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沈黙
#책
#침묵 #沈黙 #TheSilence
#엔도슈사쿠 #遠藤周作
#옮긴이_공문혜 #펴낸곳_홍성사
17세기 일본.
그곳에서 벌어진 #기독교박해 (#기리시탄의죽어감. #순교와 #배교)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 역사소설.
내내.
내가 믿는다 하는 하나님은 내가 "굴절시키고 변화시킨 하나님"이 아닐까. 고민.
문득.
내게 각인된 그리스도의 얼굴은 내 유일신앙의 "모든 꿈과 이상을 건 얼굴"이 맞나. 자문.
행동. 마음. 내 안의 유혹.
(성화를) "마음으로까지 밟으라고는 하지 않겠다. 이런 것은 다만 형식적인 것이므로 발을 걸친다고 해서 너희의 신앙심에 상처가 가는 것은 아니다."
놀람.
"관리는 ~ 단순히 형식이라고 "되풀이 해" 가르치고 있었다." 나의 합리에 갖힌 내 모습.
침묵. 세미한 음성. 나의 목소리.
주여! 어느 것이 진짜 입니까!
신앙. 믿음에 대한 고뇌(맏는 말인가?)가 필요한 그대에게 추천.
- 욕심 난 문장들
국자 밑에 몇 개의 구멍을 뚫어 국자의 물이 서서히 떨어져서 뜨거운 고통이 오래 가도록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참으로 "동양에서 가장 그리스도교에 적합한 나라" 였습니다.
볼 살이 쪽 빠져 뼈만 앙상하게 두드러진 마르타는 말없이 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출발은 드디어 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각자의 마음 외에는 일본에 가지고 갈 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저희는 마음 정리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희 종교가 이 지방 농민들에게 물밀듯이 확대되어 간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인간으로 취급 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쁨은 물론 슬픔조차도 얼굴에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랜 비밀 생활이 이 신도들의 얼굴을 가면처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살아 있다면 지금 이 짓눌리는 듯한 답답한 빗소리를 어디서 어떤 기분으로 듣고 있을까요?
여기서는 밤과 고독이 하나도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것이나 선한 것을 위해 죽는 일은 쉽지만, 비참한 것이나 부패한 것들을 위해 죽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그날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기치지로의 가벼운 입에는 약간 당황스럽습니다만
그들을 소처럼 취급하는 자들의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삶이 다만 체념하기 위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처럼 그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일까.' 아마 그분의 얼굴 모습이 성경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성경에 쓰여 있지 않기 때문에 저는, 그분의 얼굴을 제 상상력에 맡겨 어린 시절부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얼굴을 마치 연인의 얼굴 모습을 미화하듯이 가슴 속에 간직했던 것입니다.
유용한 존재라는 희열의 감정 ~ 이 지구 끝의 나라에서 저는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학대 받아 온 자의 교활함
"밟아도 좋소, 밟아도 좋소."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 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큼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래사장을 씹는 파도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 저는 이런 때에 다른 남자의 얼굴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 사람의 얼굴은 몇 세기가 지나는 동안 많은 화가의 손에 의해 계속 그려져 왔습니다. 실제로 그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는데 화가들은 모든 인간의 기도나 꿈을 담아 그 얼굴을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신성하게 나타냈습니다. 아마 그의 진실된 진짜 얼굴은 그 이상으로 성스러웠을게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웅덩이의 빗물에 비치는 얼굴은 먼지와 수염으로 더렵혀 있고 불안과 피로로 완전히 일그러져 있는, 쫓기는 남자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바다의 파도는, 모키치와 이치소우의 시체를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씻어 내리고, 삼켜 버리고, 그들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그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바다와 똑같이 침묵을 지키고 계십니다.
제일 무서운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절망이라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바다는 여전히 울적하게 바늘처럼 빛나면서,
사제를 굶주린 듯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약함을 정당화시켜서 어떤 의미를 붙이려는 변명
자신이 결국 체포되었다는 사실이 바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이렇게 한가롭고 태평스러운 주위를 살펴보자 이 일이 마치 착각처럼 느껴졌다.
"모르겠어요. 천국에 가면 정말 영겁과 안락이 있다고 ~ 심한 연공 징수도 없다고 ~ 굶주림도 병에 걸릴 염려도 고통도 없다고 .... 저희는 이미 일할 만큼 일해왔어요!"
천국이란 그대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신부는 입을 다물었다.
기도는 간간히 입술만 스칠 뿐이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받고 싶지도 않은 물건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을 고마운 폐라고 하오. 그 뜻은 고맙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곤란해지는 것을 말하오. 가톨릭의 가르침은, 이 강제로 밀어 넣은 고마운 폐와 매우 흡사하단 말이오.
당신은 어째서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까? ~ 왜. 어째서? 왜인지 그 이유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괴로운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몇몇 남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도 침묵하고 그들의 얼굴도 침묵하고 있었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모든 꿈과 이상을 건 얼굴이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침묵을 지키셨지만, 당신이 언제까지나 침묵하실 수는 없으실 것이다.
올바름은 어떠한 나라 어떠한 시대에도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올바른 교리가 일본에서도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그건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에게도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하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억지이고말고요.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빨리 밟으면 빨리 여기서 나갈 수 있다. 마음으로까지 밟으라고는 하지 않겠다. 이런 것은 다만 형식적인 것이므로 발을 걸친다고 해서 너희 신앙심에 상처가 가는 것은 아니다." 관리는 아까부터 성화를 밟는 것이 단순히 형식이라고 성도들에게 되풀이해 가르치고 있었다.
겉으로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한 인간이 죽었다는 사실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 한낮의 고요함. 매미소리. 이런 어리석고 참혹한 일과는 전혀 관계 없다는 듯이 그분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기도는 혀에서 사라져 갈 뿐이었다.
현실에서 본 농민의 순교는 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 저 사람들이 입고 있는 남루한 옷처럼 초라하고 가련하기만 했다.
그는 인간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던 것인데, 사실은 일본인 신도들이 자기 때문에 잇달아 죽어갔다.
통역은 이 피가 선교사 자기들만의 꿈에 의해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그분도 그날 밤, 하나님의 침묵을 예감하고 공포에 떨었는지 어땠는지를 신부는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신부는 그것을 오랫동안 그분이 기도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였을 뿐 결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공포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그 무렵 믿었던 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야. 그들만의 신들이지. 그것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모른 채 일본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아닌 그들이 굴절시키고 변화시킨 하나님만을 믿고 있었던거지.
선교의 표면만 보았지, 그 질은 생각하고 있지 않아.
저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모독일까. 페레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아니야. 일본인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가질 수 없을거야.
일본인은 인간을 미화하거나 확대시킨 것을 신이라 부르고 있어. 인간과 동일한 존재를 신이라 부르지.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하나님이 아니야.
이 나라에서는, 자네들이 믿고 있는 저 하나님이 마치 거미줄에 늘어진 벌레의 시체처럼 외형만 있고 피도 실체도 상실하고 있었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거짓 믿음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없다.
통역의 수다는 싫다기보다는 무의미한 말처럼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리로 납득시킬 수가 있으면 어디까지나 가르쳐서 깨닫게 하라고 부쇼오님은 항상 말씀 하시지요.
치욕과 모멸을 견디는 얼굴이 인간의 표정 중에서 가장 고귀하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그 분이다.
일찍이 빌라도의 관저를 에워싼 군중들의 외침이나 노호가 들렸을 때 그분은 그때도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을까. 그러나 그분 역시 그럴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코 고는 소리는 ~ 마치 조율이 잘못된 피리소리처럼 들렸다. ~ 인생에는 왜 이런 아이러니가 있는 것일까?
소리는 마치 끈처럼 뒤얽혔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 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거야!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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