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습니다 問題があります



 


#책

#문제가있습니다
#問題があります

#사노요코 #佐野洋子 #yokoSano
#옮긴이_이수미 #펴낸곳_샘터

이건 무슨 맛일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사탕을 세 봉지사고 하얀색 비닐 봉다리(이집 이 비닐 봉다리는 느낌이 좋다.)에 담아 털레털레 알라딘으로 내려왔다.

두권의 책을 고르고 세번째는 뭘로할까 눈을 돌리는 차에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가 있습니다". 왠지 내 허영심을 자극하는 듯 했다.

작가의 이름을 봤다. 아. 이 분이시구나. 사노 요코님.

돌아와 사탕 맛을 보며 읽었다.
어. 재밌는데 쫌 이상한데.
그러면서도 거의 끝까지 읽어갔다.
흠. 이상한데. 재밌긴 해. 아무래도 "소노 아야코"님의 글이 아닌걸....

다시 표지의 작가 이름을 확인했다.
아. "사 노 요 코". 그래 맞아 이 분 스탈이야.

어!...왜! 그랬지!!
문제가 있네...까짓...아무렴 어때. 다 읽었는데.

두 분을 알면서도 혼동했듯(아무래도 홀린듯 ^^).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듯 아는듯 지나 왔고 지나 가는 시간, 시절들을 예의 사노 요코님다운 문체로 들려 주는 에세이입니다.

읽다보면 그래 나의 날들도 "아무래도 좋은 날들이었어. 일거고."라는 미소가 올라 올 겁니다.



- 욕심 난 문장들


왠지 약효가 좋을 것 같은 맛이었다.


나는 어린시절 파리잡기에 평생 쓸 집중력과 담력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다섯 살에는 천재였는데, 스무 살에 보통 이하가 되어 버렸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냐!!" ~ 지금 생각하면, 나는 똥과 된장이 뒤섞인 인생을 살아 온 것 같다.


누구든 글자를 쓸 때 독특한 버릇이 나왔고 저마다 개성이 있었다.


"진게 아니라 끝난거야"


이만큼 책을 읽었으니 나도 유식해야 하는 데 아는 게 별로 없다.


나는 철학할 틈도 없이 다음 책을 읽었다.


엄마를 혐오했던 수십 년의 세월을 자책할 때 마다 더러운 강물이 뱃속에서 흐르는듯 했다.


검은 강물이 사라졌다. ~ 내 인생을 나 좋을대로 결산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저세상이라는 곳 ~ 몇 살의 몸으로 만났는지 물어보고 싶다.


성질은 변하지 않으므로, 누구든 자기 성질이 불러들인 인생을 살게 된다.


엄마에게 육친은 벗어버리고 싶은 옷이었는지도 모른다.


허세를 부리기 위해 책을 읽는 동안 완전히 독서에 빠져 버렸다.


어떻게 자기에게 재능이 없는 걸 아는지가 더 신기했다.


나는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불쌍했다. 아, 불쌍해.


언젠가부터 인간의 정신보다 물질이 앞서 나가게 되었다.


내 인생에 은사라 부를만한 사람이 없는 건 나의 결함 탓이다.


엄마에게 나는 '누군가'가 되었다.


한순간의 빛이 인생의 영원한 빛으로 반짝이는 경우도 있다.


주름 투성이 몸 안에는 태어나서 살아 온 세월이 모두 들어있다.


조용히 늙어가는 멋진 노인


어른이 되면 그냥 놀라기가 어렵다.


예술과 신앙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밀어낸다. 예술이란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자아가 낳은 것이다. 신앙이란 자아를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예술 ~ 거대한 진실과 거대한 저짓을 모두 품는다.


아이의 생활에는 스케줄이라는 게 없다. 순간순간을 살 뿐이다.


아이를 위한 글은 새빨간 거짓말이어야 한다. 그 새빨간 거짓말에 이 세상을 정확히 꿰뚫는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진실'은 곧 현실이다.


공상의 세계는 거짓도 사실도 아닌 참된 세계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허영심이다.


눈이 내린다고 가난한 오막살이 집이 아름다워 보인다면 뻔뻔한 것이라는 부분에선 웃고 말았다.


요즘 맥이 풀린 건 "남에게 대접받지 못하는 것. 나이 든 모친"이라는 참혹한 구절 때문이다.


젊을 때는 활자 안의 청춘이 아닌 살아 있는 청춘을 즐겼어야 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나의 변변찮은 경험이 아닌 타인의 귀중한 경험을 나눠 받기 위해서이고, 보통사람에겐 없는 재능을 접함으로써 나의 가난한 마음을 잊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빨간 재능에 푹 잠긴채 빨간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고, 내일이면 파란 재능에 물들어 '와. 세상이 이렇게 파랗구나' 감탄할지도 모른다. 아마 모레는 시커먼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모른채 죽어간다.


가난 자체가 싫었던 것이 아니다. 그에 얽힌 분한 경험이 분하다.


"너도 사"라는 한마디 때문에 <말테의 수기>가 내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릴케가 내게로 스르르 들어왔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전혀 몰랐지만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나의 책 취향은 마치 백엔숍 같다. 장르가 없다.


일상이 힘들면 생활이 철학이 돼.


나처럼 말로만 약팍한 정을 표하는 게으름뱅이.


아무것도 없는 단순한 사람들이 마음만 무겁게 안은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일상에 묻힌 영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숨은 아름다움이 무언가에 촉발되어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빛을 발한다면 하늘이 내린 은혜로 감사해야 하리라.


아아. 일해야 하는데, 일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안 하니까 역시 한가하다.


목적이 없으면 시간은 많고 일생도 무척 길다.


부부에겐 과학이 필요없다.


애매함이 몸에 배었으니 늘 애매하게 살아왔을 뿐.


악녀는 천사의 모습으로 온다.


나 역시 '무의식'을 무기로 갖춰 놓고 타인을 비난하는 도구로 자주 활용한다.


자식은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란다. 그리고 부모를 자라게 한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어엿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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