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복을 얻는 길

 

[ 장욱진 작가 : 자화상 ]



본문말씀 : 마가복음 2장 13-17절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복의 근원이 되는 복 >

 필자는 미국 신대원에 유학을 갈 때 선교사의 꿈을 품고 갔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전방 선교사가 되는 것보다 문서 선교가 필자에게 맞는 달란트란 확신이 생겼다. 결국 귀국해서 교회를 개척하고 성경중심적인 강해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기에 그 글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를 이루고 많은 사람에게 선교 비전을 심는데 일조할 수 있었다. 그 열매가 <월간새벽기도> 사역으로 나타났다. 그런 역사가 없었다면 사역의 행복과 보람이 적었을 것이다.

 요즘 영혼 한 명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런 현실을 극복하도록 선한 영향력을 키우라. 현재의 부족함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 말라. 크게 쓰임 받은 인물 성도도 처음 상당 기간은 엉터리 신자였던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성령 충만을 받으면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멋지게 쓰임 받는다. 기독교적인 성령 충만의 핵심 특징은 화려한 은사가 많아지는 것이나 신비한 감동에 사로잡히는 것만이 아니다. 성도답게 살면서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와 세계 선교를 이루어 내어 말로 자랑하기보다 열매로 증거하는 것이 참된 성령 충만이다.

 어느 날 한 형제가 간증 집회에 가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방언이 터지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 후 그는 늘 성령 충만을 외치며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믿음을 버렸다. 말로만 성령 충만을 외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감정으로만 성령 충만을 표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고 교회를 섬기며 살고 선교를 목표로 살려고 하라.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고 하지 않고 땅 끝까지 증인의 삶을 산다고 했다. 성령 충만의 핵심 목표는 능력 받는 것이 아니라 증인이 되어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와 세계 선교에 일조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물질이 많아지고 위치가 높아지기보다 오히려 손해를 각오하고 심지어는 죽기를 각오한다. 그처럼 성령으로 충만하면 잃기를 각오하지만 더 얻고 죽기를 각오하지만 더 살면서 단순히 복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복의 근원이 되는 복까지 얻는다.

< 제자의 복을 얻는 길 >

 본문에는 예수님이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레위는 마태복음을 쓴 마태의 본명이다. 당시에 세리는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치는 관원으로서 유대인에게는 동족을 착취하는 반역자이자 죄인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런 세리 마태를 예수님이 제자로 삼는 본문이 주는 교훈으로써 제자의 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예수님을 따르라

 당시 세리 레위는 손가락질 받고 사는 것을 운명처럼 여겼을 텐데 그에게 뜻밖의 일이 생겼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 부르심으로 인해 그의 욕된 운명은 복된 운명으로 180도 바뀌었다. 세리 마태는 제자가 될 자격이 전혀 없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처럼 자격이 있어서 성도나 제자로 부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하나님은 종종 어떤 일에 자격도 없고 합당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부르시는가? 특별한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믿고 부르심에 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은 예수님께 복종하라는 말이다. 복종(服從)이란 말에서 ‘복’ 자는 한자로 ‘의복’을 뜻한다. 몸에 딱 붙은 의복처럼 누군가에게 딱 붙어서 따라가는 것이 복종이다. 즉 주인의 의복처럼 살겠다는 말이 복종한다는 말의 뜻이다. 의복은 주인의 수치를 가려주고 주인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막아주며 주인을 멋지게 만들어 준다. 자신을 비워내고 주인에게 딱 달라붙어서 주인을 위해 사는 것이 참된 복종이다. 복종(服從)하면 복종(福從)한다. 즉 의복처럼 따르면 복이 따른다.

 복종의 복을 생각하면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특히 한번 선택한 리더의 말을 무조건 믿고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비족은 화려한 말솜씨와 춤 솜씨와 외모로 외롭고 허전한 사람에게 접근해 마음을 뺏은 후 돈과 몸을 뺏는다. 그처럼 영적 제비족의 사랑발린 말과 기적 자랑과 은사 과시와 선택 약속에 미혹되지 말고 신중히 바른 교회와 바른 리더를 선택하라. 그렇게 해서 선택한 후에는 힘써 복종하라. 잘 복종할 때 제자의 복을 얻는다.

2. 모든 것을 버리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마태는 즉시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 본문 14절에는 그냥 “일어나 따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5장 2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모아둔 재산, 세상적인 인간관계, 세리 직책 등을 다 버렸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드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지만(눅 5:11) 세리 마태의 경우는 어부 베드로의 경우와는 버림의 강도가 다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다 안 되면 다시 어부 생활로 돌아갈 수 있지만 마태는 다시 세리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시 세리는 비록 욕은 먹어도 많은 사람이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를 포기해야 했기에 굳은 각오와 용기가 필요했지만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했다. 그렇게 다 버리려고 할 때 제자의 복을 얻는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계명을 잘 지킨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다. 그처럼 자신의 소유를 연대와 공감과 나눔의 통로로 활용하라. 많은 재산, 좋은 가문, 높은 지위 등은 오히려 영생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땅의 것을 잘 내려놓아야 하늘의 것을 얻는다. 편한 곳에서 안주해 머물러 있으면 돌파나 비약을 하지 못한다. ‘내려놓는 삶’의 훈련을 위해 힘써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살라.

3. 서로 사랑하며 살라

 마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곧 동료 세리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게 하려고 집에서 잔치를 벌이고 그들을 부른 후 그곳에 예수님 일행을 초청했다(15절). 그때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놀라운 일을 두고 잔칫상에 재를 뿌린 존재가 있었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가 베푼 잔치에 참석한 것을 보고 말했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16절).”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7절).” 그 말은 다 같은 죄인으로서 서로 사랑하면서 최대한 이해하고 덮어 주며 살라는 말씀이다. 찬송가 494장 2절 가사처럼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라는 자세로 살면서 남의 입장을 힘써 이해하려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단호하게 의를 세울 줄 아는 의로운 사랑을 펼쳐야 부작용 없는 복된 열매가 맺힌다.

 적극적인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을 볼 때 “저렇게 소극적으로 살면 어떻게 비전을 이루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적극적으로 사업 영역을 뚫어간 경험이 있는 사업가의 눈으로 보면 교회와 교회 리더의 변화가 너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며 질풍처럼 앞만 바라보고 사업해도 교회에서는 부드럽게 천천히 주위를 살피면서 사랑하라. 주중에 세상에서 사업할 때의 사업 버전을 주일에 교회에서 사랑할 때의 사랑 버전으로 지혜롭게 바꿀 줄 아는 성도가 교회를 잘 섬기는 제자의 복을 얻는다.

< 사명감을 가지고 살라 >

 레위는 나중에 사도 마태가 된다. 레위는 본명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인 마태란 이름은 사도명으로 추정된다. 레위는 무명의 세리였지만 예수님을 따르면서 유명한 사도가 되었고 그의 책은 신약성경의 맨 앞을 장식하는 마태복음이 되었다. 그런 결과를 보면 신앙생활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고 영혼 구원에 나서는 사명감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새롭게 깨닫는다.

 어느 날 새로 사업을 시작한 성도가 말했다. “목사님에게 주신 문서 선교의 비전을 뒷받침하려고 두려움도 있지만 담대하게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더 내려갈 것이 없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감이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고 감당한 사람에게 예외 없이 있었던 것은 바로 사명감이다. 단순히 복 받는 것으로 머물지 말고 복의 근원이 되겠다는 사명감을 잃지 말라. 그 사명감이 나를 비틀거리지 않게 하고 바른 길로 끈기 있게 가게 해 준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신 분이다. 아브라함과 마태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살면 복의 근원이 되고 참된 인물 제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끝내주게 밀어 주실 것이다. 아직 눈앞에 보이는 숫자적인 성장의 복이 크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숫자로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해도 교회에서는 숫자에서 복을 찾지 말라. 그저 사명을 따라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숫자적인 복도 따라올 것이다. 늘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해서 열심히 살아감으로 제자의 복을 얻고 복의 근원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Prayer 6

Close to Thee (Thou My Everlasting Portion)

Lynda Randle - God On the 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