 보혜사’란 뜻이다. 성령님이 옆에서 도와주듯이 성령 충만하면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을 돕게 된다. 누군가를 돕는 삶을 체질화시키고 선교 사역의 필요에도 힘써 반응하는 성령 충만을 추구하라. 화려한 은사와 기적은 없어도 선교하는 것이 성령 충만의 핵심 표식이다. 돈을 벌 때도 좋은 비전과 좋은 사역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돈을 벌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내면에 천사의 씨앗과 악마의 씨앗이 동시에 있다. 어느 씨를 뿌리며 살지는 전적으로 자기 선택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천사의 씨앗을 뿌리면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내가 얻는 것이 많다. 무엇보다 내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면 불행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사탄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또한 그 형상을 본 사람에게도 감격과 감사가 생기면서 세상에서 빛의 역사도 확대된다.
오래 전에 교회 차량이 꼭 필요했지만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아무도 헌금하지 못할 때 어렵게 사는 한 성도가 찾아와 말했다. “목사님! 저의 차를 팔면 8백만 원 정도 받는데 그 돈을 계약금으로 걸고 교회 차를 사세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교회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성도가 거의 마지막 남은 재산을 바치겠다니까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을 듣고 재정 집사들과 그 제안을 받아야 할지 상의했다. 한 집사가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그런 귀한 마음을 주셨으니까 기쁘게 받읍시다.” 그때 제가 말했다. “집사님! 교회에 아무리 차가 필요해도 그 헌금은 받지 못하겠습니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다른 손길을 통해 주실 테니까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그 제안을 거절합시다.”
기쁘게 드리는 것을 사양하는 것이 감동적인 역사를 막는 것 같아도 어렵게 사는 성도의 마지막 희망의 씨앗은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성도에게 말했다. “성도님! 성도님의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그 헌금은 도저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이미 다 받았으니 절대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 대화가 오고갈 때 성도의 은혜 받은 감동을 막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성령님이 더욱 감동적으로 운행함을 느꼈다. 사람이 욕심을 초월해 좋은 일을 위해 내 것을 바친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어디에 가든지 ‘나’라는 말을 ‘우리’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며 살라. 욕심을 포기하고 선한 역사를 위해 나를 바치려는 삶이 진짜 복된 삶이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요즘처럼 바쁘고 힘들고 문제가 많은 때에 어떻게 남까지 신경 쓰며 사나?” 그러나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면 신기하게도 내 문제가 풀리는 축복이 따른다.
늘 어려운 사람을 힘써 돕고 선교에도 힘쓰라. 적어도 한 사람 이상 선교사를 지정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삶도 꿈꿔보라. 가끔 선교사들로부터 기도와 후원 요청 편지를 받는다. 또한 저희들의 자체적인 문서 선교를 위해 필요한 것들도 있다. 그런 필요에 반응하며 살려고 할 때 사랑과 믿음은 더욱 커지고 깊어질 것이다. 늘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나눔과 사랑을 통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