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주님만 바라보라

 

[ 지거 쾨더 : 그가 우리집 담 밖에 서 있다 ]


본문말씀 : 골로새서 4장 16-18절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좋은 동역자가 되라 >

 좋은 동역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말씀을 나누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읽게 하고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 즉 <라오디게아서>를 골로새 교인들도 읽게 했다(16절). <라오디게아서>는 어디에 있는가? <골로새서>와 쌍둥이 서신이라고 여겨지는 <에베소서>가 라오디게아서란 주장도 있지만 그 실체는 아무도 모른다. 그처럼 형제 교회 교인들이 서로 편지를 돌려가며 읽고 말씀을 나누면서 당시의 극심한 환난과 핍박 및 이단사상을 이겨낼 힘을 얻고 동역자 의식도 깊어졌다.

 둘째, 책임을 다하라. 본문 17절의 아킵보는 골로새교회의 직분자였다. 어떤 직분자였는가? 빌레몬서 1장 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그 구절에서 ‘병사 된 아킵보’란 표현을 보면 아킵보는 골로새 교회의 보조사역자였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아킵보에게 보조 사역자의 직분을 책임적으로 잘 감당하라고 했다. 그처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책임적으로 잘 감당하는 사람이 결국 책임적인 자리로 올라서게 되고 리더의 신실한 동역자가 된다.

 셋째, 남을 생각해주라. 사도 바울이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18절).”라고 한 것에는 복합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다. 즉 자신이 왜 매였는지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도전받아 더욱 바른 신앙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처럼 리더의 깊은 의도를 생각하고 스스로 알아서 이해해주고 따라주는 것처럼 좋은 동역은 없다. 자기 이익을 잘 찾아먹는 약삭빠른 눈치는 없어도 되지만 남을 생각해주고 남의 마음을 읽고 그에게 기쁨을 주는 거룩한 눈치는 있어야 된다.

<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 >

 많은 삶은 인간관계 속에서 이뤄지기에 좋은 비전 동역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너무 동역자만 바라보고 의지하면 안 된다.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기대하고 의지하면 그만큼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좋은 동역자가 되도록 힘쓰고 좋은 동역자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자신의 가장 위대한 평생 동역자로 여기고 주님만 바라보면서 비전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바른 신앙의 기초는 ‘주님과의 관계’다. 사람은 각자 외로운 영혼으로 주님과 대면하는 것이다. 즉 누구도 주님과의 관계에서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과 ‘나’사이에 중간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존재를 더 확실히 느낄 것처럼 오해한다. 그러나 신앙을 격려하고 비전을 나누는 동역자는 필요하지만 그 동역자라도 주님과 자신 사이에 끼어들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직선적인 직접 관계다.

 거짓 종교는 개인을 무력화시켜 효과적으로 지배하려고 한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려는 자아의식이 없이 종교를 가지면 남의 이용만 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뚜렷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라. 남이 말하는 찬란한 유토피아에 마음을 빼앗길 필요도 없고 남이 보여주는 기적과 은사와 능력에 지나치게 감동할 필요도 없다. 감동해야 할 대상은 기적과 은사와 능력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이다.

 사람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자유를 두려워한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져야 할 책임은 지기 싫어한다. 대중에게 힘이 없으면 독재자의 수단에 넘어가기에 대중이 주체가 되려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다. 문제는 대중들이 더 좋은 사회를 원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강력한 지도자가 대신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민주적인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능력과 기적을 보여준다는 목자의 손길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스스로 성경을 펼치지도 않는 성도들이 많다. 그런 지도자 의지형 본성을 거부하고 책임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힘쓰라. 좋은 동역자의 존재가 중요하긴 하지만 아무리 좋은 동역자라도 그 동역자를 지나치게 의지하면 안 된다. 성도가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영원한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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