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책


#호밀밭의파수꾼  #TheCatcherInTheRye


#JD샐린저  #제롬데이비드샐린저  #JD_Salinger


#옮긴이_정영목  #펴낸곳_민음사



고전.

아니, "문학전집 속 책들"이라 할까?

그 책들은 내가 읽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하진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내용을 잘 아는 책들이다.

물론, 내용이 뒤죽박죽 섞인채로 기억되고 있는 것도 있다.


이책. 호밀밭의 파수꾼.

책 정리하다 추억에 붙들려 책 정리를 그만둔 핑계가 됐다.

(요즘 책장의 읽지 않은 책 - 주로 아내와 아들의 책 -, 읽다만 책 - 주로 잘난척하려고 산 책 - 들을 다 읽자는 투지의 발원도 됐다.)


예나 지금이나, 이 책의 주인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해를 못하겠다.

"얘, 왜 이러는거야!"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경험의 결여"로 볼 수 있겠다.

그때는 '결여'가 당연한 나이이고, '나'를 넘어 선 '사회'는 약간의 막막한 두려움?


지금은?

너무 무난한 주변인의 삶을 살아 온 편협함?


성장통?

그것도 여전히 이해를 못한다.

성장통을 이해 못한다기보다 주인공의 통증의 발현 또는 발산의 방식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위선? 속물?

사회 속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전함.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어느 때 펼치든,

그때의 그날, 그순간을 보여주는 거울.

그 속의 여전한 내 모습.


"아! 내가 그랬구나!!"

지난 그 때의 이해, 그 순간의 나에 대한 위로와 함께

나도 그때의 시간을 현재 지나가는 어린 영혼들의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다짐도 한다.


역시 이 책은 나이들어서 보는 게 더 좋다.


마지막, 번역!!!

빌린 옷을 서툴게 껴입은 모습이다.



- 욕심 난 문장들


나는 어떤 작별의 기분을 느껴 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떠나는 줄도 모르고 여러 학교와 장소를 떠나 왔다는 거다. 그게 싫다. 슬픈 작별이든 나쁜 작별이든 상관 없으니 어떤 곳을 떠날 때 내가 그곳을 떠난다는 건 알고 싶다. 그걸 모르면 기분이 훨씬 더럽다.


사람들은 늘 뭔가가 완전히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젠장 상관없다.


내 말은 주로 졸업 앨범 유형의 잘생긴 녀석이었다는 거다.


나는 말했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하려면 그럴 기분이어야 한다.


모든 멍청이는 누가 멍청이라고 부르면 싫어한다.


거기에서는 늘 웃기는 악취가 났다.


어떤 사람에게는 농담을 하면 안 된다. 설사 농담을 던져 마땅한 사람이라 해도.


우리는 늘 만났다. 꼭 섹스쪽으로 발달해야만 어떤 여자를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어머니는 심지어 제인이 예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그 애의 생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다. 그뿐이다.


피아노 하나는 정말 잘 친다. 너무 잘 쳐서 거의 촌스러울 정도다.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웃기게 생겼고, 따라서 짐작건대 여자는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못생긴 여자애는 고달프다.


로비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오천만 년 전에 꺼진 시가 냄새가 났다.


기도를 하고 싶을 때는 늘 할 수가 없다.


나는 예수가 제자를 뽑았다는 걸 알지만, 또 아무렇게나 뽑았다는 것도 안다고 말했다.


내가 다닌 모든 학교에 있던 성직자들, 그들은 모두 설교를 시작할 때면 독실한 신자 목소리를 냈다. 맙소사, 정말 싫었다. 도대체 왜 자기 타고난 목소리로 말을 하지 못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예를들어 녀석은 ~ , 내 여행 가방을 두고 ~ 너무 새거고 부르주아적인 거라고 계속 떠들었다. 그게 녀석이 빌어먹을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내가 가진 모든 건 겁나 부르주아적이었다. 심지어 내 만년필도 부르주아적이었다. 늘 빌려쓰면서도 어쨌든 그건 부르주아적이었다.


빌어먹을 돈. 그건 늘 사람을 겁나 우울하게 만들고야 만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것은 늘 바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 유일하게 달라지는 건 우리다. ~ 내 말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다를 거란 뜻이다. - 내가 하려는 말을 설명할 수가 없다. 설명할 수 있다해도 그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걸으면서 나는 계속 그 모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걸 너무 잘하면, 좀 시간이 지나다보면, 조심하지 않을 경우, 과시하게 된다. 그럼 그때는 전만큼 잘하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뽐낼 공간을 확보하는 그런 종류의 가식남


아주 가식적인 아이비리그 목소리


해는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온다.


알리, 나 사라지게 놔 두지 마.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느냐는 상관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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