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 되는 길
본문말씀 : 누가복음 15장 21-24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 인물이 되는 길 >
지난주에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을 만난 후 실질적인 축복을 얻고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라
내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언제나 맞아주신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오자 아버지는 아무 공로도 없는 그를 크게 기뻐하며 맞이했다. 하나님도 다른 어떤 공로보다 하나님 바라보는 것 자체를 기뻐하신다. 행복은 “내 시선을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려 있다.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공허를 느끼는가? 보이는 사람의 사랑에만 관심이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교인은 하나님도 계산적으로 사랑할 때가 많다. 그러면 참된 사랑과 행복은 얻지 못한다.
로마의 바티칸 성당은 성당 전체가 거대한 예술품이다. 실용적 관점으로 보면 건축에 들인 돈과 노력에 비해 성당의 실용성은 크게 떨어지기에 “꼭 저렇게 크고 화려하게 지어야 했나?” 하는 비판도 많다. 문제는 비판하는 사람이 당시 성당 건축에 헌신한 사람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다. 화려한 건물을 실용적 관점으로만 보면 큰 낭비지만 그것이 있도록 헌신한 누군가의 자발적인 사랑의 낭비는 그 나름대로 하나님이 평가해주실 것이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노동자 1년 연봉인 3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주님께 부었다. 그때 가룟 유다는 “왜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지 않느냐?”라고 비난했다. 쉽게 말하면 “꼭 그렇게 돈을 낭비하며 사랑을 표현해야 하느냐?”라는 말이다. 언뜻 들으면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정의감이 넘치는 말 같다. 그러나 헌신과 사랑이 없는 정의로운 말은 공허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 가룟 유다가 나쁘다고 하지 마리아가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마리아의 옥합을 깨뜨린 헌신을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람에서 나온 사랑의 낭비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교회 건축을 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계산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의 표현이 질식되지는 않게 하라. 참된 사랑은 계산을 초월해야 가능하다. 현대 성도들의 가장 큰 과제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의 회복이다. 사랑과 축복의 원리는 단순하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최고로 송축(blessing)하면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blessing)을 받는다.
2. 감사의 고백을 잘하라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와서 감사가 깃든 겸손한 고백을 하자 아버지는 기뻐서 아들을 최고로 대접하고 기념잔치까지 벌여주었다(22-23절). 그처럼 감사 고백만 잘해도 하나님의 최고의 환대를 받는다. 가장 깊은 영성은 범사에 감사하는 영성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고 역풍을 순풍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도구는 범사에 감사하는 입술이다.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계속 하며 범사에 감사하면 다윗처럼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다.
어떤 여성은 일 순위 감사거리가 하나님이 남성을 주신 것이고 어떤 남성은 일 순위 감사거리가 하나님이 여성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생명 원리는 너무나 오묘하다. 만약 한 가지 성만 있다면 세상이 너무 외롭고 삭막했을 것이다. 두 개의 성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상대의 성을 좋게 보고 존중하면서 사모하는 마음이 생긴다. 상대의 성에 대해 감사가 깊어질 때 육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정신적인 필리아의 사랑으로 깊어지고 더 나아가 영적인 아가페의 사랑으로 깊어진다. 결국 감사의 크기가 사랑과 행복의 크기를 낳는다.
한 아빠가 성경을 묵상하다가 행복하게 살게 하는 핵심 요소가 감사임을 깨닫고 자녀에게 감사하는 삶을 힘써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감사를 잘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가 사람을 어떤 공부로 획일적으로 서열화하는 사회 시스템 때문인 것을 알고 그런 시스템에서 자녀를 구출해 정신적인 자산이 풍성한 아이로 키우려고 자녀들의 성적표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학교 공부 성적으로 너희를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잘하는 분야를 따라 창조적인 삶을 살라.”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어느 날 한 자녀가 입사 서류를 내는 것을 돕다가 자녀의 성적증명서를 처음 보고 성적이 참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전에 학과에서 1등을 했다는 말을 언뜻 들었어도 무관심한 척 했다. 성적보다 성격이 중요하고 성격보다 성경이 중요함을 깨닫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녀가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고 자기 존재 자체를 감사하며 살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 소원대로 자녀가 잘 자라주었다.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라. 자기 존재 자체를 감사하고 힘들 때도 감사하면 행복도 넘치고 그 행복을 바탕으로 창조성도 넘쳐서 인물의 길이 열릴 것이다.
3. 믿음의 시각을 가지라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그때는 실망되지만 나중에 보면 그 일도 좋은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때로는 죽음의 이별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불량품 인생은 없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불량 상황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힘든 상황은 불량 상황이 아니다. 나보다 나의 필요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그 힘든 상황도 필요해서 허락하신 것이다. 세상은 잘나고 인물 좋고 실력 있는 사람을 우대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잠시 못난 모습을 보여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내가 하나님만 떠나지 않으면 결국 승리한다.
하나님을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라. 그러면 인물 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다른 길을 찾지 말고 하나님 품을 찾으라. 하나님만이 나를 진정으로 살리고 채워줄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 아무리 힘들고 실망스러운 일을 겪어도 믿음생활과 헌신생활을 포기하지 말라.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힘든 일이 자꾸 생기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이 있음을 믿으라.
한 성도가 딸의 의대 편입 시험을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때 실망하지 않았다. 실망될 때 실망하지 않는 믿음을 하나님이 보고 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최고 연봉을 주는 외국계 회사에 5차 면접까지 통과해 500대 1의 경쟁을 뚫게 주셨다. 그런 은혜는 실력이나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 그 자리로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다. 그 후 그 회사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하나님은 그 딸에게 자신이 원한 의대 편입의 길을 막았지만 자신에게 맞는 더 좋은 길을 열어주셨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신뢰하라. 헌신해도 복된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이 있음을 믿으라. 늘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고 어떤 경우에도 패배의식에 젖지 말라. 둘째 아들이 패배의식에 젖어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아버지! 그래도 저는 죽일 놈입니다.”라고 늘 탄식하며 살면 아버지도 속상하실 것이다. 지난날이 어땠든 오늘 하나님이 자녀로 맞아주셨다면 그때부터 그는 누구보다 소중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과거의 악몽을 떨치고 현재의 순간을 당당히 살아내야 복된 미래가 펼쳐진다.
< 자신을 가치 있게 보라 >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 겸손함도 너무 지나치면 ‘알아달라는 겸손함’이 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시각으로 나를 가치 있게 보라. 지금 내 앞에는 엄청난 축복의 세계가 준비되어 있다. 이미 얻어야 할 것을 다 얻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더 좋은 것이 내 앞에 있다.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나아가라.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처럼 내 앞에 펼쳐질 미지의 축복의 세계로 꿈꾸며 나아가라. 그런 축복의 길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라. 비전과 순종이 있는 곳에 축복의 길도 열린다.
어느 날 한 목사가 여름 가족 캠프 강사로 초빙 받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련회장으로 갈 때 그를 태워준 스태프가 매년 수련회에 참석하는 한 여성에 대해 귀띔해주었다. 그녀는 상처도 많고 아주 성가신 사람이니까 조심하라는 얘기였다. 첫째 날 집회가 끝났다. 집회 후 한 여인이 찾아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스태프가 말한 여인임을 알았지만 회피할 수 없어 다음날 점심에 만나자고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산책을 나갔다. 돌아올 때 도랑에 감자튀김을 담은 용기와 냅킨과 컵이 버려진 것을 보았다. 그때 마음속에 이런 음성이 들렸다. “저 쓰레기를 주워라.”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 제가 수련회 강사로 왔는데 누가 보면 권위가 떨어져 말씀에 은혜가 안 될 겁니다.” 또 이런 음성이 들렸다. “그래도 주워라.” 그는 계속 항변했다. “하나님! 저건 환경 친화적 제품이니까 비만 내리면 곧 없어져요.” 그때 또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주워라.”
할 수 없이 그는 도랑에 내려가 쓰레기를 줍고 근처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방에 돌아가 물었다. “하나님! 왜 그 일을 시켰나요?” 그때는 어떤 음성도 없었다. 아침 집회 후 약속대로 점심에 그 여인을 만났다. 몇 마디 나눈 후 그녀가 말했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산책길에서 우연히 목사님의 뒤를 따라 걸을 때 목사님이 도랑에 들어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했어요.” 결국 그의 순종은 상처로 인해 신음하던 여인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그때의 열린 대화가 그녀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사로 나타났다.
가끔 하나님이 선한 일에 대한 감동을 주실 때 그 감동대로 사랑과 헌신에 나서 보라. 그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고 교회를 위해 최고의 헌신도 할 수 있고 선교와 구제의 큰손도 될 수 있다. 연줄과 배경과 후원자가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 가장 위대한 연줄과 후원자이신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늘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축복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감으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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