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라
본문말씀 : 베드로전서 3장 16-22절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2)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 선한 양심을 가지라 >
양심이란 진실을 따르며 살도록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심어놓은 내면의 음성이다. 문제는 그 양심이 왜곡되어 선의 길에서 탈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선한 양심으로 만들어가라(16절). 믿음이 있으면 착한 양심도 있어야 한다(딤전 1:19). 문제는 착한 양심을 버리는 것이다. 양심은 버릴 수도 있고 가질 수도 있다. 착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도 고난에서 면제되지는 않지만 착한 양심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면 결국 승리한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악이 선을 이기는 모습을 목격하면 내면의 착한 양심이 힘을 잃는다. 그래서 믿음과 착한 양심이 동시에 필요하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신다.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다르다. 눈에 보이는 불의와 부조리가 최종적인 결론은 아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오묘하고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선이 악을 이기는 상황을 보게 하실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많은 영혼을 주님 품으로 이끄셨다고 했다(18-19절). 또한 노아의 홍수를 언급하며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설명했다(20-21절). 노아 때 물 심판은 세례 의식을 상징한다. 세례는 몸이 아닌 마음을 씻고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이다. 결국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부활 승천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모든 만물이 주님께 순복하게 되었다(22절). 그 말은 고난을 당해도 선한 양심을 계속 가지면 결국 큰 영광을 얻는다는 말씀이다.
본문 18-22절은 조금 난해한 구절이지만 쉽게 말하면 주님의 피로 구원받아 ‘과거의 자신’은 세례를 통해 수장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기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처럼 최종 승리가 보장된 존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라는 뜻이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왜 이곳에 있는가?”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가지라. 그런 인식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힘을 주고 고난 중에도 찬란한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준다.
<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라 >
미국의 한 목회자가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호수가 딸린 20에이커에 달하는 트레일러 공원을 소유했다. 그 공원 안에는 100개 이상의 트레일러가 있었고 그 트레일러에는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가진 여러 가정이 살았다. 그가 11살 때 하루는 아버지가 그를 붙잡고 말했다. “제프! 너는 이 트레일러 공원 소유자의 아들임을 결코 잊지 마라.”
그 말은 거만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아버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삶은 아버지의 삶을 나타냈다. 그래서 그가 잘못 행동하고 골목대장처럼 트레일러에 세 들어 사는 아이들을 괴롭히면 그것은 아버지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트레일러 공원도 나쁜 곳으로 만드는 행동이었기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높은 기준의 삶을 요구한 것이었다.
하나님도 그런 높은 기준의 삶을 요구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그가 잘못 행동하면 하나님의 이미지가 왜곡되고 예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성도답게 행동하고 삶에서 예수님이 나타나게 하라. 그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린다. 사람들은 한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란 나쁜 편견 혹은 거룩한 편견을 가지기 쉽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한 성도는 고등학교 때 금요일 밤에 데이트를 하러 집을 떠날 때마다 어머니가 늘 이런 말을 했다. “얘야! 너는 네가 누구인지 항상 잊지 마라.” 그 말은 아들의 머리가 나빠서 이름과 집 주소를 잘 기억하란 말이 아니었다. 그 엄마는 아들이 데이트를 할 때 자신의 고귀한 가치를 잊지 않고 성도답게 행동하길 원했다. 그 어머니의 말은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도 들려주시는 음성이다. 그 음성을 기억하며 성도답게 주님의 빛을 드러내며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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