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Die Kunst, ohne Sorgen zu leben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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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츠바이크의마지막수업


#슈테판츠바이크  #StefanZweig


#옮긴이_배명자  #펴낸곳_다산초당


유럽의 지성이라고 불리우는 슈테판 츠바이크, 그의 사후 미발표된 9 편의 글을 #클라우스크레브너 #폴커미헬스 두 분이 엮어 출간한 책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신과 인성의 부재인 상태에서 쓰여진 글들 입니다.


독일어 제목, "걱정없이 사는 법"에서 나 자신이 움켜지고 시작한 오해 - 암울한 상황의 회피, 외면, 비겁 - 를 부끄럽게 한, 정면으로 맞서고 온 몸으로 헤쳐가는 삶의 증거와 사랑의 실천, 사람에 대한 이해와 기대가 깊게 담겨 있습니다.


읽는 내내 작가는 "따스한 정의감을 지닌 착한 분"이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나는 작아졌고, 그만큼 나의 목표는 커졌습니다.


또, 착한 분의 그 착함이 내 속의 뭔가를 휘저어 놓았습니다.

나 만의 공의와 정의로 세상을 재단하고 타인을 비평하면서도 정작 나서야 할 때 침묵하던 '나의 부끄러움'.

깊고 굳게 가라앉아 있던 그것이 내 마음 저 밑부터 치고 올라와 내 눈 저 끝까지 휘몰아친 것이지요.


이 착한 분이 '침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대하고 견고한 침묵

그다음 침묵, 냉정한 침묵, 완전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 뚫을 수 없는 침묵, 끝없는 침묵, 끔찍한 침묵, 나는 그 침묵을 밤에도 낮에도 듣는다."


"강제, 명령, 강요된 위협적 침묵, 공포의 침묵이다."


"침묵의 고문 ~ 이는 이 세상에서 고안된 가장 잔인한 영혼 훼손이다."


내가 부끄러워한 '침묵'은 외면이요, 비겁입니다.

내가 떼고자 하는 '꼬리표'는 합리화 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잘 들었습니다.

이 책을 만났다는 것이 참 많이 감사합니다.



- 욕심 난 문장들



○ 걱정없이 사는 기술


이 남자는 내게 다가 왔을 때와 똑같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떠났다.


사람이 이마 아래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주의 깊고 현명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정중한 무관심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


~에게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단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고상함이었다.


스스로 만든 이런 고립이 그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지 알았기에,


그날 아침 우리의 말 한마디, 다정한 몸짓 하나가 그에게 불행과 고통을 이겨 낼 힘을 어쩌면 줄 수 있었으리라.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나에게 돈이란


돈이 기괴한 방식으로 가치를 잃어가고


나를 비롯한 수많은 개인의 삶은 거의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었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돈의 실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이 시대의 우리는 정말로 세계적 격변을 모두 목격하고 그것에 빈틈없이 참여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묻는 게 더 낫겠다. 이 시대의 우리는 쏟아지는 이 모든 사건을 매일, 매시간 주의를 기울여 따라갈 여력과 참여의식을 충분히 가졌을까? 솔직하게 자문해 본다면, 우리중 누구도 이렇게 끊임없이 닥치는 높은 긴장에 대처 할 여력이 없고, 우리는 그저 이따금 좌절과 절망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 볼 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센강의 낚시꾼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역사적 시대'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잠시 떠나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것을 감당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선한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세계의 재앙이 길어질수록 고통과 연민 사이의 비례관계가 점점 깨졌다.


피로감



○ 영원한 교훈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종의 낭패감


나는 내내 불필요하고 성가신 훼방꾼이 된 기분이었지만,


시간과 공간과 세상을 그토록 완벽하게 잊을 수 있다니, ~ 그 한 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집중이었다.


너무 자주 수 백 가지 사소한 일에 분산되고 쪼개지는 의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더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를 위한 추도사


그는 모든 사람이 그를 쉽게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자신을 더 많이 내어줄수록 그는 더욱 그 자신으로 남았습니다.


[ 늘 활동하는 깨어 있는 선함, 기쁨을 주는 선함, 시인의 선함, 상상력이 풍부한 본성에서 나오는 선함, 생산적인 선함, 지적인 선함, 대상이 명확한 선함 ]


어쩌면 선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드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자연의 많은 것이 그렇듯,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가 실천하며 살았던 그런 고귀한 형태의 선함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흔히 선함은 약한 마음, 다른 사람의 강한 요구에의 굴복, 수동적 태도, 심지어 약점으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의 선함은 미덕이자 힘이었습니다. 그의 선함은 능동적이었고, 치유와 격려의 힘을 신비하게도 늘 균일한 규모와 강도로 발산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그의 선함을 심지어 방사능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더 많이 내어줄수록 그는 더욱 그 자신으로 남았습니다. 그것은 늘 활동하는 깨어 있는 선함, 그에게 중요한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선함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한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한 시인의 선함이자 상상력이 풍부한 본성에서 나오는 선함, 가장 쥐중한 작은 감탄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생산적인 선함, 의식적으로 고안된 지적인 선함, 언제나 대상이 명확한 선함이었습니다. (p84~85)


체념의 기술을 오래전에 체득했습니다.


순순히 작별하고 무심하게 체념하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 거대한 침묵


오늘날 발언의 자유를 가진 모든 사람의 첫 번째 의무는, 이런 당연한 권리를 빼앗겨 직접 발언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발언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거대하고 견고한 침묵


그다음 침묵, 냉정한 침묵, 완전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 뚫을 수 없는 침묵, 끝없는 침묵, 끔찍한 침묵, 나는 그 침묵을 밤에도 낮에도 듣는다.


강제, 명령, 강요된 위협적 침묵, 공포의 침묵이다.


회색 가면을 쓴 것처럼 지쳐 있음을 나는 안다.


침묵의 고문 ~ 이는 세상에서 고안된 가장 잔인한 영혼 훼손이다.


약자의 마지막 무기인 희망과 기도



○ 이 어두운 시절에


작가는 조국을 떠날 수는 있어도, 창작하고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와는 갈라 설 수가 없습니다.


명백한 퇴행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독일은 힘을 가졌고, 힘은 새로운 법을 만듭니다. 역사는 승자에게 정당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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