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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길을 따르라 Follow God'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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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개 1:5) The Lord Almighty says: “Give careful thought to your ways.” [ HAGGAI 1:5 ] ... 켄은 같은 건물에 사는 이주 노동자들을 기피했습니다. 자기와는 너무나 다른 그들의 습관과 생활 방식이 그에게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하던 중, 한가지 생각이 켄의 마음에 파고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몇 년째 너와 이웃인데 너는 한 번도 복음을 전한 적이 없구나. 그 사람들에 대한 너의 태도를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 They’ve been your neighbors for years, yet not once have you shared the gospel with them. Think carefully about your attitude towards them. 성경은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개 1:7)라고 경고하신 것을 기록합니다. 바빌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매”(에스라 1:1) 성전 재건을 명령하고 비용을 대도록 만드셨습니다(2-4절). 그러나 그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은 후 반대가 커졌고(4:1-5) 공사는 14년 동안 지연되었습니다. Scripture tells us of when God confronted the Israelites with a similar warning: “Give careful thought to your ways” (HAGGAI 1:7). After their captivity in Babylon, His people returned to Jerusalem, tasked to rebuild the temple. God had “moved the heart of Cyrus king of Persia” ...

변장된 기도 Prayer In Disg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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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욥기 19:6) God has wronged me and drawn his net around me. [ JOB 19:6 ] ...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겪은 엘리 비젤은 믿음을 잃었습니다. 자신과 수많은 사람들이 겪은 악에 대해 생각하며 비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비의 하나님, 대체 어디에 계셨습니까? 저는 어릴 때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는 모든 것을 기대했습니다.” After the horrors of Auschwitz, Elie Wiesel lost his faith. “Where were you, God of kindness?” he asked, recalling the evil he and others suffered. “In my childhood I did not expect much from human beings. But I expected everything from you.” 그러나 비젤은 나중에 자신의 믿음이 결코 자신을 떠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어느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때 하나님께 분노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건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대상에게 분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And yet, Wiesel realized later that his faith had never really left him. “It is because I believed in God that I was angry at God,” he told a journalist, “and still am.” You don’t get angry at someone you don’t believe exists. 하나님께 화를 낸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성경의 인물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께서 나를 속이셨다”(20:7, 새번역)고 외쳤고, 다윗은 “나를 영원히 잊으...

하나님의 시야 안에서 In God's Line Of 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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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8) The Lord will watch over your coming and going both now and forevermore. [ PSALM 121:8 ] ... 트리나는 매진된 공연의 무료입장권을 얻어 성경에 꽂아 두었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부엌 찬장을 정신없이 뒤지는 모습을 아들이 보았습니다. 그녀가 성경책을 잃어버렸다고 설명하자 아들은 왜 찬장에서 그걸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행사가 30분 후에 시작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웃으며 “숨 좀 돌려요, 엄마. 포모 증후군(기회를 놓칠까 하는 두려움) 같네요”라고 말 했습니다. 엄마가 웃었습니다. 아들도 함께 찾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그가 성경책을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거 차에 두고 내렸네.” 예상치 못한 축복이나, 큰 휴식, 혹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누리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즐거움에 대한 열망은 그것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부하시거나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시편 121:2)는 우리를 항상 보고 계시고 주무시지도 않는 우리의 공급자이시며 보호자이십니다(3-7절). 그래서 우리는 우회와 지연과 심지어 놓친 기회에 대해서도 초조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8절) 지켜주실 것입니다. While it’s not wrong to enjoy unexpected blessings, big breaks, or once-in-a-lifetime opportunities, a desire for enjoyment can easily turn into a fear of missing out. We can even be tempted to think God holds out on us or lose...

순종하며 잠잠히 Yielded And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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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예레미야 18:4) The potter formed it into another pot, shaping it as seemed best to him. [ JEREMIAH 18:4 ] ... 아델라이드 폴라드라는 인물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사실은 그 점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겸손한 종이었던 그 여성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델라이드는 마흔 살 때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나가라는 강한 부름을 느꼈지만 문이 막혀 크게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예레미야 18:6)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아델라이드는 후에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이라는 찬송의 가사를 썼습니다. Later, she penned a hymn with these lyrics: “Thou art the potter, I am the clay.” 예레미야에 나오는 이 비유는 오늘날에도 우리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4절).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그분의 목적에 맞게 다시 빚으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다른 모양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6절). The image in Jeremiah has much to speak into our lives today: “The pot he was shaping from the clay was marred in his hands; so the potter formed it into another pot, shaping it as seemed best to him” (V. 4). This is a picture of ...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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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호밀밭의파수꾼  #TheCatcherInTheRye #JD샐린저  #제롬데이비드샐린저  #JD_Salinger #옮긴이_정영목  #펴낸곳_민음사 고전. 아니, "문학전집 속 책들"이라 할까? 그 책들은 내가 읽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하진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내용을 잘 아는 책들이다. 물론, 내용이 뒤죽박죽 섞인채로 기억되고 있는 것도 있다. 이책. 호밀밭의 파수꾼. 책 정리하다 추억에 붙들려 책 정리를 그만둔 핑계가 됐다. (요즘 책장의 읽지 않은 책 - 주로 아내와 아들의 책 -, 읽다만 책 - 주로 잘난척하려고 산 책 - 들을 다 읽자는 투지의 발원도 됐다.) 예나 지금이나, 이 책의 주인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해를 못하겠다. "얘, 왜 이러는거야!"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경험의 결여"로 볼 수 있겠다. 그때는 '결여'가 당연한 나이이고, '나'를 넘어 선 '사회'는 약간의 막막한 두려움? 지금은? 너무 무난한 주변인의 삶을 살아 온 편협함? 성장통? 그것도 여전히 이해를 못한다. 성장통을 이해 못한다기보다 주인공의 통증의 발현 또는 발산의 방식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위선? 속물? 사회 속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전함.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어느 때 펼치든, 그때의 그날, 그순간을 보여주는 거울. 그 속의 여전한 내 모습. "아! 내가 그랬구나!!" 지난 그 때의 이해, 그 순간의 나에 대한 위로와 함께 나도 그때의 시간을 현재 지나가는 어린 영혼들의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다짐도 한다. 역시 이 책은 나이들어서 보는 게 더 좋다. 마지막, 번역!!! 빌린 옷을 서툴게 껴입은 모습이다. - 욕심 난 문장들 나는 어떤 작별의 기분을 느껴 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떠나는 줄도 모르고 여러 학교와 장소를 떠나 왔다는 ...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How Animals Gr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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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동물은어떻게슬퍼하는가  #HowAnimalsGrieve #바버라J킹  #BarbaraJKing #옮긴이_정아영  #펴낸곳_서해문집 나는 #반려인 이다. 정확히는 해피(#치와와), 토리(#토이푸들) 두 아이의 아빠다. 아이라 하지만 두 아이 모두 #노견 이다. '노견'이란 단어가 주는 뭉클함은 반려인들은 알 것이다. 오랜 세월 아이들과 함께 했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음 깊이를 더 해 줬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그만큼, 딱 그정도의 경험만큼만 감정을 느끼고 이해한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나는, 동물들도 "슬퍼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동물에게도 "사랑"이 있다고 확신한다. 동물의 감정, 더 나아가 피조물들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인정 속에는 내가 나의 반려들을 "의인화"한다는 인정과 또 그만큼 협소할 수 있다는 인정도 포함된다. 이 책은 그 "의인화"를 경계하며, 동물들의 죽음에 대한 "일반적 반응"과 "특별한 반응"에 대한 사례와 연구 내용, 견해를 전한다. 나아가 피조물로서의 결국인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동물과의 관계 이야기 중에서 보기 힘든 - 인간의 우월이 아닌 같은 피조물로서의 - 균형감 있는 책이다. 좋다. - 욕심 난 문장들 염소의 생각과 감정도 생각과 감정이다. 바로 우리가 그러하듯이 동물의 슬픔은 동물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지표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면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어쩌면 다른 동물들도 죽음의 돌이킬 수 없는 최종성에 대한 관념을 지녔을지 모른다. 슬픔은 두 동물이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쏟고, 나아가 상대의 존재가 공기처럼 필수불가결하다는 가슴의 확신에 따라 서로 사랑할 때, 피어난다. 사회적 경험의 결여로 동료들과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이끌려면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 전혀 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