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옥순 수녀님 성화: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
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스룹바벨의 꿈을 가지라 (학개 2장 20-2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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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을 세우고 헌신하라 >
주전 536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격 가운데 성전 기초를 세웠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방해 공작 등의 문제로 성전 건축은 16년간 중단되면서 뜻 깊은 사람들은 좌절했고 백성들은 자기 집을 꾸미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성전 건축을 외면했다. 그 후 재해로 인해 농산물 수확이 줄어들자 백성들은 더 성전 건축에 나설 여유가 없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경제가 힘들어서 거룩한 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비전을 외면해서 경제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거룩한 비전이란 명목을 내세워 무리하게 성전 건축을 추진하면 안 된다. 꼭 필요하면 교회 건축을 실용적으로 해야 하지만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에 따라 무리하게 교회 건축에 나서면 교회나 교인이 다 같이 어려워지고 전체 교회의 이미지에도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교회 건축보다 비전 건축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라. 하나님은 각 사람이나 각 교회마다 장점을 주셨다. 그 장점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성공에도 때가 있다. 성공에 집착해서 하나님의 때를 단축하려고 너무 서두르면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점차 장점도 잃고 길도 잃는다. 성공 세미나를 무분별하게 쫓아다니며 자기 특색을 잃기보다 자기 교회에 최적화된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을 위해 힘쓰면서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이 좋다.
사실상 교회 건축의 비전은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 최강의 비전이다. 교회 건축에 헌신하면 하나님의 집을 세운다는 뿌듯한 감격이 실감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리해서라도 교회 건축을 끝내면 1990년대까지는 거의 예외 없이 큰 성장이 뒤따랐다. 그래서 너도나도 무리하게 교회 건축에 나섰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내부적인 반발과 외부적인 비난이 더 거세게 일어난다. 또한 교회 건축 후에도 부흥은커녕 빚을 갚지 못해 교회 건물이 경매로 넘겨지는 파멸적이고 허탈한 상황도 생긴다.
옛날에는 교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눈물로 호소하면 해결사 역할을 해주는 독지가 성도도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도 잘 생기지 않는다. 자기의 소중한 돈을 건물에 쓰기보다 선교와 구제에 쓰겠다는 성도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 건축의 비전이 최강의 비전 자리에서 밀려나면서 교인들이 구체적인 비전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자 헌신도 덩달아 약해지고 있다. 뜻 깊고 좋은 비전을 세우고 헌신하라. 각 교회가 자기만의 특징과 장점을 따라 거룩한 비전을 찾아 헌신해야 한국 교회도 살고 한국 경제도 살 것이다.
< 좋은 관심이 복을 부른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에 대한 열정이 약화되면서 경제도 악화될 때 성전 건축의 비전을 새롭게 일으키려고 나섰던 두 명의 선지자가 있었다. 그들은 학개와 스가랴다. 먼저 학개가 주전 520년인 다리오 왕 2년 6월 1일에 백성들의 무관심과 나태를 질책하는 첫째 말씀을 전했다. 그 질책으로 백성들이 각성해서 스룹바벨 총독을 중심으로 다시 성전 건축에 나섰다(학 1:15). 그러나 성전 건축 과정에서 백성들이 수시로 낙심했기에 학개는 첫째 말씀을 선포하고 50일 후인 7월 21일에 낙심한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둘째 말씀을 전하면서 성전 건축을 독려했다.
둘째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다시 힘을 얻고 성전 건축을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비전도 더러운 손길에 의해 이뤄지면 안 되기에 하나님은 둘째 말씀 후 63일이 지난 9월 24일에 백성들에게 성결한 삶을 도전하는 셋째 말씀을 주면서 약속하셨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9).” 그때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잘 끝내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지 않고 성결한 마음으로 성전 건축에 관심만 가져도 복을 주시겠다고 했다.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인가?
지금 한국 경제가 아주 어렵다. 빈익빈부익부가 심해지고 있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자동화시스템이 진행되면서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청년 실업도 큰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수록 더욱 깨끗한 마음으로 거룩한 비전 건축에 나서야 한다. 그 비전을 이루지 못해도 상관없다. 하나님은 깨끗한 마음으로 거룩한 비전에 관심만 가져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찬란한 비전을 성취하지 못해도 괜찮다. 사람은 성취를 보지만 하나님은 성취 이전에 마음과 동기와 관심을 먼저 보신다.
초창기에 성전 건축에 나섰던 때를 기억하고 다시 성전 건축에 관심만 가져도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 후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주목하셨다. 바로 성전 건축을 진두지휘한 스룹바벨 충독이었다. 그에게도 축복의 말씀이 필요함을 알고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백성들에게 셋째 말씀을 주신 같은 날에 따로 그에게 넷째 말씀을 주셨다. 축복의 말씀을 전했다.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23절).”
하나님은 대적들의 모함 중에도 자기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성전 건축에 앞선 스룹바벨과 같은 헌신적인 성도를 축복하신다. 말라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은 그런 헌신적인 심령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주시는데 정말 그런지 지켜보라고 말씀했다(10절). 예수님도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행위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4:9).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쁘게 드리고 나누고 베풀면 어느 누구보다 복된 존재가 된다.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이 없는데 많이 얻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다. 드리고 나누고 베풀 줄 알아야 축복이 진짜 축복이 되고 영혼도 풍성해진다. 가끔 고독감과 허무감과 영적인 빈곤을 느끼면 “좋은 비전 동역자가 되라. 드나베의 삶을 실천하라.”라는 내적인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라. 지금 초라한 모습이라도 헌신을 각오하고 나서면 마음과 정신부터 가난과 억눌림에서 해방되면서 사는 길이 열리고 그 길은 점차 축복의 대로로 변할 것이다.
< 스룹바벨의 꿈을 가지라 >
하나님은 성도를 축복하실 때 여러 가지 형태로 축복하신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가 스룹바벨처럼 거룩한 비전 건축에 헌신함으로 그에게 약속된 축복을 공유하는 것이다. 스룹바벨이란 이름의 뜻은 ‘바벨론에서 난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바벨론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지만 바벨론에서도 신실한 믿음과 충성으로 유다 총독이 되었고 사심 없이 헌신해서 결국 성전 건축의 비전을 멋지게 이뤄냈다.
스룹바벨의 꿈을 가지라. 자녀 중에 스룹바벨이 나오는 꿈을 꾸며 기도하라. 교인 중에도 스룹바벨이 나오는 꿈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고 기대하며 준비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면서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앞세우며 살고 선교와 구제를 위한 은밀한 큰 손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겠다는 꿈을 가지라.
꿈은 소중한 자산이다. 다른 것은 잃어도 찬란한 꿈만은 잃지 말라. 예배와 기도시간은 찬란한 꿈을 다듬고 격려하는 시간이다. 하나님도 나에 대한 꿈을 가지고 기대하심을 잊지 말라. 하나님은 꿈을 포기하지 않을 때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때로 문제와 환난이 닥쳐도 그것들을 꿈을 이루게 하는 재료로 여기라. 현재 상황이 힘들어도 하나님 안에서 꿈을 새롭게 하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실패해도 거룩한 꿈을 계속 품고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라는 믿음만 잃지 않으면 그 실패는 헛된 것이 아니다. 성도에게 실패는 하나의 좋은 경험일 뿐이다. 즉 “이런 길로 가면 안 되는구나. 이렇게 살면 안 되는구나.”라고 하는 교훈을 준 경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스룹바벨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문제와 시련을 만나면 더욱 꿈을 새롭게 하고 뚜렷하게 하라.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서 소중한 일을 하나라도 구체적으로 이루겠다는 뚜렷한 꿈을 가지라. 언제 그 꿈을 이루게 될지 몰라도 나의 피와 땀과 정성이 담긴 거룩한 열매를 남기고 천국에 가겠다는 꿈만은 포기하지 말라. 늘 거룩한 꿈을 품고 하나님의 뜻과 일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헌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나와 나의 가정과 나의 교회 중에 하나님의 크신 일을 감당하는 위대한 스룹바벨이 생겨날 것이다.
<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라 >
학개를 통해 4번의 말씀을 주시며 성전 건축을 독려했어도 그 과정에서 여전히 어려운 문제들이 계속 터졌다. 그러자 스룹바벨에게 힘이 되는 말씀이 더 필요했기에 하나님은 학개가 넷째 말씀을 전한지 정확하게 2달 후인 주전 520년 11월 24일 하루에 8가지 환상을 스가랴에게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4:6-7).”
왜 하나님은 성전 건축이런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데 큰 산과 같은 문제를 허락하시는가? “네 힘만으로는 안 되고 내 힘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려는 뜻이다. 문제가 생기면 성도들은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지켜주세요.” 그때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하는 모습과 은혜에 굶주린 모습을 원하시는구나.’ 그것이 바로 문제가 주어지는 이유다.
왜 어떤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 같은데 잘 안 풀리는가? 그런 쉬운 문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라는 뜻이다. 반면에 어떤 문제는 아주 어려운 문제 같은데 너무나 쉽게 풀린다. 그때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느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힘과 능력이 있어도 성령님이 떠나면 무력해지고 매력 없게 된다. 반면에 아무리 연약해도 성령님이 함께 하면 한 시대를 이끄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천사는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된다고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비전 건축을 주도하는 스룹바벨처럼 되는 것이다. 이제 수시로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복음 한류의 역사를 이루는 데 멋지게 일조하는 인물이 되게 하소서. 선교사들의 선교를 말씀으로 돕는 <월새기 영어판> 발행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마음도 주소서.” 그런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면 가는 길에 큰 문제의 산이 있어도 그 산들이 평지가 되면서 결국 그 비전이 이뤄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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