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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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창 #TedChiang
#옮긴이_김상훈 #펴낸곳_엘리
내 SNS의 이 책 소개 글을 보면
"무조건 읽어야 할 8 편의 단편"
"읽고 난 후 명상을 하게 만드는 SF" 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그렇다.
작가의 첫 번째 단편 모음집이라는 상징 뿐만 아니라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는 우주 속의 내게로 합쳐진다.
작가의 창작 시간들이 우주의 넘어 내게로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SF는 보통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며, 그 날개를 펼친 주인공은 곧 나이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상상이나 공상을 넘어 '명상'을 이끌어 내더라.
우리 속의 나,
세계 속의 나,
우주 안의 나,
다시금 돌아 와, 내 속의 나를 보게 되더라.
- 욕심 난 문장들
○ 바빌론의 탑
우리가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건 야훼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살아왔고, 우리 조상들도 ~ . 우리 만큼이나 의로운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혹한 벌을 내릴리가 없어.
우리가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목적을 위해 일해 온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현명하게 판단했다는 보장이 있을까?
아무리 정당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그들의 행위의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시나르에 있었다. 대지 위로 다시 돌아 온 것이다. 그는 하늘의 저수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지상에 도착했다. 야훼는 그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도록 그를 되돌려 놓은 것일까?
어떤 이유에선가 하늘의 천장은 대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맞닿아 있는듯 했다.
원통형 인장
이제는 왜 야훼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왜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 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통해, 인간은 야훼의 업적에 깃든 상상을 초월한 예술성을 일별하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절묘하게 건설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 이해
호르몬 K 요법의 side effect : 지능 향상(99%), 독서 속도와 이해력 향상, 동시에 두 가지 일에 마음을 집중시킬 수 있음
만약 자네가 동의해 준다면 우리는 자네에게 그 호르몬을 더 주사하고 그 결과를 모니터 해보고 싶네.
다음에 떠오르는 의문. 지능에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정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르몬의 추가 주입에 의해 추가 증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대답은 의사들보다 내가 더 먼저 알게 될 것이다.
게슈탈트 Gestalt :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내가 네 번째 시나리오를 읽는 동안, 클라우젠은 주의 깊게 직업에 걸맞은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반응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만,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클라우젠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그는 정부의 심리학자이다.
최선의 방법은 진짜 역량을 숨기고 이 질문에 틀린 대답을 하는 것이다.
육체를 행사하는 것은 정신적 활동이다.
나는 새로운 언어를 설계하고 있다. 종래의 언어들은 이미 한계에 달한 나머지 내가 더 이상 진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말이 있으라. Fiat Logos
말을 함으로써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신처럼, 나는 이 언어를 써서 나를 새롭게 바꾼다. 이것은 메타 자기 기술이며 자기 편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게슈탈트를 지각하는 일이다.
한편, 신진대사율이 향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뇌가 요구하는 영양 수준을 충족시키려면 대량의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머릿속 혈류 증가에서 비롯된 열을 효과적으로 발산 시키기 위해 머리를 밀기로 하자.
아마 그는 나보다 먼저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 같다. 따라서 그는 나를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이?
그는 친구인가 적인가?
나는 미를 사랑하고, 그는 인류를 사랑한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위대한 기회들을 무시해 왔다고 느끼고 있다.
그는 지능을 수단으로 보고, 나는 지능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본다.
자기 파괴 커맨드
그가 의미하는 것은 '말'이다. 입 밖으로 내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게 되는 문장.
모든 마음에는 본래 그런 방아쇠가 내장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내 혀 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이해해." 처음에는 못한다. 그런다음, 소름끼치게도, 나는 이해한다.
유발자극
기억자극
나는 스스로 '말'을 직감하고 있다.
나는 연상 작용을 멈추려고 하지만, 이 기억들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죽음이 내 눈 앞에서 진행된다.
구세주에게는 심미주의보다는 실용주의 쪽이 훨씬 더 쓸모가 있다.
나는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한다. 고로, 나는 붕괴한다.
○ 영으로 나누면
따라서 어떤 수를 0으로 나눈 결과는 글자 그대로 '무정의 無定義'인 것이다.
미시즈 리바스는 이 병동을 장악하고 있다시피한 오래된 환자였다.
당시를 돌이켜 보며 칼은 일종의 추상적인 놀라움을 느꼈다.
책임감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에피파니 Epiphany 였다. (Epiphany : 갑작스럽고 놀라운 깨달음, 통찰 또는 계시, 신적인 존재의 출현, 순간적인 직관)
훗날 칼은 인생의 위기와 상심을 여러 번 경험 했지만 절망에 빠지는 일만은 결코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어떤 인생을 일궈왔을까? 어떤 남자들을 사랑했을까? 일찍이 칼은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어떤 종류의 사랑인지, 또 어떤 종류의 사랑이 아닌지 인식했고, 그것을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여겼다.
~의 얼굴에 예상했던 표정이 떠올랐다.
이목구비 전체가 마치 다른 표정은 아예 모른다는듯 완전히 돌변하는
그녀가 보인 성난 표정의 의미를 해석해 보려고 노력하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마치 칠판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는 듯한 표정이었다.
르네는 거의 경멸조로 칼의 말을 일축했다.
그것은 동정과 감정이입의 차이였다.
○ 네 인생의 이야기
인간의 귀는 결국 인간의 후두가 내는 소리를 인식하는 데 최적화된 기관이라는 뜻이죠.
우리의 귀로는 그들이 의미 있다고 간주하는 차이를 아예 식별 못할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미지의 언어를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이와 직접 교류하는 것 뿐입니다.
한 번도 몸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기괴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모든 방향으로 눈이 있으므로, 헵타포드 heptapod 에게는 어느 방향도 '전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익숙한 쪽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 비해, 낯 선 쪽은 지척에 있었다.
정체가 과학자이든 관광객이든 간에, 그들에게는 지독하게도 호기심이 없었다.
너는 언제나 내 예상보다 앞 서 나가 있을꺼야.
양쪽 모두 동일한 물리적 우주를 기술하는 시스템.
나에게 지금까지 사고란 보통 마음 속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고란 마음 속으로 소리없이 말하는 과정이었다.
수화로 코드화된 사고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마음 속 목소리 대신 마음 속 손 한 쌍으로 사유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하곤 했다.
논제로섬 게임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 일흔 두 글자
살라만더 : 불의 정령
운디네 : 물의 정령
유기적 맥락
자동인형으로 하여금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인간을 닮은 행동을 하게 할 수 있으니까.
단순히 경제적인 안락함만으로 하층계급의 정신을 개선할 수 있을거란 기대는 하지 말게.
문화의 자기 연속성
~ 문제로 무거운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 인류 과학의 진화
과학 탐구의 최전선이 인류의 이해력을 초월해버린 시대에 인류 과학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디지털 신경 전이 기능이 없는 인류 <- -> 메타 인류
○ 지옥은 신의 부재
아내가 죽은 뒤 닐은 크나큰 비탄에 잠겼다. 그 사실이 그가 과거에 경험했던 고통들을 기억 속에서 다시 한 번 불러 일으키고 강조한 탓이기도 했다. 아내의 죽음에 의해 닐은 싫든 좋든 자신과 신의 관계를 재검토할 필요를 느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영원히 변화시키게 되는 여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천연덕스러운 잔인함과, 희생자의 감정적 갑옷에 생겨난 허점을 찾아내는 그들의 본능적인 능력과, 사디즘을 통해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 강화되는 방식, 닐은 이것들을 신이 아닌 인간 특유의 행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을 비난한다는 함정에는 빠지지 않았지만, 한 걸을 더 나아가 신을 사랑하는 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지옥은 그래봐야 인간계보다 물리적으로 더 나쁜 장소도 아니었다.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신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을 의미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신은 닐의 인생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것을 그는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라가 천국으로 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닐은 그녀와의 재회를 그 무엇보다도 갈망했고, 천국으로 가려면 오직 전력을 기울여 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재니스는 다리가 없는 상태를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인생 최대의 놀라움을 경험했다. 두 개의 새로운 다리가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길고 완전히 기능하는 근육질의 다리가.
질의 응답 시간의 일이었다. 재니스는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불구가된 그들의 몸도 언젠가는 원상 복구될 것이라고 약속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결국 재니스는 자신이 왜 치유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대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청중은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청중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설득력의 가장 큰 원천을 잃었던 것이다. 신과 접촉한 사람들과 더 이상 같은 상태에 있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들이 처한 상황이 복된 것이라고 간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다리가 복원된 것은 어쩌면 다리를 잃었을때와 마찬가지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인지도 몰랐다.
이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보였다.
사라의 부재는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느껴졌고
그녀가 독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후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적극적인 분노
그는 그녀를 되찾고 싶었고, 그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신을 사랑할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정의나 죄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무런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낫지 않을까.
희망에 차 있는 동시에 절망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상대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을 초월한 완전무결한 방식으로 신을 사랑했다. 이것을 무조건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무조건적'이라는 단어를 논할 때는 조건이라는 개념이 필요한데, 그런 개념은 이제 닐의 이해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선은 사후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그것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라고 설파하지만, 이것을 예로들어 사람들에게 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설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을 사랑하라고 촉구한다. 이선이 주장하는 것은 오해에 입각해서 신을 사랑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신을 사랑하고 싶거든, 신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은 의롭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고, 자비롭지도 않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이해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심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천상의 빛을 봄으로써 인간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얻은 그는, 지옥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신이 부재한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닐은 살아있을때 가능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독한 고뇌에 시달리지만, 그가 보이는 유일한 반응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 온 지금도 닐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만약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특징입니다.
저는 타메라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가 아니라, 정신과 육체 모두를 함양해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기를 바랐습니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약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물론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 '눈가림'은 결코 해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도움 받은 성숙함
성숙함이란, 차이를 눈으로 보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칼리가 이상적인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가 실로 작기 때문입니다. ~ 성숙에 관해 말하자면, 칼리를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성숙함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공평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방의 외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동적인 반응만은 억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소망 충족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겁니다.
그 남자 얼굴이 어디가 특별하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 마치 그 남자 얼굴은 자석이고 내 눈은 나침반의 바늘처럼 그쪽으로 끌려갔다고나 할까.
미모의 코카인입니다.
우리의 미적 수용기는 진화로 얻은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네오마인드 불교도
아름다움으로부터 우리가 보호 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모욕적이야.
세월이 제 얼굴에 끼친 영향
○ '지옥은 신의 부재' 창작 노트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도 다른 사람에게는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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