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본문말씀 : 시편 102편 17-24절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2 그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23 그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며 내 날을 짧게 하셨도다 24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
경외란 경건한 두려움을 뜻한다.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은 세상에서 겪는 불안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최상의 도구다.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가?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신다(17절). 그래서 성도는 기도를 들어주신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힘써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 땅의 모든 일을 지금도 살피시며 갇힌 자의 탄식을 듣고 압제받는 자를 해방하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실 것이다(19-21절). 그런 역사를 보고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22절). 하나님은 성도의 사정을 굽어 살피시며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특히 연약할 때 기도하면 더욱 귀를 기울여 주신다. 때로는 자기 뜻대로 기도 응답이 안 되는 것도 응답이다.
식당을 하는 한 집사가 있었다. 장사가 되지 않아 식당을 팔려고 내놨는데 팔리지 않았다. 앞길이 막막했다.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않지?” 그때부터 식당이 팔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계속 식당이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다.
얼마 후, 한 신사가 찾아와 50명쯤 되는 직원 식사를 위탁하고 싶다고 하며 선금을 주고 갔다. 그 후 매일 50명이 고정적으로 식사하러 오자 식당이 늘 가득 찼다. 하나님께서 식당이 팔리지 않게 하는 대신 손님이 넘치게 함으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그런 역사를 체험하고 그는 식당이 팔리게 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가 가장 선한 모습으로 응답되도록 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시인의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며 그의 날을 짧게 하셨다(23절). 하나님이 시인에게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 시인은 병과 고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허락된 것이라고 믿고 중년에 자기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24절). 그래서 본 시편은 ‘중년의 기도 시편’이라고도 불린다.
중년이 되면 자기연민에 빠져 삶의 용기를 잃고 자신의 무능력과 무가치성을 느끼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많다. 그런 삶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자기 존재 가치를 확신하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지금까지 잘 이끌어주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고난을 잘 극복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약할 때 더욱 가까이 오셔서 강함을 주신다. 고난과 약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주어진 것임을 굳게 믿으라.
양은 길을 잘 잃기 때문에 목자 뒤에 꼭 붙어서 따라다녀야 한다. 그런데 가끔 보면 어떤 양은 습관적으로 목자 곁을 잘 이탈한다. 그러면 목자는 그 양의 다리를 막대기로 아프게 때려서 다리를 불편하게 한 후 우리에 둔다. 그 양의 안전을 위해서다. 그처럼 바른길을 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매가 있을 때도 있다. 그때 낙심하지 말고 그 매를 바르고 복된 길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매라고 믿으라.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해 허락된 것이다. 고난을 통해 자신의 연약성을 깨닫고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알면 신앙이 더 깊어지고 바른 길에서도 이탈하지 않게 된다.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버리려고 할 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요셉의 억울한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은 애굽의 총리로 가는 극적인 통로였다. 신실한 감사 신앙만 잃지 않으면 오늘의 손해는 내일의 유익으로 크게 부풀려진 상태로 돌아온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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