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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문제부터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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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길이 더 막힐 수 있다 >  인간은 다 약하다. 강하다는 사람도 다 약하다. 어떤 스턴트맨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세 번이나 떨어져 내리고 살아서 매스컴이 ‘죽음을 정복한 사나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가 뉴욕 시내를 걷다가 꼬마가 먹다 버린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세상에 아무도 자기 인생을 자신할 사람은 없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막히는 길을 만난다. 내가 잘해도 남이 막는다.  가끔 자동차 사고 때문에 도로가 꽉 막힌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남이 사고를 치면 내 길도 막힌다. 나이 많은 회사원들은 가끔 이런 소리를 듣는다. “아직 안 미쳤어요?” 위에서는 호시탐탐 자르려 하고 밑에서는 밀치고 올라오니 속상한 일을 많이 당한다. 그냥 다니자니 속이 썩고 안 다니자니 처자식이 운다. 앞길이 잘 안 보이니까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머리 빠른 사람들은 정상적인 길로 가면 안 되는 줄 알고 요령을 피우고 샛길을 찾는다. 그처럼 너도나도 샛길을 찾으니까 나중에는 샛길이 더 막힌다.  지금 곳곳에 길이 막혀 있다. 왜 길이 막히는가? 근본 원인은 죄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하고 좋은 사상을 발굴해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에게는 길이 없다. 공산주의도 처음에는 화려하게 등장했다. 산업혁명 후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리며 품값이 크게 떨어졌다. 근로자는 노예처럼 일해도 살기 힘들었고 조금만 불평하면 그냥 쫓겨났다. 마르크스는 그 모습을 보며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겠다고 공산주의를 주창했다.  그렇게 출발되었기에 겉으로 보면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인간미가 더 있어 보임으로 급속히 많은 사람들을 그 사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는 경제적 불행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죄 때문이다. 죄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도 행복을 줄 수 없고 공산주의도 행복을 줄 수 없고 인간이 만든 어떤...

말씀을 듣는 복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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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으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주님의 말씀과 뜻에 지나치게 상관하지 말고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성경은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나를 왜 이런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힐문하지 못한다고 했다(롬 9:20-21). 교회에 동냥하러 온 사람이 돈을 적게 준다고 따지고 화를 낸다면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처럼 어떤 일로 하나님께 불평하면 하나님도 기가 막히게 여기실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이 가장 공평하게 모든 상황을 허락하셨다고 믿고 감사하고 순종해야 한다.  모든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철저히 순종한다. 유독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인간만이 반항한다. 만약 사람이 자연만물처럼 100% 순종하면 성경에 나오는 무수한 기적이 내 기적이 될 수 있다. 돈 유무(有無)나 배경과 인맥 유무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 유무가 가장 큰 축복의 관건이다. 순종한다고 당장 역사가 일어나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수 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묵묵하게 나가면 하는 일마다 있는 곳마다 복된 역사가 나타난다. 2. 증인이 되려고 들으라  사도 요한은 자신이 요한복음을 기록했으면서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24절). 그처럼 자신을 죽여야 참된 증인이 된다. 증거인 되려면 말씀을 먼저 실천하라.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복 받고 형통한다는 구절에 형형색색으로 밑줄을 그어 놓았다. 진짜 복을 받으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구절들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무엇을 얻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 믿는다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얻으려고 하면 적이 많아지지만, 되려고 하면 자신만 이기면 된다. 내가 바로 되면 사는 길도 무수히 열린다.  신앙이란 ‘얻는 작업’이 아니라 ‘되는 작업’이다. 진짜 사는 길은 ‘많이 얻는 삶’에 있지 않고 말씀을 따라 ‘바로 되는 삶’에 있다. 내 뜻을 포기하고 말씀대...

말씀을 잘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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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과 부흥의 원천 >  성경 느헤미야 8장에는 워터게이트(수문) 앞 부흥사건이 나온다. 그 부흥의 원천은 하나님 말씀이었다. 느헤미야 8장 1절을 보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워터게이트 앞 광장에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성경만 읽는데 모든 백성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3절). 오늘날 그렇게 하면 아마 오전 8시만 넘어도 10%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말씀에 대한 목마른 갈증이 있었다. 그들은 서서 말씀을 들었다(7절). 거의 7시간을 서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말씀을 경청했고, 그 다음날에도 말씀을 듣기 위해 에스라 앞에 모였다(13절). 그처럼 말씀에 대한 갈증이 있는 곳에 부흥과 축복이 있다. 한 교회의 영적 수준과 한 영혼의 영성은 “말씀을 어떻게 받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때 에스라가 율법책을 펴자 모든 백성이 일어섰다(5절). 그리고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자 백성들은 “아멘! 아멘!”하고 화답했다. 그처럼 말씀에 아멘의 심령으로 화답하고 말씀의 권위를 높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만, 말씀을 우습게 알면 아무리 그럴듯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역사는 없다. 말씀을 높임으로 하나님을 높이면 나도 높임 받는다. 누가 내 말을 잘 들으면 “그가 나를 높여주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말을 잘 듣는 것은 인격을 높여주는 표시이듯이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표시다.  말씀은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양식으로 삼는 것이다. 비행기가 어떻게 나는지 몰라도 비행기를 믿고 타면 목적지까지 간다. 갈색 소가 푸른 풀을 먹고 어떻게 하얀 우유를 만드는지 그 원리는 몰라도 우유를 먹으면 그것이 내게 에너지가 된다. 그처럼 성경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이성보다 크고, 우주의 모든 비밀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 주셨기에 말씀을 높여 살기로 결심하면 그때부터 말씀은 능력의 원천이 된다. < 말씀을 ...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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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 인정해주라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을 다른 길로 가게 해도 너는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22절). 내 사명도 인식해야 하지만 남의 사명도 인정해주라는 뜻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어 창조된 존재다. 그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남을 인정해줄 때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다.  우월감을 버리라. 내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되 남의 것까지 내 구미에 맞춰 뜯어고치겠다고 하지 말라.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은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사람을 인정해주고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을 인정해주라. 엑셀형 사람도 필요하고 브레이크형 사람도 필요하다. 조용한 사람도 필요하고 요란한 사람도 필요하다. 내가 남처럼 될 필요도 없고 남을 나처럼 만들 필요도 없다. 남의 부족한 점이 보이면 내가 그 점을 메워주면 된다.  남을 인정해주고 나를 낮추는 겸손은 사람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아도 하나님께는 매우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자기 PR을 해야 뜬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남 PR을 해줄 때 더 뜨게 하신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여주면 낮아지고 손해인 것 같지만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말라.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도 그 속에 보석이 감추어져 있다. 고운 마음으로 남을 소중하게 보고 남의 장점을 기쁘게 인정해줄 때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이 따라온다.  남을 인정하되 사람을 바라보며 살지 말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살라. 주님께 ‘올인’하라. 자신을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던질 때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고 내 안에 숨겨진 보화가 드러나면서 놀라운 축복의 열매들이 맺힌다. 초본 식물인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 때문이다. 연약해 보이는 사람도 고난의 때를 주님 바라보고 잘 통과하면 그것이 마디가 되어 큰 인물로 자란다. 주님께 올인 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존재가 되면 누구보다 복된 사람이다....

복된 청지기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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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된 청지기가 되는 길 >  성도는 욕망을 잘 절제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돈과 권력을 평안과 평화의 도구로 쓰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많이 잃는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삶은 복을 잘 활용하지 못해 저주로 만드는 삶이고 제일 고독한 삶은 복을 나눠줄 곳이나 나눠줄 사람이 없는 삶이다.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잘못 사용하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때까지 돈을 벌려고 투자했던 시간은 어디서 보상받는가? 부자에게도 언젠가 고독한 순간이 찾아온다. 열심히 부를 쌓고 한숨을 돌릴 때쯤 다가오는 것은 이웃의 칭송보다 이웃의 시기다.  부를 지켜야 하는 고통도 크다. 신경 쓸 일이 많아 불면증이 생기기도 한다. 전도서 기자의 고백대로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지만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한다(전 5:12). 부를 지키는 고통보다 이웃의 시기 대상이 되는 고통은 더 크다. 결국 심한 피해의식으로 주변과 담을 쌓으면서 고독해진다. 어떻게 그 고독을 벗어나는가? 복을 나눔으로 이웃을 친구로 삼을 때다. 많은 소유보다 많은 친구가 소중하다. 결국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부자는 고독의 가능성을 잘 극복한 위대한 부자가 된다.  “얼마나 잘 버느냐?”보다 “얼마나 잘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의미 있게 쓸 줄 모르면서 돈을 버는 것은 탐욕이지만 의미 있게 쓰면서 돈을 버는 것은 소명이다. 그런 소명의식을 가지라. 참된 행복은 욕망의 충족보다 소명의 충족을 통해 온다.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명적인 목적을 이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복된 청지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맡은 사명을 잘 관리하라  본문의 청지기는 주인 대신 재산과 종을 관리하는 리더 종을 뜻한다. 그가 맡은 사명은 진실과 지혜로 주인의 가정을 잘 꾸리고 하위 종들을 관리하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이다. 그 일을 잘 감당한 청지기는 복이 있어서 ...

자기를 극복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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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극복하며 살라 >  인생은 바둑과 같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한번 졌다고 그만두면 바둑이 늘 수 없다. 한판 지면 다음 판에 이기면 된다. 실패가 있어도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라. 얼굴에 철판을 깔 때도 필요하듯이 마음에 철판을 깔 때도 필요하다. 시련과 상처가 있어도 “그래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라. 한 번의 실패로 나를 단정하지 말라. 내 마음을 붙잡으라.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내 안의 나’가 무너지지 않게 하소서!” 인생 최고의 적은 내 안에 있다. 적을 밖에서 찾으면 다 적이 된다. 배우자도 나를 힘들게 하는 적이 될 수 있다.  남 때문에 속상할 수는 있지만 적을 밖에서 찾지 말라.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하면 다 적이 될 수 있다. 남을 정복하는 능력보다 나를 정복하는 능력을 구하라. 원수는 배우자, 자녀, 부모, 시부모가 아니다. 진짜 원수는 나 자신이다.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를 바꾸려고 하라. 모세가 40년간 기도해도 바로는 변하지 않았다. 출애굽의 축복은 바로가 변해 얻은 것이 아니라 모세가 변해 얻은 것이다. 내가 변하면 저주가 축복이 되고 원수가 친구로 변한다.  한 목회자가 한때 “나사렛 예수!”하고 벌떡 넘어지게 했다가 어느 날부터 그런 목회를 포기했다. 일부 교인들은 “왜 목사님이 옛날처럼 능력을 보여주지 않나?”라고 불평했지만 넘어진 사람들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난 후에는 다시 옛날과 똑같이 행동하자 그 모습에 회의를 느껴 “내 생애에 다시는 그 짓을 안 한다.”고 결심했다.  마음의 변화가 중요하다. 능력이 있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조롱 대상이 된다. 반면에 마음이 변하면 “그 삶이 부럽다. 존경스럽다.”고 하며 보는 사람도 믿음을 추구한다. 능력보다 마음의 변화가 중요하다. 마음이 못된 사람이 능력 받으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한다. 성도의 가장 큰 과제는 자기를 극복하고 마음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 자신감을 ...

하나님을 아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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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듣고 깨달으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깨달으라고 하기 전에 먼저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다(1절).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왕족들에게도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정치 리더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서 백성들을 잘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순종은 잘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청력으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라. 청력으로 듣는 것은 hearing이고 마음으로 듣는 것은 listening이다. 리슨(listen)을 잘할 때 레슨(lesson, 교훈)을 얻는다.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듣고 리더의 말도 잘 듣고 서로의 말도 잘 들으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듣지 말고 존중하며 들으라.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도 무조건 듣지 말고 사랑하며 들으라. 공동체 영성이란 혼자만 소리를 내지 않고 남의 소리도 들으며 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알 때 하나님의 음성도 잘 들리고 하나님도 더 많이 알게 된다. 많이 말할수록 깨달음의 지혜는 줄어들고 많이 들을수록 깨달음의 지혜는 늘어난다. 입이 발달하면 자기 확장 능력이 커지면서 불화도 낳지만 귀가 발달하면 자기 극복 능력이 커지면서 조화를 낳는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열린 귀를 가지면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자기 극복 능력은 현저하게 커진다. 2. 죄를 고백하라  패역한 우상숭배자는 생명을 파괴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2절). 그 심판을 피하려고 죄악을 숨기고 선을 가장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죄를 숨길 수 없다(3절). 음란한 행위가 이스라엘의 회개를 막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된다(4절). 음란한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려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한다.  죄의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입구다. 고백을 막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