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길
본문말씀 : 욥기 37장 1-13절
1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3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 7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8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 9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10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11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12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13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길 >
하나님은 기도원에서 늘 기도하는 삶보다 세상에 나아가 기도한 대로 행동하는 삶을 기뻐하신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늘 교회에서만 지내지 말라. 주중의 5일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에는 개인 여가 및 가족과의 교제 시간으로 보내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인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라. 가끔은 자연으로 나아가 안식을 누리라. 그처럼 자연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라
본문 1절을 보라.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이 말씀은 36장 후반부에 이어서 번갯불과 우레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엘리후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떨고 흔들렸다는 뜻이다. 그는 자연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처럼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마음을 가지라. 자연에 대해 경탄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경탄하면 신기하게 욕심과 설움과 시름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시편 8편 1절에서 다윗은 노래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다윗은 땅과 하늘을 보면서 경탄하며 모든 시름과 설움을 다 날려 보냈을 것이다. 신비한 자연을 보면서 경탄할 때 사람은 사람답게 되고 신비한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높일 때 성도는 성도답게 된다. 경탄할 줄 아는 사람이 경외할 줄 알고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 감사할 줄 안다.
자연을 깊이 묵상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을 우연의 산물로 보기에는 그 많은 신비한 우연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땅과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다윗의 고백이 나온다. 자연에 눈뜨면 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면서 마음의 눈도 떠진다. 결국 최고의 교육은 자연을 보고 경탄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가지게 만드는 교육이다.
자연을 접할 기회를 많이 주거나 가지라. 핵심 입시 공부는 국어, 영어, 수학 공부지만 핵심 인생 공부는 자연 공부다. 자연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느끼면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성을 깨달을 때 능력 있는 삶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사람은 물론 자연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 자연은 하나님께 가는 길을 보여주는 표지판과 같다. 자연과 사람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또한 자연에 대해 경탄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분리된 것이 아니다. 결국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높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다.
2.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라
본문 2절을 보라.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이 구절에서 ‘똑똑히 들으라’는 표현은 이전의 <개역한글성경>에서는 ‘들으라 들으라’고 표현되어 있다. 성경 원어로는 <개역한글성경>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다. 들으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한 것은 열심히 듣고 세심히 들으라는 이중적인 뜻이 있다. 엘리후가 우레를 통해 하나님의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고 한 것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줄 알라는 뜻이다.
성도는 자연을 통해 들리는 하나님의 엄중하고 세미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작은 들꽃을 보면 다음과 같은 주님의 소리가 들린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28-30).”
모든 자연만물에는 다 목적이 있다. 작은 사람은 물론 작은 사물에게도 목적이 있다. 만물과 만사를 보면서 그것들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소리가 들린다. 더 나아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그처럼 자연을 사랑하고 누리면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믿음의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의 마음도 얻는다.
3. 하나님의 큰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면서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큰일을 행하신다(5절). 그러므로 내가 큰일을 하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일한 후에는 적절한 쉼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잠잠히 기대하며 기다리라. 사람은 일과 쉼의 양 날개를 통해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잠시 일을 멈추고 세상의 각종 소음에서 멀어진 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삶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새롭게 리셋 시키라.
사람이 아무리 엄청난 노력과 대단한 기술을 동원해도 박테리아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활용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사람의 최첨단 기술조차 들꽃 하나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대 위에서 별처럼 빛나는 삶만 추구하지 말고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 잠잠히 기도하는 삶을 추구하라. 대저택과 고급차가 능력과 권위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하나님을 붙잡고 나아가기도 하고 멈출 줄도 알아야 능력과 권위가 생기고 하나님의 큰일이 더욱 멋지게 이뤄진다.
혼자 뛰려고 하지 말고 내가 뛸 때 하나님도 같이 뛰시게 하라. 그러려면 가끔 뜀박질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쉬라. 적절한 쉼이 있어야 신적인 지혜와 창조성이 생긴다. 쉼을 통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새롭게 다짐해야 자신의 현재 위치가 파악되면서 인생길을 잃지 않게 되고 삶의 무게에서도 헤어날 수 있다. 또한 그때 슬픔이 기쁨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상처가 상급이 되고 불안이 평안이 된다.
인생길에서 가장 힘들 때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서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왕따시키면 하나님을 붙잡고 비유적인 의미에서 세상을 오히려 왕따시키라. 현재의 모습이 초라해도 외로워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나를 집어 삼키려는 세상의 불의를 믿음으로 이겨내라. 하나님의 큰일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때로는 소리 없이 품어 주시면서 결코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4.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하나님은 눈과 비가 내리는 양도 친히 주관하신다(6절). 사람이 아무리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게 하셔야 한다. 가정 행복, 교회 성장, 사업 성공을 추구하라. 다만 어떤 목표든지 궁극적인 성취는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심을 더욱 알고 믿고 의지하라.
자연만물을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면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내면에서 솟아오른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빠도 가끔 시간을 내어 자연으로 들어가라. 좀 더 시간이 있으면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동식물을 기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하나님을 느끼라. 동식물을 돌보고 기르면서 무언의 대화를 하면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는 훈련에도 익숙해진다.
필자의 지하 카타콤 목양실에 있는 화분 4개는 약 4년간 햇빛을 전혀 받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 대 자연에서 뛰놀지 못하고 좁은 지하 목양실에서 햇빛 없이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대견하다. 때로는 필자도 가끔 그 식물들과 대화하면서 하늘의 기운을 느끼고 생명력이 충일해짐을 느낀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자연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며 겨울에 짐승들이 땅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것도 주관하신다(8절). 또한 계절뿐만 아니라 겨울에 물이 어는 것 같은 기상 현상도 주관하신다(9-11절). 더 나아가 엘리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시면서 때때로 징계를 내리시거나 긍휼을 베푸심으로써 만사도 주관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12-13절).
하나님이 어떤 일을 당하게 하실 때는 그 목적이 있다. 내가 당한 일은 결코 우연히 이뤄진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만물과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평안을 누리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여는 일에 앞장서라. 하나님은 자연만물을 잘 다스리라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런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람과의 평화도 추구하고 자연만물과 복된 공존을 이루면서 내가 있는 곳이 나로 인해 생명력이 넘치게 하라.
불신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는 인식 능력을 빼앗아간다. 그러나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이뤄지면 들꽃을 보면서 행복감이 넘치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겸손해지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린다. 그러면 세상 현실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욕심을 이겨내는 삶과 사랑과 용서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늘 사랑과 용서를 앞세워 만물의 회복과 사람의 회복을 앞서 이끄는 복된 성도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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