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본문말씀 : 사무엘하 3장 31-39절
31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가 32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33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이르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34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35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이르되 만일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모든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36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37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 38 왕이 그의 신복에게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 온유한 리더가 진짜 강자다 >
주후 642년에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영류왕과 100여명의 귀족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그때 왕의 시체를 토막 내어 시궁창에 버렸고 귀족들을 짓밟아 죽이는 잔인한 행동까지 했다. 백성들은 겁에 질려 바짝 엎드렸다. 그러면서 “와, 멋지다. 보스 기질이 있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속으로는 잔인무도한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주변 나라들은 더 비웃었다.
연개소문의 칼로 정쟁은 사라졌지만 그 후 생겨난 공포의 침묵은 정치의 효율성과 국가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연개소문은 군사와 전쟁 전술은 탁월했지만 인재 활용과 국가 경영 능력은 부족해서 경제가 어려워졌다. 그에게는 이성계처럼 이방원 같은 아들이나 정도전 같은 신하가 없어서 정치력 부재로 인해 민심 수습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런 자기 한계를 알고 칼 정치를 그만두고 싶어도 칼로 정권을 잡았기에 칼을 놓으면 자신이 칼을 맞으니까 계속 칼 정치를 하면서 국력은 점차 약해졌다.
더 큰 문제는 외교적인 고립이었다. 연개소문의 쿠데타 소문은 당나라에도 널리 퍼졌고 고구려의 실권자가 잔인하고 폭력적인 마왕처럼 소문나서 대외 문화 교류가 크게 위축되었고 무역상들조차 고구려와의 거래를 꺼려했다. 점차 대외무역 악화로 경제가 더 나빠지자 연개소문의 쿠데타를 속 시원하게 여긴 사람들조차 점차 돌아섰고 당나라를 물리칠 정도로 강했던 고구려의 국력은 더 약해졌다. 그런 민심 이반과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 투쟁으로 인한 내분으로 결국 고구려는 당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힘과 폭력이 아니다. 권력자가 힘과 폭력을 앞세워 대중을 겁박하며 정치하면 사회가 일사불란하게 더 발전하고 번성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또한 권력자가 힘을 과시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멋지게 여길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도 속으로는 그 폭력성을 비웃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저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소통하거나 상대하거나 교류하고 싶지 않다.”
고려 때 무신정변 후에도 비슷한 결과가 생겼다. 당시 왕은 허수아비였고 무신들이 서로를 죽이며 100년간 무신정권이 지속되었다. 당시 실권자들은 상대를 제압하는 싸움 전술은 가졌어도 사려와 지혜와 교양은 부족했고 국가 운영 능력은 더 부족했다. 게다가 힘으로 정권을 잡을 때 곧 따라오는 민심 이반을 틈타 몽골의 반복된 침략이 시달렸다. 그때도 지식수준과 문화수준은 크게 후퇴했고 고려의 국력도 급격히 쇠퇴했다. 힘에 의한 정치는 처음에는 시원하고 잘 굴러가는 것 같지만 금방 한계에 도달한다.
결혼 중매 얘기가 오갈 때는 대개 상대의 가정도 살핀다. 그때 부모가 무속 종교에 빠져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자녀의 혼사가 막힌다. 자녀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가 잘못된 길로 가면 수치와 불행은 자녀 몫이 된다. 혼사를 논할 때 가장 꺼려하는 가정은 상대 가장이 폭력적이라고 소문난 경우다. 가장의 폭력적인 이미지는 혼사의 논의조차 막는다. 그런 가정과 사돈이 되면 같이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장의 인격적인 이미지는 혼사 논의를 활발하게 만든다. 그런 가정과 사돈이 되면 같이 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힘을 앞세우는 폭력적인 사람으로 소문나면 그 국민과는 문화 교류나 무역거래도 하고 싶지 않고 국제결혼 대상으로도 삼고 싶지 않다. 같이 어울리면 같이 못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가 고립되고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민심 이반을 틈타 외세의 침공을 받는다. 결국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면 수치와 불행은 국민 몫이 된다. 리더가 인격적이냐 폭력적이냐 하는 문제는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리더가 남들에게 폭력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면 공동체는 큰 불행에 처한다.
다윗이 왜 훌륭한 인물이 되었는가? 그는 탁월한 싸움 실력을 가진 강한 용사였지만 따뜻하고 인격적인 사람이었고 특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강한 용사였지만 눈물도 흘릴 줄 알았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의를 위해 피와 눈물을 흘릴 줄 알았고 약자를 품어 주는 따뜻하고 인격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온유와 배려를 앞세운 리더십과 매력이 사울의 나라를 다윗의 나라로 만든 요소였다.
<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
사울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다윗 편과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 편으로 갈렸다가 점차 다윗 편은 강성해지고 이스보셋 편은 약해졌다. 다윗의 선한 리더십 때문이었다. 다윗의 삶이 주는 교훈으로서 리더의 복을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1. 진실
당시 다윗 세력이 점점 강성해지자 이스보셋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대세를 읽고 다윗에게 나라를 넘기려고 다윗을 방문했다. 그때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동생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으로 아브넬을 죽었다. 한참 민심을 얻던 다윗에게 아브넬의 죽음은 민심을 이반시킬 수 있었다. 그러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그 앞에서 애도하라고 했고 자신은 그의 상여를 따라갔다(31절). 그것은 다윗이 상주처럼 행동했다는 말로서 장례를 국장으로 치렀다는 뜻이다.
그때 다윗이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그 무덤 앞에서 소리를 높여 울자 백성들도 다 울었다(32절). 또한 아브넬을 위해 애가까지 만들어 낭독하자 백성들은 다시 슬퍼하며 울었다(33-34절). 그리고 석양에 백성들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했지만 다윗이 해 지기 전까지 금식하겠다고 했다(35절). 그러자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면서 그때야 비로소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일이 아닌 줄을 알았다(36-37절). 큰 참사가 생겨 애도할 일이 있으면 힘써 애도해야 민심을 얻는다.
당시 아브넬이 갑자기 죽자 일부 백성들은 다윗 왕을 의심했지만 왕의 진실한 애도가 그 의심을 불식시키고 오히려 백성들의 민심을 얻게 했다. 결국 다윗이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얻은 것은 논리적인 말이나 권모술수나 위선이 아닌 진실의 힘이었다. 진실하게 살면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고 위기는 기회가 된다. 기독교에서 예언자란 미래를 아는 사람의 의미보다 진실을 아는 사람의 의미에 가깝다.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고 진실을 따라 진실하게 행하는 사람이 복된 리더가 된다.
2. 지혜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울고 애가까지 짓고 금식까지 했다. 그때 다윗이 실제로 아브넬의 죽음을 아쉬워했지만 백성들의 민심을 잃지 않으려고 지혜롭게 행동한 측면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이 다윗 왕을 더 존경하게 만들었다. 그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구하라. 윽박지르며 강하게 밀어 붙이면 일시적으로 원하는 것은 얻어도 결국 그 반작용으로 나중에 화를 입고 삶의 지혜도 얻지 못한다.
어느 날 가뭄으로 도토리 수확이 줄자 원숭이 농장주가 말했다. “원숭이들아,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 원숭이들이 너무 적게 준다고 데모하자 농장주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도토리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 그 말을 듣고 원숭이들이 만족했다. 그 얘기에서 조삼모사(朝三暮四)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언뜻 보면 주인이 어리석고 순진한 원숭이들을 묘하게 가스라이팅한 것 같다. 그래도 원숭이들에게 윽박지르지 않고 지혜롭게 해결책을 찾으려던 주인의 모습만은 배울 필요가 있다.
가뭄 때에는 재화가 한정되어 누군가가 희생해야 문제를 해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쁘게 희생할 길을 찾고 똑같은 환경에서도 다른 마음으로 그 상황과 환경을 받아들일 방법을 찾아 팔로워를 지혜롭게 이끄는 것이 리더의 할 일이다. 그때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윽박지르며 강요하고 억지로 이해시키면서 끌고 가면 지혜가 깊어지지 않고 문제 해결도 멀어진다. 지혜를 구하고 찾고 지혜의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점차 지혜롭게 될 것이다.
3. 여백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인 군대장관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를 바로 제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에 맡겼다(38-39절). 개혁과 정의의 칼날을 휘둘러 잘못된 사람을 무조건 제거하면 인간의 정의가 늘 흠이 있기에 나중에는 사회적 분열이란 더 큰 손실이 생긴다. 그러므로 때로는 역사의 순리와 역사의 승리를 믿고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해 정의의 칼날을 휘두르려고만 하지 말고 기도의 손길을 모을 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가족처럼 가까울수록 결점도 잘 눈에 띈다. 그것을 즉시 없애려고 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냥 계속 놔두고 볼 수는 없기에 기도가 필요하다. 원수 같은 사람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그 문제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하게 처리해 주실 것이다. 혼자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뒷짐 지고 계시지만 기도하면서 여백을 남겨두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그 여백 중에 임하셔서 가장 멋진 역사를 만들어내실 것이다.
내가 남을 바로 처단하려고 하지 말고 여백의 마음으로 그를 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바로 처단하시지 않고 여백의 마음을 가지시고 오늘도 하루의 삶을 살게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남에게 별로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은 “끝까지 너를 인정하고 기대하고 사랑하고 신뢰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 하나님의 여백으로 인해 내가 오늘도 살아가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거침돌이 되는 사람에게 여백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그에게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나부터 더욱 복된 존재로 변화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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