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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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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바 성도가 되라 >  꿈과 비전을 이루려면 두 종류의 사람이 필요하다. 앞서서 은사 역할을 하는 ‘멘토 같은 사람’과 뒤에서 후원자 역할을 하는 ‘바나바 같은 사람’이다. 바울과 같은 리더를 보면 바나바처럼 밀어주라. 바울과 바나바가 연합하면 거룩한 큰일이 이뤄진다. 바나바는 청년 사울의 가능성을 믿고 그를 후원해서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로 길러냈다. 바나바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렸기에 바울을 앞세우고 음지에서 기도하며 기쁨으로 섬겼다. 나를 죽이고 감추며 남을 내세워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닦은 사람이 바나바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함께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라. 그가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면 그에게 ‘위로의 아들’인 바나바가 되어주라. 회개의 열매란 위협하는 사람이 위로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포함한다. 바나바가 있으면 시들시들한 곳이 반짝반짝한 곳으로 변한다. 문제는 인생에서 바나바 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남을 살리는 길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남을 먹이는 삶이 나를 먹이는 삶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삶은 파멸적인 삶이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삶은 파괴적인 삶이다. “너 살고 나 살자.”는 삶은 지혜로운 삶이고 “너 살고 나 죽자.”는 삶은 헌신적인 삶이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고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나를 용서하는 것이다. 미움의 칼을 품고 나를 찌르며 살지 말고 말씀의 칼을 품고 나를 다듬으며 살라. 나를 다듬어 바나바처럼 남을 위로하고 살려주는 존재가 될 때 그를 통해 공동체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난다.  교회의 외형과 능력이 커지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교인의 내면과 마음이 커지는 것에 덜 관심을 두면 교회는 점차 병든다. 소외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주변인을 중심인으로 만드는 바나바 교회가 진짜 큰 교회다. 바나바처럼 음지에서 기도하고 헌신하는 성도가 섬김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참된 성도다. 바...

좋은 교회 리더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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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목사를 주의하라 >  요새 가짜 목사가 많다. 심지어는 이름까지 개명해 목사 행세를 한다. 한국의 장로교는 교파가 너무 많아 통제도 안 되고 어떤 교파는 교세를 불리려고 신학 공부도 제대로 안 한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남발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이 중요하지 공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가방끈이 길다고 목회를 잘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공부 과정을 생략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과정을 생략하고 목사 타이틀을 얻으면 자기 삶의 틀을 따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목회할 것이다. 그는 진실한 삶을 가르쳐 진실한 축복으로 이끌기보다 헛된 말과 거짓말로 축복 환상을 조장하면서 심지어는 영혼과 돈과 집을 빼앗아 자기 재산을 불리고 자기 이름을 높이고 자기 왕국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결국 정상적인 신학 과정을 이수하라는 말은 학력이 높아야 한다는 말보다는 최소한의 기본은 지키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말로 영성을 과시하지만 영성은 말이 아닌 삶이 보여준다. 교인들이 대개 착하니까 말로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이 삐치지 않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그의 영성 자랑을 받아준다. 알고 보면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영성 자랑을 받아주는 사람이 더 이해심과 영성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영성을 자랑하면 결국 다른 교인들이 참다못해 그를 멀리하고 나중에는 말도 잘 섞지 않으려고 한다.  강자의 권력 강화를 위해 조작된 불의한 편견과 따돌림으로 혹은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소외된 사람은 힘써 살펴주라. 다만 자기 영성 자랑으로 소외를 자초한 사람은 멀리서 지켜볼 필요도 있다. 깨닫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자초한 소외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을 성찰하며 생각한다. “내가 영성을 자랑하니까 남의 인정을 더 못 받는구나. 앞으로는 언행을 주의하고 더 겸손하게 음지에서 선행을 실천하면서 성도답게 살자.” 그러면서 점차 사람이 되고 성도...

평화의 사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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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계산적으로 살라 >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마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탔다(14절). 어미 나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태복음 21장 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했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그래서 제자들이 나귀와 나귀 새끼를 함께 끌고 왔다(마 21:7). 그때 예수님 앞에 어미 나귀와 어린 나귀가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탔다.  사람과 짐을 태우는데 어미 나귀는 경험이 많은 프로지만 어린 나귀는 아마추어다.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고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순수하고 깨끗한 것 하나 뿐이다. 그러면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어미 나귀를 타야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셨다. 그 말은 “주님의 축복은 경험 많고 돈을 목적으로 일하는 프로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암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맡은 분야에서 프로 이상의 실력은 갖추되 아마추어리즘을 잃지 말라.  하나님은 순수한 아마추어를 돈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보다 더 축복하신다. 가끔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부정적인 말을 한다. “돈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지금 그런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연약하고 경험 없는 어린 나귀도 주가 쓰시겠다고 하니 쓰임 받았듯이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쓰임 받는다.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 꼭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주어진 현재 여건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만 잘한다고 쓰임 받지는 않는다. 쓰임 받으려면 십자가의 희생을 앞세워야 한다. 희생이 없는 축복은 가치가 없고 겉으로 보기에는 축복같이 보여도 진짜 축복이 아니다. 희생이란 영광스런 자리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없으면 잠깐은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손해가 되며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있으면 잠깐은 손해가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이...

Make Us One - The Grace Thril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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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us one heart Make us one mind Make us one, let your will be done Make us one flame, to proclaim your name Make us one, make us one Bind us together with your bond of unity Cause the word says we are brothers Let us be one lord even as you and the father are one So the world can see inside us Make us one heart Make us one mind Make us one, let your will be done make us one flame, to proclaim your name Make us one, make us one Let us be united See each other through your eyes May we forgive our brothers We see you risen No longer on an old rugged cross Lord, may your glory fill us Make us one heart Make us one mind Make us one, let your will be done Make us one flame, to proclaim your name Make us one, make us one Oh Lord God Father of the universe, Creater of heaven and earth Look down at us your people Living in a world torn by war and strive Reach down your hand lord, and touch the people of all nations unit us lord and make us one Make us one heart Make us...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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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문제도 주님께 맡기라 >  본문의 일은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의 나사로가 있는 곳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할 때 일어났다(1-2절). 그때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했다(3절). 그 향유는 3백 데나리온의 값이 나가는 비싼 향유였다(5절). 당시 노동자 1일 품삯이 1데나리온이었기에 300데나리온은 노동자 300일 품삯이었다.  보통 사람은 마리아처럼 결혼 밑천을 다 쓰면 “어떻게 결혼하지?” 하는 걱정이 들겠지만 마리아는 경제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더욱 큰 축복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헌신을 했다. 경제 문제에 대한 믿음은 믿음의 진실성을 시험하는 기초 관문과도 같다. 그 시험을 잘 통과하라. 세상의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하늘의 선물에 집중하는 삶은 성도의 가장 기초적인 생활 원리 중 하나다.  해가 뜨면 곧 해가 지고 해가 지면 곧 해가 뜬다. 잃을 때도 시간이 지나면 얻을 때가 오지만 그때 믿음을 잃지 않으면 얻을 때는 더 신속히 찾아온다. 불평과 한탄과 상처 가운데 신음만 하며 지내지 말라. 성도는 얼마든지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내 계획보다 더 멋지고 찬란하고 정교하다. 하나님께 맡길 때는 물질적인 문제도 다부진 믿음으로 잘 맡기라.  성도들은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세요.”라고 하면 좋아하고 “여러분의 모든 계획과 미래도 하나님께 맡기세요.”라고 해도 좋아한다. 또한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세요.”라고 해도 좋아하고 “여러분의 힘든 문제도 맡기세요.”라고 해도 좋아한다. 사람들이 가장 잘 맡기지 못하는 문제가 경제 문제다. 그래서 나눔과 선교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경제 문제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믿음과 행복의 차원이 깊어진다. <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라 > ...

때를 아는 삶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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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하는 삶의 축복 >  성공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기적은 놀라운 성공이다. 그 기적 후에 예수님께 다가온 것은 영광의 칭송이 아닌 죽음의 위협이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늘 밝지도 않고 늘 어둡지도 않다. 인생은 끊임없이 명암이 교차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명암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도 있고 빛이 선명하면 그림자로 뚜렷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명암이 교차하는 인생에서 승리하려면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분복에 감사하며 살라. 또한 이 땅에서의 삶과 더불어 천국의 영원한 삶을 보증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런 기본적이고 소박한 감사 속에 참된 행복이 주어진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새롭게 할 수는 있다. 시간을 새롭게 해서 인생을 새롭게 만들려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결심하고 실천하면 된다. 그때부터 빛바랜 인생이 빛나는 인생으로 변한다.  인생을 돌아볼 때마다 보람 있고 알차게 살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감사가 넘쳤을 때이고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느낌이 들 때는 불평이 넘쳤을 때다. 아쉽고 후회되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될 때는 언제인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할 때다. 감사는 영혼이 건강한 표식이다. 그 표식이 계속 나타나면 얼굴도 신비한 미소가 깃든 얼굴이 된다.  감사하는 삶은 어렵지 않다. 비싼 대가를 치러야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저렴하게 고가의 행복을 얻어내게 하는 것이 감사다. 대단한 감사거리가 있어야 감사하지 말고 웬만한 일로도 감사하라. 값싸게 맛있는 식사 한 끼 한 것도 감사하고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소수의 친구가 있는 것도 감사하고 내 약점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내 장점이 있는 것도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는 능력은 최고의 능력이다. 감사할 때 나도 좋게...

Wynonna Judd - Live with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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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n a lot of trouble At my door I've never known a day when I ain't been poor But I'm gonna live With Jesus in the end Hard times Is all I see I've lost the ones That are dear to me But I'm gonna live With Jesus in the end I'm gonna live I'm gonna live I'm gonna live I'm gonna live I'm gonna live With Jesus in the end These poor bones Are tired and old Meeting my savior Redeem my soul ‘Cause I'm gonna live With Jesus I'm gonna live I'm gonna live With Jesus I'm gonna live I'm gonna live With Jesus in the end 작사: Paul Kenner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