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 묵상 13-16편
[라디슬라프 자보르스키]
본문말씀 : 고린도전서 6장 9-11절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님묵상(13) 권능을 주시는 성령님(행 1:8)
본문은 성령이 임해야 권능이 생긴다고 말씀한다. 왜 권능이 필요한가? 사람은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능과 본성을 잘 통제하는가? 외적인 습성인 술이나 담배를 끊는 것도 그토록 힘든데 내적인 성격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의 성격을 간단한 말로 변화시키려는 것처럼 겸손하지 못하고 무지한 일도 없다.
남을 변화시킬 목적으로 선생님처럼 설교조로 말하는 사람은 가장 무지한 사람이든지 가장 어수룩한 사람이다. 내가 할 일은 그를 성원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일 뿐이다. 사람은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격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만 하나님이 주신 성격을 더 나은 차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 변화의 기초가 바로 성령의 권능이다.
성령님묵상(14) 보증인이신 성령님(엡 1:13-14)
성령님은 불멸성과 영광의 보증인이시다. 그러나 그 보증하신 기업의 일부분이 현재 내게도 주어질 수 있음을 믿으라. 나의 구원은 죽어서 천국 가는 삶뿐만 아니라 현재의 차원 높고 건강한 삶도 포함하는 것이다.
왜 신유가 가능한가? 첫째,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으로 내게 그 생명을 나눠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나의 영혼에서 육체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을 때 나의 육체는 하나님의 신유를 경험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러나 신유가 곧 신앙의 척도는 아님을 잊지 말라.
성령님묵상(15) 성결하게 하시는 성령님(고전 6:9-11)
오늘날 성결 문제로 신학자들이 종종 논쟁한다. 성결은 순간적인 것인가, 아니면 점진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체험 신학자들은 순간적인 체험을 중시한다. 반면에 말씀 신학자들은 점진적인 단장을 중시한다. 그러나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성령님은 새로운 중력법칙으로 ‘순간적으로’ 나를 끌어올리시고 신선한 깨달음으로 ‘점진적으로’ 나를 이끌어 주신다.
요한복음 1장에 14절에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도는 예수님처럼 순간적인 체험인 은혜와 점진적인 단장인 진리가 충만해야 한다.
성령님묵상(16) 영혼을 살리는 성령님(롬 8:11)
성령님은 죽을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다. 그 ‘살린다’라는 말은 깨끗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활력이 넘치게 한다는 세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살리는 영’으로 말미암아 나의 삶이 현실을 이기는 삶이 되었는가?
환경에 좌우되는 사람의 영혼은 불평과 좌절과 억압 속에서 말한다. “못생겼다고 늘 우습에 알아요.”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영혼은 같은 상황 속에서 활기차게 말한다.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도 웃는 내 모습에는 견디지 못해요. 웃는 얼굴에 침뱉을 수 있나요?” 성령이 없는 사람은 현실이 나를 누르는 고문도구이지만 성령이 충문한 사람은 현실이 나를 도약시키는 창조도구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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