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살수도 없고 人間にとって成熟とは何か



 

#책

#무인도에살수도없고
#인간에게성숙이란무엇인가
#人間にとって成熟とは何か

#소노아야코 #曽野綾子
#옮긴이_김욱 #펴낸곳_책읽는고양이

고작 한갑자(一甲子)를 산 주제에 "어른다움", "성숙"에 대해 골똘할 때가 많다.

그게 내 안에서만 자라고 활동하면 좋은데 자꾸 밖으로 나대서 지적질만 하는 통해 스스로도 피곤해진다. 이를테면 이렇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가며 "저자는 왜 저 따우로 앉아있는거야!"라든지,

길을 걷다 마주 오는 사람을 보며 "이 양반은 한 쪽으로 비켜 갈 줄도 모르나!"라든지,

"아우, 씨!! 왜 "한 걸음 더" 를 안하고 싸질러대는거냣!!" 라든지,

일을 할 때면 "이 X는 주둥아리만..." 등등.

또래의 모습에 언짢은 투정을 부리는거다.

소노아야코 선생의 말대로, 미숙하기 때문에 그런거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나는 저들과 달라!" 라는 치졸한 으스댐으로 약함을 나타낸거다.

깨닫는다.

"타인과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의 부재에서 미숙한 어른이 태어난다."

미숙과 성숙은 정말 한끗차이다.




- 욕심 난 문장들


미숙하므로 뽐낸다.


어느 시대에나 공연히 뽐내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나이에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나는 '위대한 상식'만큼 훌륭한 예술은 없다고 믿는다.


상식은 상대의 존재를 의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타인과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의 부재에서 미숙한 어른이 태어난다.


진정으로 마음의 힘을 갖춘 사람은 어디서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지위란 현세에서 잠시 맡게 된 보따리 같은 것이다. 누가 정말 위대한 사람인지 그 우열의 차이를 판정하는 것은 신의 일이다.


으스댄다는 것은 약하다는 증거다.


세상에는 들어야 될 말도 많고, 봐야 될 것들도 많다. 하지만 나를 앞장 세우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나에게 말 걸어 주지 않는다.


인생은 인간보다 정직하다.


고통도 즐거울 수 있고, 아픔도 재미있을 때가 있다.


보답하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일'로서 평가 받기를 원했다.


이토록 긴세월에 걸친 친절을 보답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신 뿐이다. 그러나 신의 표창장도, 금일봉도 허락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 마음에 내가 누군가를 도왔다는 만족과 기쁨을 허락할 뿐이다.


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세상의 평판이 내 인생을 좌우할 만큼 크나 큰 의미는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유명인을 위인이라 착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존재의 무게는 똑같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매일 새로운 광경을 구경할 수 있는데


이 할머니에게 하루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다.


머릿 속 생각과 손에서 펼쳐지는 글쓰기는 차원이 다르다.


어떤 직업이든 수업 시절이 필요하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때 배웠던 것은 기술보다는 이 직업에서 갖춰야 할 윤리적인 자세인 경우가 더 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 글은 거기서 시작된다.


현재 내가 앓고 있는 주된 증상은 게을러지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 증상을 소중히 간직할 생각이다. ~ 나는 이 게으름을 고칠 의사가 없다.


신앙에 관한 모든 것들을 웃으며 받아 넘기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고, 복잡한 것은 타자, 즉 사람이다. 피곤한 인간관계에 치이면서도 타인에게 감사와 존경과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타인의 행복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다.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지 않는 마음은 연약하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인간됨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불행을 예측하는 기능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재능이다. 그 재능은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


멀쩡한 사람들에게도 필요 없는 것들이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필요할리 없다.


더불어 살아 간다는 것 ~ 더불어 살아간다는 참의미는 내 주변의 불행과 운명까지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인간의 행복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은 더 딱딱하게 굳어있다.


자기 몸은 스포츠 정신과 거리가 먼데, 야구같은 스포츠에 푹 빠져 산다.


단념이란 반드시 배워야 할 인생의 지혜다. 단념을 통해 우리는 기대하지 못했던 평안과 만난다.


그런 말 외에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적 빈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우정 표시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 성별과 나이는 쓸데없는 참견이다.


"쓴다. 쓰지 않는다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로 사람은 지쳐요."


우리의 수다에는 반성도 없고, 정중함도 없다. 오직 험담뿐이다. ~ 그 자리에 모인 우리끼리 서로를 헐뜯는다.


성숙이란 상처 없는 인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열매가 익어가듯 변해가는 과정이다. 인생에서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수비적인 삶은 자칫 비겁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 ~ 튀는 옷을 입지 말자고 하는 게 아니다. 튀는 옷 자체를 두려워하는 우리 마음이 문제라는 얘기다. 내가 아직도 미완성 상태임을 증명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나이 때문에 서투름이 용서 받아서는 안 된다.


인간이 무엇을 구하든 운명은 자신이 정한 길로 나아간다.


예술은 나이를 벽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만의 특별한 목적을 정하고 이룬다.


객관적인 현실은 보면서 웃을 수 있게되면 더 이상 궁지에 몰린 쥐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것은 짓궂은 '생물'이다.


우리는 상대방과 결정적으로 다른 어떤 점이 없다. 결정적으로 동일한 것도 없다. 다르면서 비슷하다. 그래서 대립한다.


인간의 마음을 흐르는 시간에 떠나 보낼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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